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명 이야기] 21세기 공공언어의 민낯➀ - 아직도 산본인가?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기사입력 2025/01/16 [08:44]

[한국의 지명 이야기] 21세기 공공언어의 민낯➀ - 아직도 산본인가?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입력 : 2025/01/16 [08:44]

 편집자주) 본보는 2025년 을사년 정초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종원 명예교수의 지명유래 연재 글을 실어 우리나라 지명 속 공공언어의 민낯을 살펴보고 본래의 우리말에 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자 한다. 오늘 글이 그 첫 지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등지고 물에 접해 있는 자리를 좋은 집터로 여긴다. 자연히 마을이나 집은 산 아래 있게 마련이고, 이런 지형 자체가 마을 이름이 된다. 그러한 지명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말소리[音韻]가 변해간다. 뫼아래→미아리(경기도 남양주군 별내면), 산하실→산아실→사라실(산청군 삼장면), 산하리→산다리→산달리(안동시 길안면), 산하방→사나뱅이(울주군 산암리) 같은 식이다. 토박이 땅 이름은 더욱 세련(?)되어 한자가 섞이거나 아예 한자지명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다행히(?) ‘도로명주소’라는 세계화 시대를 만나 토박이말 지명이 되살아난 사례도 있다. 도로명주소 체계는 우리의 역사·문화와 동떨어진 시책으로서 아직도 혼란 상태에 있으나 우리의 전래지명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래 그 예를 들어둔다.     

 

 

  ‘산밑’ 계열의 지명은 시간이 흐르면서 몇 가지 변화를 보였고, 한자로는 山底•山本•山下라고도 썼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이름 ‘산밋(산밑)’이야말로 본령이라 하겠다. ‘산밑 김씨’도 있듯이 산밑이란 땅 이름은 성씨의 본관(충남 서산시 고북면)으로 쓰일 만큼 일반적이고 역사가 깊다. 

  군포시의 산본(山本) 지명은 황윤석(1729~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에 한자로 ‘山底’, 한글로는 ‘산밋을’이라 썼다. 『일성록(日省錄)』(1786)에도 ‘산저리(山底里)’였다. 1891년 『과천현읍지(果川縣邑誌)』에 ‘남면 산본리(南面 山本-里)’가 비로소 등장한다. 산저(山底)든 산본(山本)이든 글자만 다를 뿐 모두 ‘뫼-아래/밑’이다. 이후 우리말 ‘뫼’가 한자어 ‘山’에 자리를 내주어 ‘뫼’는 겨우 지명 정도에나 남게 된다. 이리하여 ‘뫼아래’의 신식 이름(지명) ‘미아리’에 이르면 지명 유래는 잊혀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천자문(千字文)』을 보면 ‘믿/밋 本(본)’이라고 나오니 底•本 두 글자 중에서 선택/가변적이던 한자 표기가 일제강점기 이래 (山)本으로 굳어졌다.

 

▲ 출처:『조선지지자료』 경기편  © 군포시민신문

 

  일본인들은 산밑을 山本이라 쓰기(지명이든 이름이든) 때문이며, 읽고 말하기는 ‘야마모토’라고 한다. 山本이라는 표기는 그들이 반겨 마지않았을 터이며, 식민지 시대 산본지역 관리 가운데도 일본의 주요 성(大姓) ‘山本+아무개’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本’을 ‘밑’의 뜻으로 아는 이가 별로 없고 ‘근본 本’이라고 하여 ‘원칙’, ‘기본’으로 이해한다. 산본동(山本洞)의 한자를 알고 읽더라도 그 뜻을 모른다면 그 지명은 무의미한 땅 이름이 되고 말 것이다. 지명을 문제 삼는 이는 왜색 이름이 혐오지명이라고 민원을 올리거나 인터넷에서 거론한다. ‘혐오’란 나 자신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남들이 그렇게 느끼고 인식하는 감정이므로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도로명주소가 시행되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전통 지명 ‘산밑’이 소생되는 쾌거를 보이는데 군포시는 조용하기만 하다. 군포 산본마을은 ‘(수리)산 밑’에 있다 하여 ‘산밑’이다. 지하철이 생기면서 두 지역 모두 역이 들어서서 수리산역과 산본역은 연이어 있다. 산본역 이름을 ‘산밑역’으로 했다면 구차한 지명 유래나 설명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신종원, <‘산밑’ 계열 땅이름의 한자지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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