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명 이야기⑳ ‘혐오 지명’은 정말 혐오스러울까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기사입력 2025/11/03 [09:08]

한국의 지명 이야기⑳ ‘혐오 지명’은 정말 혐오스러울까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입력 : 2025/11/03 [09:08]

  경상남도 기장군·읍 ‘대변초등학교’ 이름은 2017년 어린이회장 입후보 연설에서 교명 개정을 공약사항으로 내건 어린이가 당선되어 ‘용암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변’은 용변의 ‘큰 것’이 되므로 어감이 좋지 않고, 어린이들이 놀림 받는다는 이유다. 

 

  대변리 있는 이 학교 이름은 1946년에 ‘기장국민학교 대변(大邊)분교’로 시작되었다. 중간에 ‘토평초등학교’로 바뀌었다가 1967년부터 ‘대변국민학교’라고 써왔다. 반백 년이 지나서 현재의 마을 이름을 딴 ‘용암초등학교’가 되었다. 기존의 ‘용암’+‘무양동(武陽洞) 일부’를 합쳐 ‘대변리’가 되었으므로(1917,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개선된 초등학교 이름으로 근거가 없지는 않다. 잘 된 일이며 대견하다는 칭송만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데 반대 의견이 없을 수 없다.

 

  한글전용 시대니 이런 억지 주장이나 우스갯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결국 ‘지식의 하향 평준화’ 아닌가. ‘대변초등학교’를 가지고 누가 말장난을 하면 ‘대변’의 뜻을 알려주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주면 그만이다. 1910년대 지명집 『조선지지자료』를 보면 기장군(機張郡) 읍내면(邑內面)의 포구 이름[浦口名]에 ‘대변포(大邊浦)’가 보인다. 그만큼 이 어촌마을을 대표하는 이름으로서 2010년대까지 불리어온 터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大邊’의 토박이 지명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주면 한글전용 세대/시대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실은 이곳은 세금으로 바치는 쌀(대동미) 저장 창고 대동고(大同庫) 옆 해변이라서 생긴 이름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를 줄여서 대변포>대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디지털부산역사문화대전 등). 딱히 ‘대동고변포’ 사료는 찾지 못했지만 아래 사료를 조합해보면 수긍이 간다. “각 고을에서, 혹은 칙수청(勅需廳)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대동고(大同庫)라 하기도 하는 것은 대개 본전은 그냥 두고 이자를 취하여 백성의 힘을 펴고자 하는 데서 나왔으니… ”(숙종 33년 정해(1707, 강희) 12월18일). “봄 정월에 송군비와 김찬이 흑적의 무리와 함께 거제 송변포(松邊浦)에 이르러 풍파가 험한 것을 두려워하여 드디어 돌아왔다.”(고려사절요 제18권, 원종, 정묘 8년=1267) 

 

 『지명조사철』(1959년)을 보면 다른 지명유래가 없는 것도 아니다. ⓵대변: 옛적 큰 포구라 하여 대변이라고 불리우고 있음. ⓶대변항: 동해 해양의 피난항으로써 대변항으로 불리우고 있음.  ⓷대변등대: 동해 해양의 피난항으로써 등대가 장식되어 명칭을 대변등대라고 불리우고 있음.   

     

  ‘대변’ 포구에 대한 제3설이 있다. “태변만(太邊灣)은 선두포(船頭浦)라고 부르며, 기장군에 속한다.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가옥은 후쿠오카현 어민의 주거시설이고, 그 오른쪽에 나란히 보이는 것은 미에현(三重縣) 어민이 독립 이주한 것이다. 그 오른쪽, 즉 만(灣)의 북동 한 켠에 집단으로 모여 사는 일본인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야마구치현 사람들이 잡화를 팔고 있다. 이 만은 경남 동쪽 해안에서 좋은 항으로 이름났는데 계절에 따라 고기잡이하러 오는 어선 출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삼치잡이 철이 되면 일본 어선이 많이 모여든다.”『한국수산지』2, (1909) 조선 땅이 거의 일본인 손아귀에 들어갈 즈음에 그들 위주로 땅이름을 해석하고 정하였던 모양이다. 수백 년 전의 대동미나 대동고는 알 리도,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의 해석이라는 느낌이다. ‘선두’는 우리말 ‘선군(船軍), 즉 뱃사람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어떻든 ‘태변’은 이후 통용된 적이 없으니 ‘책상 위’의 땅이름이 아닐까. 결론은 이렇다. 첫째, ‘대변포구’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아직 없다. 둘째, 어린이들이 마을이름을 해결할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나서야 했다.                          

  두 번째로 소개할 혐오 지명은 ‘양아치고개’다. 강원도 원주시에 있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兩峨峙/양앗치’라고 지명/언문(諺文) 순서로 적어놓았다. 다음은 『지명조사철』 기록이다. “양아치(兩峨峙) : 약 250년 전 양아치 부락 인근에 고개가 둘 있음으로 그 사람들로부터 양아치라 불리어왔음.” 두 고개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높을 峨’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다음은 『한국지명총람』(1967) 내용이다. 

 

양아-치(兩峨峙)[양아치리] 【마을】 양아치고개 밑에 있는 마을. 운계리에서 흥업면으로 넘어감.              양아-치(兩峨峙) 【고개】 귀래리의 동쪽에 있는 고개

 

원래는 고개 이름이었는데 아랫마을 이름으로도 쓰였다. 이렇게 한 글자 차이도 없는 전통 지명유래(1984년까지 초등학교 ‘양아치분교’는 존재함)가 1990년대에 와서 양어치(兩御峙)•양안치(兩鞍峙)가 맞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이른바 듣기 나쁜 땅이름이라고 해서 나온 자생설(自生說)이라고나 할까. 보통명사 ‘양아치’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양아치 洋--  1. 품행이 불량스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넝마나 헌 종이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줍는 사람. (=넝마주이)  3. ‘거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양(아치)’이 반드시 한자 洋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음과 같은 배경을 고려하면 타당하다.  ‘洋’은 서양, 더 좁게는 미국을 일컫는 말이다. 양놈•양공주 같은 말은 20세기 들어 한국전쟁 이후에 생긴 문물이고 이름이다. ‘-아치’는 접미사로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뜻과 홀하게 이르는 뜻을 더하는 말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벼슬아치•구실아치 같은 데서 그 쓰임을 본다. 그러므로 1910년 이전에 보이는 양아치고개의 ‘양’은 ‘洋’이 될 수 없으며, 실제 ‘兩’으로 쓰였으므로 저속한 이름 양아치와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렇지만 그 영향 때문이겠지만 이미 표지판에는 ‘양안치’가 대세인 듯하다. 하지만 강원도•원주시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꾼 적은 없다고 한다. 민원이나 의제가 올라왔지만 정정당당히 부결시켰다. 대변초등학교 경우와 대조적이다.         

 

  세 번째로 소개할 혐오지명은 ‘사창00’다. 강원도 춘천시에는 춘천역에서 도청 가는 길 중간에 사창(社倉)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조선 시대에 사창(백성들에게 걷은 환곡을 저장하던 창고)이 있던 곳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성매매 거리 사창(私娼)과 발음이 같다(혼동) 하여 ‘소양고개’로 이름을 바꾸었다. 역시 지명의 하향 평준화 현상이다. 전국에 사창동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유지 또는 하향해갈지 두고 볼 일이다. 

 

▲ 큰양안치고개 (사진=김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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