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명 이야기⑲ ‘00다리’가 없어지고 교(량)만 생긴다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기사입력 2025/10/16 [08:37]

한국의 지명 이야기⑲ ‘00다리’가 없어지고 교(량)만 생긴다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입력 : 2025/10/16 [08:37]

부산에 가면 영도다리횟집•영도다리떡집 같은 상호가 있다.  [눈물의 영도다리]1965년, [영도다리](2010년) 같은 영화가 있고. [영도다리를 건너다](2011년)라는 드라마가 있다. 영도다리에는 일제강점기의 식량 ‘수출’과 피난민의 애환이 서려 있다. 더구나 다리는 큰 배가 지나다니도록 열고 닫히니(여는다리. 開閉式-跳開橋) 이 신식 문물에 당시 조선 사람들은 얼마나 열광했으랴!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영도다리’는 본래 없다. 1934년 개통당시는 ‘부산대교’였다. 사람들은 중구 남포동에서 영도(影島) 섬을 건너는 다리라 하여 그 지명•역할대로 ‘영도다리’라 불렀다. 쉽고도 분명한 자생[自然生成] 우리말 이름이다. 판에 박힌 행정•관료식 이름과는 다르다. 1980년 ‘부산대교’가 개통되자 철거된 옛 다리는 2013년에 개량되어 ‘영도대교’로 거듭 났으니,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과 중구 중앙동을 연결하는 다리는 둘이나 된다. 

 

우리나라에 ‘0다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예는 몇  있다. 청주시 문산리 돌다리는 충북유형문화유산 222호다. 청주시는 1997년에 무심천의 청남교를 확장하면서 1932년에 놓은 ‘꽃다리’를 철거, 확장하여 지금의 청남교를 만들었다. 꽃이 있던 다리는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청남교를 ‘꽃다리’라고 부르고, 정거장 이름으로 쓰인다. 대전시에도 중구 대종로와 17번국도 접점에 ‘돌다리네거리’라는 지명이 있다. ‘돌다리골/마을’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데 행정지명은 한자로 옮긴 석교동(石橋洞)이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산동리 601-32에는 농다리(鎭川 籠橋)가 있다.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1976년에 지정되었다.

 

전주시(옛 全州府) 읍지 『완산지』에는 전주부성의 3대 다리인 남천교·서천교·추천교가 등재되어 있는데 모두 돌다리다. 실은 필요에 따라 거듭 다리는 생기게 마련인데 대개가 나무다리다. 싸전다리[米廛], 쇠전다리[소廛, 우시장], 설대전다리[煙竹橋], 박참판다리(朴基順이 1932년에 개축), 소금전다리[鹽廛橋]가 그것이다. (이동희, 고지도로 본 전주천의 다리)

 

전통시대에 유일한 공식 문자는 한자다. 땅이름도 그러하고, 공공문자가 한자이니만큼 문맹자(한자를 모르는 사람)는 일찌감치 따돌린 나라다스림[治國]이다. 20세기 일제강점기에 들어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한자로 쓸 수 있는 것은 100% 한자로 쓴다. 그들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자신들 문자 (가타, 히라)가나는 너무 단순하여 변별력이 떨어진다. 대신 그들은 한자를 뜻으로 읽는다[訓讀]. 이 때문에 그들의 낱말은 세월이 지나도 줄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1927)에 나오는 ‘河童-橋’는 ‘캅빠(물귀신)-바시(다리)’라고 뜻으로 읽지, 한자 발음은 일찌감치 증발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공공 언어나 문자에 한자전용은 더 굳어져갔으며, 광복이 되어도 망국시절의 언어문자 생활은 무감각한 채로 이어져서 한자 어휘는 늘어만 간다. 그 한자어조차 한글로 써두니 심하게 말하면 이중문맹정책(二重文盲政策) 아닌가! 

 

▲ 포항 월포다리 (사진=신종원)


동해안을 걷는 코스 ‘해파랑길’에는 수많은 다리가 걸려 있다. 남쪽 끝 부산시에서 북쪽 끝  고성군을 지나는 동안 나는 겨우 두 개의 ‘다리’와 만났다. 2018년 9월 1일 포항시 ‘월포다리’를 건널 때 너무나 생소하고, 한편 반갑고 고마운 이름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래 이것은 ‘다리’야! 왜 한 번도 이 생각을 못하고 지나쳤을까? 무슨무슨 교(橋)•대교(大橋)라고 주입식으로 배워 말할 뿐, 말뜻을 떠올리기보다는 그 현장을 봐서 알거나 영상을 떠올리면서 일상을 보낸 것이 고작이었다. ‘한자도 우리말’이지만 ‘0/00(대)교’라 하면 ‘다리 橋’를 되새겨야 하니 요즘말로 머리에 ‘엔터(enter)/입력’을 두 번 해야 알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면서 ‘00교/대교’가 ‘00다리’보다 먼저 눈에 띌 터이다. 무슨 말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교]는 한자말인데 중국에서 온 것이야. ‘다리’를 쓸 수 있는 우리글이 없으니까 중국 문자를 배워 그렇게 써왔단다.” 딱하게도 우리 겨레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한글을 창제한 사실과, 지금도 그대로 한자말을 한글로만(音讀) 적어 쓰고 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속사정은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여서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의 경북 울진군에는 ‘은어다리’가 있다. 다리 겉모양을 은빛 물고기로 만들어놓았으니 지역의 명물이다. 이 길 순례자들이 올린 블로그를 보면, ‘橋’가 아니라 우리말 ‘다리’의 존재를 새삼 깨닫고 그 이름을 자랑스럽고 고맙게 여긴다. 그러고 보면 이런 ‘다리’야 말로 최고의 우리말/한글 문화유산이 아닌가! 

 

‘다리’란 낱말을 가장 아름답고 정성스레 쓰는 지자체는 경기도 수원시가 아닌가 싶다. 반딧불이다리•나비잠자리다리•소나무다리•갈참나무다리•꽃더미다리•풍뎅이다리•새터다리•하늘소다리•무지개다리에서 사진 찍고 글 올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용인시에는 ‘미르다리’가 있다. 숲속다리(서울 평창동)•긴등다리(부천시)•한얼다리(서울올림픽공원) … 

 

해마다 수 십, 수 백 지역에 새로 다리를 놓고 있지만 천편일률적으로 ‘0/00(대)교’다. [의왕시 교량현황]을 보면 72개 교량 가운데 ‘00다리’는 하나도 없다. 후부요소/형태소(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가 한자말이니 전부요소/이름소도 한자말이면 그나마 어울리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린다. 예를 들면 소귀교(서울 牛耳동), 하늘교(서울 평창동), 무지개교, 해오름교•토끼교(분당구 판교원로), 오링개제1교~오링개제4교(의왕시), 꽃밭머리교(원주시) 같은 것이다.

 

동해안에서 두 개의 우리말 이름 다리를 본 뒤, 나에게는 어디 다리를 지나든 유심히 그 작명/이름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가운데 몇을 위에서 소개하였다. (2025년 한글날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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