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코카서스 3국 여행기' 서평

박선봉 에세이

신완섭 단풍시인 | 기사입력 2020/05/03 [22:24]

신간 '코카서스 3국 여행기' 서평

박선봉 에세이

신완섭 단풍시인 | 입력 : 2020/05/03 [22:24]

  지난 4월, 동네 후배 박선봉이 처음으로 책을 펴냈다. 일찍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은 대개 광장이나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는 데 사용했다. 오랜 세월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와글와글 목청이 드세진 탓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조근조근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름하여 <코카서스 3국 여행기(랩소일거리)>. ‘딸내미만 믿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란 부제처럼 디지털 세대인 딸과 아들을 앞세운 아날로그 50대 두 부부의 좌충우돌 여행기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하여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두루 둘러보는 본문 내용은 현장의 생동감을 잘 살려 읽는 내내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더욱이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러시아 남부와 중앙아시아 사이, 우리로선 매우 낯선 코카서스(Caucasus)는 남극 북극만큼이나 생소한 곳이잖는가. 그런 점을 잘 살려 주의 깊게 관찰하고 낯선 의식주 생활과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소탈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들춰보는 객관화된 재미는 덜하다. 여행은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머리로도 해야 하는데, 저들의 언어는커녕 공용어인 영어로도 별 소통을 못 했으며, 현지에 관한 사전공부가 다소 부족했던 탓인지 심미적이거나 심층적인 관심 유발에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코카서스 3국에 관한 여행서는 달랑 1권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여행지에 대한 설명은 1도 없고, 자기가 다닌 곳의 사진과 짤막한 사진 설명이 전부였다. 문법을 아예 무시한 비문(非文)에, 종교 편파적인 감상평, 도대체 이런 책을 버젓이 내주는 출판사는 뭐하는 곳이란 말인가?”하고 힐난한 점에 비해서는 기행문의 스토리가 탄탄하고 작위적이지도 않으며 국문학도의 글답게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디 이 책이 당분간 코카서스 관광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되길 바란다.

 

  신나게 먹고 자고 관광하는 중에도 15장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란 제목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15년, 아르메니아가 적국 러시아와 손잡을 것을 우려해 벌인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인종학살(Genocide) 사건을 무게 있게 다룬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150만 명에 달하는 대학살과 강제이주, 그리고 이어진 디아스포라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라서 당시의 육체적 물리적 만행은 오늘날 특정 집단의 삶의 토대 및 양식을 무너뜨리는 ‘사회적 파괴’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Give & Take)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저자가 가는 곳마다 신세 진 가이드나 기사에게 내놓았던 오방색 연필 주머니나 작은 동전 지갑, 또는 조지아에서 독주(毒酒) 차차를 얻어 마신 보답으로 갖고 간 소주를 내놓았듯 만남과 교류에서 주고받는 게 없었더라면 무미건조한 여행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주고 얻어온 게 분명한 며칠간의 기록들을 꼼꼼히 정리하여 책으로 재현시킨 노력을 높이 치하하며 훌륭한 여행작가로 거듭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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