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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고②
‘인간의 상품화’는 가능한가?
 
김건아 군포이비지니스고 2년   기사입력  2021/03/24 [01:01]

  ‘인간의 상품화’는 가능한가?

 

  ‘자기조정시장’은 강력한 정부가 나서서 경제적 자유에 방해가 되는 것을 치워버리고 자유방임시장이란 놀이터를 만든 후 기본적인 규칙들(사유재산권 등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벽에 써 붙임으로서 기초가 세워진다. 아직은 시장이란 놀이터에 모래가 쌓여있지 않은 상태다. 그 모래란 바로 인간과 자연의 상품화이다. 놀이터에 모래가 없으면 놀이터라고 할 수 없듯이 인간과 자연이 상품으로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시장이라 할 수 없다. 강제로 인간이 생산수단을 빼앗기고 토지가 사회관계에서 뽑혀져 나왔을 때 그것들은 상품이 될 준비를 끝마쳤고 자기조정시장이란 거대한 기계는 작동버튼이 눌려지기를 기다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라는 ‘억센 손’이 튀어나와 그것을 막았다. 자기보호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인간과 자연이 애초에 상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선 ‘인간의 상품화’만 다루겠다. 

 

  애초에 자기조정시장이란 것은 무엇이고 어떤 장점이 있는가? 그것은 이윤을 얻으려는 경제주체 전부에게 최대한 많은 이윤을 얻게 해주기 위해 생겨난 체제다. 자유시장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고 없어서도 안 될 존재다. 또한 자유시장은 소수의 대기업에게만 이윤을 몰아주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물론 뜻대로 안 될 때가 많지만). 그리고 시장은 경쟁과 다른 수많은 요인들 때문에 변하며 이윤을 얻기 위한 방법도 그렇다. 그 방법이란 제품의 가격과 생산량이고, 그것이 변한다는 말은 가격과 생산량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제품의 가격은 노동력의 가격(임금)을 포함하고 생산량은 노동자의 수를 나타낸다. 결국 항상 변하는 시장상황에서 사업체들의 선택은 임금과 노동자 구매개수의 탄력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기업이 노동력을 원하는 수요가 낮아졌다면 그 수요곡선에 맞춰 공급 곡선도 조정되어 새로운 가격과 구매개수가 정해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노동자는 순순히 자신의 임금이 떨어지는 것과 자기가 해고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시장 상황이 최고든 최악이든 사업체는 그때 그때 조건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을 최고의 합리적 방법으로 성취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상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시장은 이윤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과연 이것을 허용할 것인가? 일단 노동자를 추상적인 개인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으로 봐야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보편적인 삶을 1인칭으로 상상해야 한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는 어떤 기업의 수요가 감소해 노동자를 뱉어내면 수요가 증가한 다른 기업이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을 빨아들인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력이라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 배치 된다는 것이다. 경제는 순조롭게 돌아간다. 멀리서 보면 말이다. 노동자의 시점으로 이 문제를 보면 그저 자기 삶의 심각한 불안정성을 뜻할 뿐이다. 임금의 탄력성 문제도 똑같다. 자신의 생존이 수요공급의 가변성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인간 삶의 안정성은 생리적 생존 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존에도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만약 어떤 공장주가 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그의 입장에서 그냥 일하라고 데려온 것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자신이 공장이라는 하나의 ‘사회’에 들어온다. 그 공장에서 일하며 많이 힘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이 사회에 무언가를 기여한다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이 사회(공장)에 소속되어 있고, 타인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자아 정체감을 갖게 된다. 이것은 노동력의 효율적인 배치, 그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유시장의 메커니즘이 노동자에게 사회라는 관계망 속에서 자신을 찢어내어 강제로 다른 관계망에 붙임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생존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느끼게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개인이기도하다. 인간은 자신만의 고유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이 인격이란 것은 절대 노동과 떨어질 수 없는 부분이다. 인격은 개인 그 자체이며 노동은 그 개인의 활동이기에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때 어쩔 수 없이 그의 인격이 딸려 들어가게 된다. 고용주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의 인격까지도 같이 마음대로, 즉 값을 치룬 만큼 다루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노동자의 정신적 생존은 위협받는다.

 

  이렇게 노동자의 1인칭 시점에서 자기조정시장에 대해 살펴봤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가치판단을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자유시장이 나쁘다’, ‘자본가는 윤리적이지 못하다’ 같은 판단은 안된다. 물론 개인적으론 가치판단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할 때는 가치판단을 최대한 주의해서 내려야 한다. 가치판단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쪼개버리기 때문이다. 즉, 보편적 동의를 얻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 나의 가치판단을 빼고 이야기하겠다. 과연 ‘인간의 상품화’가 가능할까? 

 

▲ 사진=김건아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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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4 [01:01]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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