가짜뉴스 생산은 혹세무민의 범죄 행위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 기사입력 2018/10/11 [09:23]

가짜뉴스 생산은 혹세무민의 범죄 행위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 입력 : 2018/10/11 [09:23]
▲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한겨레신문이 가짜뉴스의 뿌리를 추적해 집중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중요 의제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8일 정부는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를 고려한 듯 자율규제 중심의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려다가 예고된 합동브리핑을 취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허위조작정보는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보다 더 강력한 대책을 주문한 까닭이다.

 

그랬다. 일부 언론학자들은 전통 미디어 중심의 저널리즘 회복을 강조하며 법적 대응에 반대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인문사회계열 학자들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달 ‘인문학 진흥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온 한탄이다. 이 토론회에서 남기심 전 국립국어원장은 “인문학이 팔리지 않는 까닭이 아직도 자연과학과 너무 거리가 멀어 사람들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가짜뉴스를 단속한다는데 언론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반대하는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무릇 학자는 현상(appearance)의 이면에 감추어져있는 근본원인 원인 즉 실재(reality)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주장이 아닌 검증된 지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 말발이 먹히지 않겠는가. 그것이 과학이다.

 

▲ fake news (사진=픽사베이)     © 군포시민신문

 

이 사안에서 실재는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반응하는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뇌에는 살아오면서 경험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그것은 신념이 되고 세계관이 되어 행동 지침을 내리는 기준이 된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그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면서 확신을 갖게 된다. 자칫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중독되면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참교육과 참언론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또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소속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고 한다. 그래서 다수의 행동에 동조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소위 여론이라는 것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침묵해버리거나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다. 가짜뉴스를 찾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조선일보와 일치한다. 가짜뉴스 생산자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목적을 위하여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 유포하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있을 때 대한문 앞에서는 태극기집회가 있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의 기세는 등등하여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가짜뉴스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MBC 뉴스였다. 영상조작으로 두 집회의 규모가 대등한 것으로 보도했던 것이다. 태극기 노인들이 자신감으로 충만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활발하게 행동하게 만든 배경이다.

 

MBC를 대신하여 지금 그들에게 불굴의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숙주는 조선일보와 종편들이다. 한겨레신문이 추적해 밝혀낸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단체와 정규재TV 따위는 그 아류요 전위들이다. 이들이 생산해내는 가짜뉴스들로 인해 적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고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방법이 전통 미디어 중심의 저널리즘 회복이어야 할까? 가짜뉴스를 단속하다 진짜뉴스까지 위축될 우려가 있으니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자율규제에 맡겨야 할까? 언론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포는 노인들이나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찰해야 할 기회를 박탈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범죄행위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에스더는 2012년 대선때 ‘문재인 후보 가짜뉴스’를 전파했다고 한다.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 자체가 범법행위다. 공동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작태가 표현의 자유 범주에 해당할 수는 없다. 가짜뉴스의 생산과 확산은 법리적으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수준에 도달해있다. 이 마당에 저널리즘의 회복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한가한 주장은 가짜뉴스만큼이나 해롭다.

 

가짜뉴스는 불량상품과 같은 것이다.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불량상품은 그 숫자가 미미하다 하더라도 근절해야 하듯이 가짜뉴스도 마찬가지다. 가짜뉴스는 건강한 여론의 형성을 방해하는 불량상품이다. 정부가 이것을 방치하고 뒷짐 지고 있다면 오히려 무책임하다. 보수화된 사람들은 정상화된 저널리즘을 찾지 않는다. 진짜뉴스가 가짜뉴스를 압도하더라도 그들은 가짜뉴스를 선호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표현의 자유 잣대를 들이대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가짜뉴스와 싸웠다. 거리에서 만나는 청년들을 붙들고 대화하며 소피스트들에 의해 주입된 억견(臆見, doxa)을 뇌에서 지워내고 진리를 깨닫도록 도운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설득하는 한편으로 가짜뉴스의 생산자인 소피스트들과 싸운 셈이다. 가짜뉴스, 즉 날조된 거짓정보는 헌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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