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리영희 ④이상철

검소하고 보기와 달리 자상했던 선생

김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20/11/29 [23:22]

내가 기억하는 리영희 ④이상철

검소하고 보기와 달리 자상했던 선생

김정대 기자 | 입력 : 2020/11/29 [23:22]

편집자주) 리영희 선생 10주기 추모하며 생애 마지막 16년을 보낸 군포에서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의 글을 기고 받거나 이들을 인터뷰해 연재한다. 25년 전 군포시민신문의 발기인으로 지역신문 창간 지원에도 아낌없이 지원하셨던 선생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추모한다.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은사로 모셨던 이상철 선생을 지난 11월 26일 오전 군포시민신문사에서 만났다. 이 선생은 리영희 선생과 군포 수리산의 자그만 언덕을 함께 산행하는 등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며 교류한 사이였다. 

 

▲ 이상철 선생 (사진=이진복)


이 선생은 리영희 선생에 대한 첫 일성으로 검소한 생활에 대해 말했다. 

 

이상철 선생은 “가정형편이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는데도 물건과 과자를 사도 집 앞 구멍가게와 보물창고를 주로 이용했다. 만나면 밥을 먹으러 종종 인도카레집과 중국집에 갔다. 한 번은 산본역에서 만났는데 불편한 몸으로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었다. 운전을 잘 하는데도 늘 전철을 타고 다녔다”며 리영희 선생의 검소하고 소탈한 삶을 기억했다. 

 

또한 가까이서 보는 리영희 선생은 자상했다. 

 

이상철 선생은 “길거리에서 리영희 선생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면 처음 보는 사람도 당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차대접을 한다”며 “한 번은 차대접을 한 사람의 이름을 메모에 적어와 나에게 보여주며 아는지 물어보았는데 군포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안다고 하니 매우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이상철 선생이 평촌에서 군포로 이사를 왔더니 리영희 선생이 임헌영, 염무웅, 김수행 교수에게 연락을 해서 환영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환영회 자리에는 임헌영 교수는 미국에 가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리영희 선생은 이상철 선생과 산행을 하며 몸이 불편하니 길 곳곳에 놓인 의자마다 다 앉았다. 함께 앉으면 그 곳은 강의실과 토론장으로 바뀐다. 이에 대해 리영희 선생은 “의자에서 내 눈 높이에 맞춘 강의가 시작된다. 그분은 기억력이 좋아 사건의 일시를 정확히 기억했다”며 “나는 부패 문제를 주로 이야기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 처음으로 '군포시비리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만드는 것에 대해 응원했다. 그러면서 리영희 선생은 위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깨끗한데 시장이 청렴하면 공무원이 안 따라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리영희 선생은 법원, 변호사, 검찰 등의 법조계가 다 썩어 법치가 아니라며 잡범은 감옥에 넣고 힘 있는 사람은 중범죄를 지어도 활개를 치고 있으니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또한 리영희 선생은 언론에 대해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야 분명히 소위 애국 이런 거 아니야, 진실이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고 한다. 

 

노태우정권 시절인 1986년 4월 한겨레신문 기자단이 북한을 탐방·취재 보도를 위한 방북 기획했던 것을 가지고 문제 삼으며 수사 등으로 압박하는 것에 대해 영등포에 있는 한겨레신문사에서 리영희 선생님이 농성을 하고 있을 때, 당시 새길 교회를 대표해 후원금을 전달하러 지지 방문한 것이 첫 만남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리영희 선생님을 강제연행 구인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면서 “리영희 교수 개인의 북한방문 시도 및 리영희 교수가 일본인을 통해 북한에 보낸 서신의 내용 등에 대한 수사와 관련 조사하는 것일 뿐 ‘한겨레신문’측이 북한을 방문 취재하려 한 사실을 문제 삼으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이상철 선생은 리영희 선생의 장례식에서 사회 명망가만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긴 추모행렬을 보며 참 대단한 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이상철 선생은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을 기억하며 다시금 당신을 만난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하며 과거의 일을 회상도 했지만 리영희 선생이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현재의 각종 현안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을 논하며 토론을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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