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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지명 변천을 예로 들어본다. “경덕왕 16년(757)에 사벌주(沙伐州)를 상주(尙州)로 고치고, 1주 10군 30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삽량주(歃良州)를 양주(良州)로 고치고 (아래 줄임).” ‘새벌’ 정도로 읽었을 전래의 땅이름 ‘沙伐’이 그 뜻도 모를 ‘상주’가 되었다. ‘샐’ 정도로 읽었을 ‘삽량(歃良)’이 ‘어진(良) 고을(州)’로 탈바꿈하였다. 한화(漢化) 정책을 쓰고부터 신라 고을이나 중국 고을은 같은 이름을 쓰게 되었다. ‘여기가 중국 당나라인지 신라 땅인지 모르는’ 형국이 시작되었다. 큰 고을부터 중국 땅이름을 본뜨기 시작하여 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면•리(面•里)까지도 한자식 지명으로 되어갔다. 서신 왕래나 소송•재판 같은 데서 보면 최소 단위 마을 이름은 소리나 뜻(音•義)을 빌어 ⍟⍟坊 • ⍟⍟谷 같이 한자로 썼지만 그런대로 토박이말이 남게 되었다(내앞=川前, 바람산=八音山). 우리 땅이름 역사에서 19세기까지는 한자 지명이 ‘모범’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선 일본식 지명이 모범이다. 서울 한양은 경성(京城)이 되었고, 도심 마을이나 상가 이름은 ⍟⍟마찌(町)•⍟⍟쵸오메(丁目)•⍟⍟도오리(通)로 하위 지명 단위가 바뀌었다. 마을마다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조선말 지명을 식민지배층이 알아들을 리 없고, 그 모두를 대접해줄 까닭도 없다. 골목 하나 지나면 다른 동명(洞名)이 나오고, 개울 건너면 또 다른 이름의 마을이 있다. 이름이란 서로를 구별하기 위한 도구/방식이기 때문이다. 식민 행정은 이들을 대거 축소/통합하여 자신들이 모르는 고유의 마을 이름 대신에 ⍟⍟1•2•3洞, ⍟⍟1•2里 식으로 일련번호를 붙였다. 문제는 광복 뒤에도 이런 군대식, 막사식 숫자 지명 그대로였고, 구역이 확장되면서 더 늘어났다(예를 들면, 목6동).
지명이 바뀌고 통폐합되는 바람에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았다가 낭패를 보고 돌아간 사례를 목격한 일이 있다. 1990년대 초반, 춘천시 강원대학교(효자3동) 정문 거리에서 50대 여성이 애틋한 표정으로 나에게 ‘복사골’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런 마을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 없다고 대답했다. 그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 근처 어디쯤인데 … ”라고 말을 흐리더니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보았다. 십여 년 뒤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강원도편』(1911)을 편찬할 때다. ‘복사골’을 잊을 수 없어서 유심히 살피고 조사하였더니 마을이 없어질 리는 없고, 마을이름이 몇 번 바뀌는 통에 까마득히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이름이었다. 1911년 당시에는 ‘桃花谷’으로 등록되어 있고, 부르는 이름(언문,諺文)은 ‘도화리골’이며, 행정상으로는 대판리(大板里)에 속해 있었다. 그렇다. ‘도화’가 복사(복숭아)꽃 아닌가. 이 이력을 당시 그 여인에게 알려드렸다 하더라도 이미 아스팔트 대로에다,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는 등 워낙 지형이 바뀌어서 찾았을지는 의문이지만. 복사골은 다시 통폐합을 거쳐 ‘약사리’ 소속이 되었다가 1946년 약사리에서 갈라져 나와 효자동이 되었다. 당시 나는 그이가 중국동포라서 그간 서신 왕래조차 없었던 결과라고 추측하였다. 현재 같은 지명•주소 상태라면 이민 가족이나 친지가 앞으로 자신의 고향이나 옛 지점을 찾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예외가 없지는 않다.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 이름은 본래의 동명만 따서 벽채에 써붙인 로고로서 브랜드•팻네임이 없이 넉 자, 다섯 자가 고작이다. 가좌마을(2단지아파트 몇 동 몇 호), 성저마을, 동문아파트, 후곡마을, 문촌마을, 탄현마을 등등… .
지금은 도로명주소 체계로 바뀌었지만, 그 정착은 새만금 둑 사업만큼이나 멀다. 길이 먼저 나거나 도시계획이 선 다음 취락이 형성되어 온 과정이 아닌 만큼 도로명주소를 쓰기에는 너무 흐트러져서 아귀가 맞지 않는다. 거기에다 나라 주택의 과반수(2023년 통계로 53.1%)가 아파트로서 그 이름 또한 태반이 외국어다. 아파트 이름은 영어로 길게 해야 시부모들이 찾아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지 않은가. 사실 확인은 안 해보았지만, 우리나라 유학생이 외국에서 장학금을 신청하자 “학생은 고국에서 캐슬(성채)/스테이트(영토)에 사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장학금을 신청하느냐”고 타박을 맞았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땅에서 생겨난 자연 발생적 땅이름이 처음에는 중국말로, 그 다음에는 일본말로, 마지막에는 서양말로 지어지는 나랏말 수난의 역사다. 아파트 이름으로는 영•독•불어가 가장 많으며, ‘포레나 FORENA’ 같은 스웨덴 말도 보인다. 부산시 강서구 명지1동의 새 동네 이름은 ‘에코델타동’이다. 과연 신문에 “에코델타동, 그기 머꼬?”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다(2024년 2월).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아파트는 전남 나주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로서 글자 수가 무려 25자나 된다. 3위는 ‘동탄 시범 다은마을 월드메르디앙 반도유보라’ 19자다. 글자 수가 늘어나는 까닭은 (지역)광명+(브랜드)자이+(팻네임/애칭)더샵포레나와 같이 성분/요소를 줄줄이 다 밝히기 때문이다. 두 개 이상의 건설사가 합작할 때는 ‘센트럴자이&위브캐슬’ 식이 되니 갈수록 가관이다. 이름이 길고 외국어가 많을수록 ‘있어 보이고’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나도 한때 유리알처럼 매끈하고 기능적이며 집안에 오르내리는 층이 없는 아파트라는 건축을 경이롭게 본 적이 있다. 어느날 유학파 교수가 쓴 신문 칼럼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는 한강유람선을 타고 좌우를 보면 아파트가 수용소군도 같다고 썼다. 당시만 해도 나지막한 아파트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떤 이는 1970년대 건설된 아파트를 가리켜 ‘병영’이라 했고, 서울의 5천분의 1 축적 지도를 보고는 “한강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한 곳이 바로 반포아파트 단지였다고 한다(42쪽).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공화국』(길혜연 옮김, 2007)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우리 한국인의 상식을 뒤집었다.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서 하늘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말은 북유럽의 여러 나라나 프랑스를 가보면 사실과 다름을 수치로 증명해 보인다. 글쓴이는 도시 가옥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한국인의 무심함을 ‘유동(流動)의 문화’라고 정의하면서 서구인들의 ‘축적 문화’와 비교하였다. ‘축적 문화’는 시간성에 뿌리를 두면서 이미 지어진 가옥의 영속성에 더 집착하는 심성이다. 1960년에 존재했던 서울문화재 가운데 2/3 이상이 현재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택이 들어섰다(17쪽).
없는 데서 새로 짓는 것이니 집과 이름 짓기도 마음대로인가. 글쓴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대단위 아파트 차이를 논하면서,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부정책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하여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라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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