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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선생 문묘 봉안 1,000년 고유제 봉행
식전 행사로 ‘문묘 일무, 스승을 기리다’를 공연
 
김정대 기자   기사입력  2020/11/11 [04:52]

최치원 선생이 문묘(文廟)에 봉안된지 1,000년을 기념하는 고유제(告由祭)가 지난 11월 9일 오전 11시 성균관 명륜당에서 봉행됐다.

 

고유제 또는 고유례는 사당의 신에게 중요한 일을 아뢰는 의식이다. 성균관 문묘의 경우에는 국가나 성균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내용을 유교의 성인인 공자에게 아뢴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의 중요한 관직의 임명 때, 대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위패를 이안(移安)하거나 공역(工役)이 끝나고 다시 환안(還安)할 때 의식을 거행했다. 현재는 성균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신임 임원이나 전교(典校)를 임명할 때, 성균관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 때 고유례를 행한다. 

 

이날 고유제에서 헌관은 박흥식 원임 부관장이, 분헌관은 최해식 용인향교 유도회장이 맡았다.  

 

▲ 최치원 선생 문묘 봉안 1,000년 고유제 봉행 (사진=홍정우)     ©군포시민신문

 

손진우 성균관장은 기념사를 통해 선생의 고유제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중심 근간인 유교문화를 알리고 유교문화진흥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최병주 명예회장은 성균관과 석전대제 이수자회 등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종친회는 올해 한국과 중국의 양주시 등을 연계하는 기념행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취소된 바 있다.

 

최치원 선생은 우리 민족 최초로 문묘에 봉안된 사례이다. 최치원 선생은 고려 현종(11년) 1020년 8월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한국인 최초로 문묘에 종사(從祀)되었다. 1023년에는 문창후(文昌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가 받드는 성현(聖賢)은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중국의 인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 고려조에 와서 한국인이 종사되기 시작한 것.

 

최치원 선생을 포함해 성균관 문묘에 봉안된 한국인은 모두 18명이다. 성균관 문묘는 유교의 성현을 모신 사당이다. 태어난 순으로 보면 신라의 설총(1022년 봉안), 고려의 안향, 정몽주, 조선의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선생 등이다. 2년 뒤에는 설총 선생이 문묘에 봉안된지 1,000년이 된다.

 

유교의 현인은 성균관과 전국의 향교의 대성전(문묘)에 위패가 모셔지고, 매년 봄과 가을 두 번 봉행되는 석전대제 시에 술과 음식을 흠향하게 된다.

 

▲ 식전 행사로 ‘문묘 일무, 스승을 기리다’를 공연 (사진=홍정우)  © 군포시민신문


이날 고유제의 식전 행사로 성균관대학교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팔일무단이 ‘문묘 일무, 스승을 기리다’를 공연했다. 감독을 맡은 임학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이 창작한 무용이다. 공자에게 정기적으로 올리는 제인 석전(釋奠)과는 달리 고유제에는 본래 춤과 음악이 없다. 따라서 고유제 안에 공연이 포함되지 않고, 별도의 기념행사 형식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최치원 선생 1,000년 고유제는 (사)석전대제본존회가 주최하고,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재단이 후원했다. 의례는 원재식 석전대제 이수자를 비롯한 석전대제 이수자회(회장 이상만)가 봉행했다. 기획에는 여문필 석전보존회사무국장, 박광영 성균관 의례부장, 한국오픈스페이스연구소의 홍정우 대표 등이 참여했다.

 

▲ (사진=홍정우)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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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1 [04:52]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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