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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거대한 전환’을 읽고
자기조정시장과 사회보호운동_ 칼 폴라니
 
김건아 군포이비지니스고 2년   기사입력  2021/03/16 [15:43]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체제가 인간본성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며 인류의 역사는 시장의 역사 또는 시장을 향한 역사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인간을 경제적 동기로만 움직이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정의했다. 이런 인간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유시장, 자기조정시장에 대한 집착의 근원이다. 만약 이들의 말이 맞다면 이미 현실에 실현되었어야 할 자유시장 체제가 지금까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가?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의 세상은 전통과 관습 그리고 통제라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직업 선택의 자유 따윈 없어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평생 길드 속에서 직공으로 살아야 했다. 사회의 부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래도 이것은 나름 튼튼한 질서였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 안에서 경제생활을 했고 그 공동체는 이윤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쫓겨날 일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 때에도 시장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격체계를 갖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시장은 대부분 쓰고 남은 것들을 사고 파는 곳일 뿐, 인간의 경제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질서도 시간이 흘러 결국 과거의 것이 되었다. 사회의 부가 점점 힘센 사람들의 손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옮겨 간 것이다. 그래도 과거는 현재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과거는 무섭게 날아오는 발길질에 나가 떨어졌다. 그 발길질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리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물인 양 손에 쥐어줬다. 그 거대한 발길질이란 바로 산업혁명이다.

 

  크고 정교한 기계로 인해 생산 방법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방법에서 인간이 맡은 역할은 기계가 물건을 잘 만들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의 역할이었다. 어려운 일은 전부 기계가 담당하게 되고 인간은 그저 쉽고 반복되며 숙련이 필요없는 노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자본주의의 특성상 어느 기업이나 잘 되는 때와 잘 안되는 때가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잘 안되는 때를 맞았다면 아무나 데려와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이윤을 줄여야 하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사람들을 해고해서 생산물의 가격을 낮춰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추는 등 시장의 변덕에 어떻게든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국 ‘기계의 출현은, 인간을 맘대로 뺏다 꼈다를 반복할 수 있게 해서 인간이 상품이 되었고 인간의 노동력을 사고 파는 노동시장이 생겨났다. 어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선 노동 말고도 꼭 필요한 2가지, 즉 자연과 화폐도 상품이 되어 그것들이 사고 팔리는 시장을 형성했다. 이렇게 해서 자기조정시장이 돌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필수조건들이 모두 준비되었다. 이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것은 과거의 시장과 완전히 다른 것일 터였다. 세상의 모든 상품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거대한 가격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결국엔 모두가 행복해 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완전히 유토피아였다. 이 세 가지는 절대 상품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화폐는 그저 사람들끼리 교환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구매력을 표시한 물건일 뿐이다. 자연은 모든 인간활동이 벌어지는 무대이다. 그런 다채로운 무대에서 이윤추구하는 오직 한가지 활동만 한다는 것은 모든 활동을 파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노동은 인간에게서 떼어내서 따로 판매할 수 없다. 인간의 노동을 판매 할 때 그의 개인적 삶이 딸려 들어간다. 그 삶이란 안정추구, 사회적 위치 확립 등 온갖 욕구들의 덩어리이다. 이런 개인적 삶들은 시장의 불안정성을 절대 견딜 수 없다. 

 

  자기조정시장이 확립된다는 건 사회가 파괴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자기보호운동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마치 눈 앞에서 박수를 칠때 눈을 감게 되는 것과 같다. 즉 반사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자기조정시장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때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반사적으로 신속하게 일어난다.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은 어떤 이념으로 통일되거나 특정한 자기 존재에 위협을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운동에 참여한다. 

 

  ‘자기조정시장이 왜 집착으로서만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답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때문이다. 그것이 일어나면 결과는 시장의 자기조정 시스템이 심각한 손상을 입는 것으로 끝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에 관한 법을 생각해보자. 어떤 기업이 최근 들어 갑자기 매출이 줄었다. 그래서 직원들 임금을 낮추려고 봤더니 자신이 줄 수 있는 임금보다 최저임금이 높게 잡혀있는 것이다. 그 기업은 결국 이윤추구에 큰 타격을 받고 심하면 문을 닫을 수 도 있다. 자기조정시장에선 절대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가격이 경직되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거대한 가격체계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거대한 시스템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자유시장 신봉자들은 더더욱 잘 안다. 그래서 계속 저 이상적인 시스템을 이 세상에 구현시켜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보호운동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그들이 항상 하는 불평은 눈 앞에다가 박수쳐도 눈을 감지 말하는 것과 그 의미가 같다. 물론 그들이 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분명 좋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난 언제나 집착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착이 인간행동의 중요한 동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상의 동기는 아니다. 혹시 저 거대한 집착이 이 사회의 창조성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이제 우리 사회엔 보호운동이라는 수동성보다 창조운동이라는 능동성이 넘쳐나길 바란다.

 

▲ 사진=김건아   © 군포시민신문

 


글쓴이 소개 : 김건아

- 17세, 군포이비즈니스고등학교 마케팅과 2학년

- 2020년 10월 농상생네트워크와, 대야미마을공동체 독서동아리 행사에서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옮긴이 홍기빈씨를 2번 만나고 관심을 갖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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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16 [15:43]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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