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리영희발자취 기행, 서울 화양동 시절을 다녀와서

고 리영희 선생(1929~2010)에 대한 短想(단상)

서한건 리영희기념사업회 회원 | 기사입력 2024/06/03 [08:21]

[기고] 리영희발자취 기행, 서울 화양동 시절을 다녀와서

고 리영희 선생(1929~2010)에 대한 短想(단상)

서한건 리영희기념사업회 회원 | 입력 : 2024/06/03 [08:21]

  오늘은 6월의 첫날이자 평소 존경하던 리영희 교수님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는 날이기도 하여 의미가 남다르다.

 

  이날 오전 우리 일행은 교수님의 중장년 시절 거주하셨던 화양동 집터와 교편을 잡으셨던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국내 최초로 설립된 한양대학교 부설 중국문제연구소를 방문했다.

 

▲ 고 리영희 선생 화양동 집터 앞에서 (사진=리영희기념사업회)  © 군포시민신문


  인자하신 모습의 그 온화한 미소로 환생하셔서 “어서들 오시게”하며 일행을 반겨 주시는 듯했다.

 

  교수님이 기거하셨던 화양동 집터의 작은 뜰 이름 모를 나목의 쭉 뻗은 가지는 단아하고, 대쪽 같으셨던 교수님 눈빛의 섬광과 기개를 보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누가 뭐래도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양심의 보루이자 표상이었다.

 

▲ 한양대 부설 중국문제연구소 (사진=리영희기념사업회)     ©군포시민신문

 

  양심을 지키기 위해 평생 고난과 핍박을 감내하며 오롯이 “사상의 은사”로만 살아가신 현대사의 대표적 지식인이었고, 이 시대의 어른다우신 참 어른이었다.

 

  교수님이 생존에 계신다면 작금의 세태를 보시고 어떤 “촌철살인”의 말씀을 하셨을까?

 

  리영희 교수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

 

  교수님을 뵙고 싶을 때,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토로하신 저서를 탐독하고 예전에 사셨던 화양동 댁을 방문해도 이제는 낯설기만한 다세대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고 ...

 

  우리 일행은 허허로운 가슴으로 하릴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내 중앙동 리영희방 모습 (사진=리영희기념사업회)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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