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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은 다 비슷하지 않아?”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지인들이 내게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사물악기가 어우러져 흥겨운 장단을 만들고,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모습. 겉으로 보면 다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농악을 배우고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다 보니, 예전엔 비슷하게만 보였던 것들 사이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농악은 지역과 목적에 따라 여러 갈래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레농악과 연예농악이다.
두레농악은 마을 공동체의 품앗이 문화에서 시작됐다. 김매기나 벼 베기 같은 힘든 농사일을 함께할 때,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호흡을 맞추고, 고된 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끼리 결속을 다지는 데 목적이 있었기에, 복식도 소박하고 장단도 단단하다. 신명도 격렬하기보다는 깊고 묵직하다. 군포시 대야동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둔대농악도 바로 이 두레농악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특히 둔대농악은 외부 전문가의 영향을 거치지 않고, 지역 전승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보존된 가락을 이어왔다. ‘길가락(칠채)’, ‘짠지패가락’, ‘맺음가락’ 같은 독자적인 장단은 단순한 지역 변형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미감을 품고 있다. 또한 농기에 새겨진 "同人於野(들판의 사람까지 함께한다)"라는 문구는 둔대농악이 단지 연희가 아니라, 공동체 정신을 품은 민속예술임을 보여준다.
반면 연예농악은 마을 밖을 향했다. 길을 따라 떠돌며 사람들을 모으고, 흥을 팔고, 웃음을 전하는 농악이었다. 남사당패 같은 전문 예인 집단이 장단을 울리고, 풍자와 재담을 풀어내며 관객의 흥을 끌어냈다. 보여주기 위한 농악이었기에 장단은 화려하고, 동작도 다이내믹했다. 두레농악이 ‘우리끼리’를 위한 농악이었다면, 연예농악은 ‘남에게 보여주는’ 농악이었다. 둔대농악처럼 마을 단위의 농악은 공동체의 결속과 신앙적 의미를 중심에 두고, 반면 연예농악은 기예와 흥행성을 중시하는 예능 중심의 농악이다. 연예농악의 대표적 존재였던 남사당패는 줄타기, 버나, 꼭두각시놀음 등 다양한 연희를 펼쳤다. 그 중심에는 늘 흥겨운 풍물판이 어김없이 펼쳐졌다.
흥미롭게도 군포에도 남사당패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둔대농악의 고 정형수 어르신의 구술에 따르면, 1930년대 군포 둔터에서 남사당패가 꼭두각시놀음(전통인형극)을 공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 공연을 이끈 이는 남사당패 최고의 꼭두쇠였던 남운용 명인이었다. 남운용 명인은 지금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남기문 명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나를 아는 선배님들과 동네 어르신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너라도 앞장서서 둔대농악을 되살려야 하지 않겠냐"고. 물론, 지금이라도 둔대농악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모양만 되살린다고 해서 그 속의 온기까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둔대농악은 단순한 기능이나 형식을 되살리는 것만으로 온전히 복원될 수 없다. 그 안에는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과 공동체의 마음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둔대농악을 되살린다는 것은, 단순히 가락을 맞추고 무대를 재현하는 일이 아니다. 진짜 복원은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여, 서로를 바라보고, 웃고, 어깨를 맞대는 데서 시작된다. 삶이 복원되지 않으면, 소리도 복원될 수 없다. 둔대농악은 기술이 아니라, 삶과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함께 다시 써 내려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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