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주년 5.18민중항쟁, 광주 방문기

신완섭 기자 | 기사입력 2024/05/20 [05:23]

44주년 5.18민중항쟁, 광주 방문기

신완섭 기자 | 입력 : 2024/05/20 [05:23]

지난 18일 오전 6시 30분, 군포시청 앞 광주행 대절버스에 안양·군포·의왕·과천 일대의 시민 30여 명이 모였다. 경기중부민주화계승사업회(상임대표 조완기)가 주관하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방문 행사에 취재차 동행했다.

 

  44주년 5.18민주항쟁 기념 5.18 광주 역사기행 (사진=안재우) © 군포시민신문

 

전일빌딩245

1980년 5.18항쟁 당시 전남도청 앞에 위치했던 전일빌딩은 1968년 기공되어 광주광역시의 요청으로 2011년 도시공사가 매입한 이후 리모델링을 통해 2017년 5.18사적지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이곳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0시 반 무렵이었으나 5.18민주화광장과 금남로 일대에 차량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목적지에 못 미쳐 하차하여 빌딩 내로 들어서니 이미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행사요원의 안내에 따라 11층 옥상으로 올라가 당시 시민군들이 끝까지 항쟁했던 구 전남도청 건물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10층으로 내려가니 해설사의 설명이 한창이다. 엿듣다 보니 이 빌딩이 당시 진압군 헬기의 기총사격을 받았던 곳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4차례 현장감식 결과 총 245발의 총알이 박힌 자국을 확인한 끝에 당시의 현장감을 살려 아예 빌딩 이름을 <전일빌딩245>으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사용된 기관단총과 총알이 박힌 실물 벽체가 온전히 전시되어 있고, 9층과 10층을 터서 만든 대형스크린을 통해 당시의 생생했던 헬기 총격 장면이 상영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섬뜩이게 만든다. 9층 전시 공간에는 당시의 기총사격 명령 문서, 정부와 언론의 왜곡보도 자료, 피해 물증 자료, 특파원들의 해외언론 보도자료 등이 서로 대치형태로 전시되어 가해와 피해의 소용돌이를 맛보게 한다. 8층 이하는 휴게공간 일부를 제외하고는 콘텐츠허브, 생활문화센터, 디지털정보도서관, 아카이브실 등 관련 정보를 다양하게 습득하도록 5.18관련 문화공간으로 차려져 있다. 인근 <5.18민주화운동기념관>도 가보아야 하기에 40분가량 머문 후 1층으로 내려오니 이벤트 코너에서 개인 SNS에 현장 사진을 올려주면 손 선풍기나 기념품을 준다기에 급히 개인 블로그에 올려 휴대용 선풍기를 선물 받았다. 올여름 야외활동 때마다 선풍기를 틀며 이날의 방문을 추억으로 간직해 보리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일빌딩245에서 금남로4가역 쪽으로 한 블록만 가면 기록관 건물이 나온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관 공유할 목적으로 2015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에서부터 3층까지 개방형 보존서고와 상설전시장이 마련되어 이날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단체관광객도 눈에 자주 띄었다. 둘러보다 보면 5.18민주화운동 흔적 외에도 세계 전반의 인권운동사도 엿볼 수 있고 영어해설사도 배치되어 보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이곳 김남주 민족시인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댔다. 그가 남긴 시 <사랑1>의 전문을 읊조리는 것으로 관람의 감동을 대신한다.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어/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다음 행선지인 <국립5.18민주묘지>로 가기 전에 안양의 사진작가 최병렬 선생과 군포시민신문 안재우 사진기자의 제의로 금남로 대로에서 단체 촬영 후 일명 ‘다함께 차차차’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날의 막내 참가자인 최지희(23세 대학생)의 뒤로 나란히 줄을 맞춰 다섯 명이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을 재현해 보았는데, 유명 대중가수 <비틀즈> 영상을 흉내 내본 것이라나 뭐라나. 지나가는 행인들이 힐끔힐끔 ‘미친 넘들!’ 따가운 눈총을 보내도 두 감독님의 지시하에 오늘의 특종감이 되길 바라며 제법 열심을 부렸다.

 

장독대 점심식사

12시 반에 찾아간 민주화광장 옆편 <장독대>는 이곳 출신인 오늘 행사의 총감독 문경식 동지가 손수 추천한 광주의 최고맛집 중 한 곳이라서 짧게 소개한다. 돼지주물럭 정식에 지역 막걸리를 한 잔 곁들였는데, 메인요리 외에도 정갈한 맛의 밑반찬들, 특히 열무김치 맛이 일품이었으므로 서빙 직원이 재차 반찬을 공수하는 수고를 더했을 정도로 맛난 식사였다. 

 

 오월 거리굿 (사진=안재우)  © 군포시민신문

 

국립5.18민주묘지

버스가 묘역 후문 쪽에서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다. 이곳은 흔히 신묘역인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 되기 전에 1980년 5월 항쟁 때 목숨을 잃은 5월 영령을 비롯해 암울했던 시대에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고문·살해·분신 등으로 민주 제단에 바쳐진 열사들의 넋이 살아 숨쉬는 ‘5.18구묘지’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는 앞서 언급한 김남주 시인, 이철규 열사 외에도 서울에서 희생되었던 이한열 열사, 백남기 열사 등이 묻혀있다. 특히 5.18실화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했던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 독일인 기자의 영령이 함께 모셔져 있어서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5.18 참상을 제일 먼저 해외로 알린 외국언론인으로서,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히던 2016년 2월 광주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서둘러 신묘역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길 입구에 전두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길바닥에 갈기갈기 부서진 채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있다. 듣기로는 북녘땅이 내다뵈는 DMZ 마을에 묻어달라는 유언도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시신마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다. 내려가는 길에는 유명시인들의 위령시비가 세워져 영령들이 묻힌 곳으로 우릴 이끈다. 숭모루를 지나 우리 일행은 5.18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단체 문상을 했다. 그리고는 추모탑 뒤편 7묘역에 묻혀계신 고 리영희 선생 묘소로 찾아갔다. 묘 앞에서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자격으로 선생이 이곳 5.18묘지에 안치된 사연을 소개했다. “1980년 5월 17일 밤 11시 반경에 들이닥친 안기부 요원들에게 끌려가 두 달가량 심문과 고초를 겪었는데, 김대중 내란죄 및 5월 항쟁(당시로는 사태라도 함) 배후조종자의 한 사람으로 미리 죄상을 정해놓고 거짓 실토를 유도했던 탓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5.18 유공자로 둔갑하게 되었기 때문”임을 알려주었다. 엄혹했던 시절의 참으로 어이없던 사건이었다. 우리는 일동 묵념하고, 비문에 새겨진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히다”란 문구도 쓰다듬은 후,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도 함께 제창했다. 이것으로 광주 행사를 모두 마쳤다.

 

오늘 낮에 광주 시내를 오가며 본 현수막 중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패러디한 ‘윤을 위한 퇴진곡’ 문구가 눈에 어른거린다. 반면에 민주화광장에서 열린 ‘광주 세계반제동시투쟁’ 행사에서 한 노래패가 부르던 “한 떨기 꽃으로 빛나는 사람들 있다”는 가사와 위령시비에 새겨져 있던 김용택 시인의 시 <그대들이 열어주고 우리가 열어가야 할 훤한 세상> 중 ‘우리들 가슴 깊이 박힌 꽃/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온 저 세상과/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을/ 비춰주는 꽃/ 꽃으로 피네’가 서로 오버랩 되며 ‘훤한 세상’이 열리는 환영을 보게 된다. 그래, 오늘 우리의 발걸음은 앞서서 나간 자를 위해 산 자가 따라야 할 발걸음이다.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담양으로 향했다.

 

(p.s_일행 대부분이 담양 <죽녹원>을 둘러보는 사이 나는 <관방제림길>을 한 시간가량 걸었다. 200년 넘은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뙤약볕을 가려주는 그늘 길 끝 메타세콰이어 숲길까지 걸으면서 문득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보다 세상에 그늘을 드리워 주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오늘 함께 한 젊은 피 최지은 학생에게도 동일한 생각이 들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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