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재일동포를 기억하다 ①

산울교회와 한빛누리재단이 함께한 일본비전트립 참가기

진이헌 기자 | 기사입력 2024/07/22 [07:18]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기억하다 ①

산울교회와 한빛누리재단이 함께한 일본비전트립 참가기

진이헌 기자 | 입력 : 2024/07/22 [07:18]

편집자 주) 산울교회와 한빛누리재단이 함께한 일본비전트립이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4박 5일간 진행됨에 따라 교토와 오사카 지역의 재일동포 관련 거점인 청수사, 코 무덤, 고려미술관, 도시샤 대학, 우토로 마을, 코리아타운역사자료관 등을 방문했다. 탈북민인 조문호 감독, 재일동포인 재일대한기독교회 관계자와의 만남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역사와 아픔을 3일에 걸쳐 연재한다.


   

▲ 청수사 사찰에 나무가 층층이 연결되어 있다. 청수사의 건축 기술을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사진=진이헌)  © 군포시민신문


“재일동포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주류가 아닌 삶을 살았다”

 

방문 중 만난 탈북민 출신 조문호 감독은 재일동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큐 감독으로서 재일동포 인권 문제와 관련된 다큐를 만드는 일을 준비 중이다.

 

7월 18일 일본비전트립팀은 가장 먼저 청수사에 방문했다. 청수사는 교토시 공식 관광가이드에서 주요 관광지로 소개할 만큼 교토에 들르면 한 번씩 방문하는 관광지이다. 청수사는 헤이안 시대 초기, 778년에 건축된 사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일본비전트립팀은 도래인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는데 도래인이란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한국민족대백과사전). 청수사는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곳에는 백제계 도래인들의 기술이 들어갔다.

 

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위상이 좋았던 우리 민족이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며 강한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다음 방문지는 코 무덤(귀 무덤)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숭배하는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들이 죽인 조선인들의 귀와 코가 묻혀있다. 원래는 귀 무덤이었으나 귀를 가져가면 둘을 죽인 것으로 볼 수 있어서 하나뿐인 코를 베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래 이름은 코 무덤이었으나 이름이 섬뜩해서 코 무덤으로 바뀌었다.

 

▲ 코 무덤의 모습이다. (사진=진이헌)  © 군포시민신문


코 무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있었다. 나의 생각은 큰 입구로 들어가서 잘 정비된 공간에 있을 줄 알았지만, 그냥 길거리를 걷다가 작은 놀이터를 지났는데 그 옆에 무덤이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나는 이것이 재일동포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은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이국땅에서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외롭게 살아가던 그 아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정조문 선생 역시 그런 아픔을 가진 재일동포 중 하나다. 정조문 선생은 1918년 독립운동가 정진국 선생의 자녀로 경북 예천군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며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다. 그 이후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 파친코를 즐길 수 있는 가게를 열어 돈을 모았다. 그 당시 재일동포는 변변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아서 파친코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정조문 선생은 그 자금으로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들을 사 모은 뒤 1988년 고려미술관을 개관했다. 그가 산 백자는 집 두 채 값에 해당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에 자부심이었다. 

 

▲ 정조문 선생이다. (사진=진이헌)  © 군포시민신문


코 무덤 다음으로 방문한 고려미술관은 약 1,700여 점의 한국 문화유산을 소유하고 있고 약 80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정조문 선생이 미술관 개관 1년 후에 소천하시며 아들인 정희두 선생이 관장을 맡고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니 정조문 선생이 집 두채 값을 주고 산 백자가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 작품을 보며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들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정조문 선생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며 앞으로 이분과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 역시 했다.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대마종씨호행귀로행렬도’ 이다. 이 그림은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행렬을 그린 그림이다. 

 

▲ ‘대마종씨호행귀로행렬도’ 원본이다. 원래는 촬영이 금지인 작품이지만 특별히 허가를 받았다. (사진=진이헌)     ©군포시민신문

 

정희두 관장은 최근 들어 조선통신사에 대한 연구와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그는 “일본 교과서 에는 조선통신사에 관한 분량이 적어 일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정희두 관장이다. (사진=진이헌)  © 군포시민신문

 

# 독자가 내는 소중한 월 5천원 이상의 자동이체 후원은 군포시민신문 대부분의 재원이자 올바른 지역언론을 지킬 수 있는 힘입니다. 아래의 이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시면 월 자동이체(CMS) 신청이 가능합니다. https://ap.hyosungcmsplus.co.kr/external/shorten/20230113MW0S32Vr2f 

* 후원계좌 :  농협 301-0163-7925-91 주식회사 시민미디어 

 

  • 도배방지 이미지

  • 산울맨 2024/07/29 [14:48] 수정 | 삭제
  • 잘 몰랐던 재일 동포의 역사를 잘 소개해 주어 감사합니다.
광고
광고
사진기사
메인사진
떨리는 마음 안고 치른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 군포 고사장 풍경
1/4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