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창간 30주년 군포시민신문, 역대 발행인들이 30년 역사 말해창간 30주년 기념식, 6월 24일 그림책꿈마루 ··· '어른 김장하' 김주완 기자 초청강연도군포시민신문 창간 30주년을 맞아 역대 군포시민신문 발행인들이 모여 '발행인들이 돌아보는 군포시민신문 30년'이라는 주제로 군포시민신문의 역사와 성장 과정, 그 속에 담긴 희노애락 등을 5월 26일 군포시민평생교육원에서 나눴다. 전발행인이자 현재 군포시민신문 편집인 김정대의 사회로 '발행인들의 수다'는 진행됐다.
이날 동영상 촬영본은 유튜브 군포시민신문 채널에 올라가고 5분 이내의 편집본은 6월 24일 '군포시민신문 30주년 기념식'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촬영과 편집은 김준열 미디어활동가, 총괄진행은 고희정 기자, 취재는 진이헌 기자, 사진촬영은 조성숙 시민기자가 맡았다.
사회 : 군포시민신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재창간한 지는 10년 정도 되었는데 이전에 역사를 정리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군포시민신문 30주년을 돌아보고 역사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함께 정리를 도와줄 이대수 전 군포시민신문 발행인, 정금채 군포시민신문 전비대위원장, 장원철 군포시민신문 전발행인, 이진복 군포시민신문 발행인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겠다.
이대수 : 우선 군포시민신문이 30주년을 맞이했다니 매우 기쁘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6월항쟁과 지방자치 시대의 한겨레 신문, 남해신문, 홍성 신문 등 뜻있는 사람들이 세워가고 운영하는 좋은 모델로 생각되는 신문들이 있어 그것을 모델로 삼았다. 그 시기 군포에서 93년 7월부터 진행된 군포 쓰레기 소각장 반대운동이 있었는데 그 당시 신문들이 주민들의 요구나 여론을 왜곡하고 관 중심의 보도를 보였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매체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움직임과 함께 군포시민신문을 만들게 됐다.
과정을 간략히 살피면 쓰레기 소각장 반대운동에 참여한 사람 중 시민운동에 관심이 있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주주가 되어 50여 명이 1,400만 원을 모았었다가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매우 귀한 돈이었고 그 돈을 모아 광고기획을 하고 있던 김용현씨 사무실에서 1995년도에 시작했다.
당시 발행되는 신문에 있던 제호는 저의 감방 동기였던 신영복 선생이 써 주셨다. 리영희 선생도 신문 발행인으로 함께하셨다.
정금채 : 그 당시 군포시민신문 비상대책위원회는 현재 안양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박길용 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박 위원장이 군포시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서 비대위원장을 2000년도 즘 맡게 됐다. 당시 박길용 비대위원장과 고 윤여창 군포시민의모임 대표가 위원으로서 헌신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후 운영위원들 자체적으로 꾸려나가기 어려워서 전문적인 광고 영업 1명과 전문 취재기자 1명을 두어 상근 인원 2명 체제로 운영했다. 적은 수익으로 근근이 꾸려갔지만, 꾸준히 신문을 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비대위를 해체하고 장원철 발행인으로 전환하려는 시점에서 주식회사 체제 전환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비대위 체제가 잘 유지됐다고 할 수 있지만 확실한 중심이 없는 것 같아 군포시민신문이 창간 후에 가지고 이어왔던 정신들만 확보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됐다.
장원철 : 그 당시 비대위 체제에서 군포시민신문은 어려웠다. 여러 사람이 사비로 근근이 버티고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는 등 군포시민신문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 2005년 전후 친한 선배가 군포시민신문 발행인을 해달라는 부탁을 해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법인 체제로 변경하고 편집국장과 기자를 공채로 뽑는 등 상당한 투자를 했었다. 그 결과 지역신문 발전 기금에서 평가할 때 전국 지역 신문 중 3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는 등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남해신문, 옥천신문 등 지역신문들과의 교류도 활발했었다.
처음 발행인을 맡을 당시에는 많은 투자가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도 못했고 2년 정도 발행인을 맡은 후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8년이라는 세월이 어느새 흘러 있었다.
김정대 : 군포시민신문을 재창간하게 된 계기는 과거 미디어스 국회출입기자를 하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있었는데 변화되는 미디어환경에서도 여전히 지역신문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역신문의 상황을 알고 있어 저비용 고효율적인 지역신문의 모델링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고민을 하는 중에 군포시민신문을 알게 되어 군포로 집을 이사하게 됐다. 2010년 후 군포시민신문은 휴간한 상황이었다.
2014년 하반기 군포 지역신문창간을 준비하며 법인을 설립하고 신문의 제호를 등록해야 했다. 수 년간 정간 상황이었던 군포시민신문 제호로 가기를 원했는데 장원철 전발행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었다. 제호를 등록하기로 한 전날 연락이 닿아 제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14년 말에 인터넷 신문을 가오픈해 운영하다 2015년 5월 30일 재창간했다. 어려운 재정이었지만 신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음해인 2016년에 한 달에 한 번씩 종이신문도 발행했다. 재원문제로 1년 남짓 발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창간 이후 군포시민신문은 최소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민 기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영향력을 높이고자 포탈과 제휴를 맺어 지역 신문 중에서는 드물게 포탈에 들어가 있는 신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 신문이 지방자치단체 또는 산하 기관에서 광고를 받아 광고비가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도 독립언론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신문을 만들어 가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었다. 꾸준한 시민들의 후원이 군포시민신문을 만든 근간이 되려 하고 있다. 노력에도 재창간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저의 지인들의 후원비중이 조금 더 크다.
이진복 : 2018년 1월 1일부로 발행인을 맡아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데 현재까지 7년 5개월이 다 되어간다. 지금의 군포시민신문을 만든 것은 과거 발행인들께서 만들어온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신문은 항상 재원이 부족한 문제가 있는데 공간도 확보했고 올해 다시 결성된 운영위원들 역시 힘써주고 있어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다. 현재 공간은 제가 대표로 있는 열린사회문제연구소 사무실과 함께 쓰고 있다.
이제는 미디어 환경이 많이 변화함에 따라 젊은 세대가 많이 이끌어야 할 시기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이 신문을 넘기고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대수 : 앞서 말했지만, 이 신문을 만들 때 여러 주주가 있었는데 군포 쓰레기 소각장 반대 운동 참가자들과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과 군포의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인해 나타난 문제의식을 던지는 사람이 적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각자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이 꾸준하게 글도 쓰고 후원도 하고 도움을 주셨기에 너무 감사할 뿐이다.
군포 쓰레기 소각장 반대 운동 당시 관 중심의 뉴스와 기사보다는 지역 시민의 입장을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30~40곳의 배포 거점들을 마련하여 지역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하나 기억나는 것은 시의 애완견 역할을 하지 않아 지역 선거기간에 시에서 많이 부담스러워했었다. 하지만 유혜준 기자가 잘 풀어나가 주어서 신문의 편집과 제작 부분에 부담을 덜어 주었다.
정금채 : 우선 어떤 쟁점 가지고 크게 문제가 되고 또는 시민 신문 기사가 논란거리가 되고 하는 그런 부분들은 별로 기억되는 것은 없다. 그 당시에 주로 이제 편집 방향이나 기사에 대해서도 참여했던 운영위원들이 회의에서 늦은 시간까지 같이 검토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기자가 아주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기자 중에는 이근식 기자가 많이 생각이 난다. 비대위로 운영할 때 직접 시민을 만나고 시청을 다니면서 지역사회에서 관계들이 형성될 만하면 기자들이 그만두었다. 이 기자는 그런데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해주었다. 그래서 군포시민신문이 발전되는 부분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발행인을 맡을 당시에는 '가치가 있어야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존재를 해야 가치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지역신문들과 연대와 네트워크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운영은 더욱 어려운 구조로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포는 특히 정주의식이 없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 많지 않은데 군포시민신문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다만 조금 섭섭한 것은 시민사회가 그 당시 문제가 발생하면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시각을 보이며 신문에 무관심이 있었다.
이진복 : 고소 고발을 두 번이나 당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은 과거 지방선거에서 모 시의원이 당적을 옮겨 2인 선거구에서 2명을 공천해 2명이 다 당선된 일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선거 과정에서 상대당 당협위원장이 편파 언론이라며 군포시민신문이라 고소했다. 다음은 안양의 시민단체가 지역 국회의원을 과거의 행적을 들어 규탄한 내용을 기사에 담았는데 지속적으로 해당 국회의원실에서 기사를 내릴 것을 요구했다. 검찰 조사에서 기사를 내리고 일단락 짓자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기사를 내릴 것 같으면 왜 올리냐"라고 답한 기억이 있다. 모두 문제없이 끝났다.
기뻤던 일은 군포시민신문의 방향성이기도 한 시민 기자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재창간 이후 20여 명에 달하는 시민 기자들이 점차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매우 즐겁다.
사회 : 군포시민신문 또는 군포시민신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끝으로 평가와 함께 소감도 간략히 남겨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대수 : 지역언론이라는 것이 지방 소멸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어렵지만 그 속에서 시민들이 최소한의 자발성을 가지고 참여할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포시민신문의 주인이 특정 시민단체가 아닌 군포시민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본 재정을 확보하며 군포시 사회 속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100년 신문까지는 못 볼 것 같은데 50년까지는 볼 것같기도 한다. 50주년인 2045년이 또한 핵무기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그 때까지 군포시민신문이 건재하고 핵무기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그런 성과를 볼 수 있도록 이바지하겠다.
군포시민신문이 재창간을 할 때부터 그동안 어렵게 활동을 한 것을 보면서 걱정부터 앞섰는데 100년 신문까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훌륭하게 잘해오고 계신 것 같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또 축하한다.
장원철 : 역대 발행인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분들의 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군포시민신문이 꾸준히 자기 역할 하면서 그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의 노고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겠다.
이진복 : 앞으로 이후에 발행인을 맡으실 분이 20년 이상 가기를 바라며 마지막 말을 대신하고 싶다.
사회 : 군포시민신문이 30주년이 되기까지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분들이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인 것 같다. 30주년 기념 초청 강연자로 '어른 김장하'를 취재했던 김주완 기자를 섭외했다. 김장하 선생께서 지역의 토호와 권력들이 눈치보는 곳이 있기를 바라며 진주시민신문에 10억 원 가까이 기부를 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분의 삶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측면에서 이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어른 김장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박수로 마무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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