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건국전쟁'과의 진실공방

신완섭 기자 | 기사입력 2024/02/21 [08:24]

[영화 리뷰] '건국전쟁'과의 진실공방

신완섭 기자 | 입력 : 2024/02/21 [08:24]

  다큐영화 <건국전쟁>을 보았다. 또다른 다큐영화 <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이름을 알린 김덕영 감독 작품으로 올해 2월 1일 개봉 이래 20여 일 만에 관객 60만을 넘기며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어 제목이 ‘The Birth of Korea’인데, 굳이 우리말 제목에 ‘전쟁’이란 자극적인 낱말을 넣었는지 의심하며 극장 내로 들어섰다. 소문치곤 빈자리가 적지 않았으나 상영 전 관객석의 웅성거림으로 봐선 나이 든 사람들의 단체관람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 줄거리

  1시간 40분 상영의 전체 구성은 다소 희귀성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들과 몇몇 이승만 연구가나 추종자들의 증언에 의존한다. 1950년 한국동란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의 올바른 처신 및 1960년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시작되었던 3.15부정선거와 잇따른 4.19의거에 관한 대통령의 입장 정당성, 1950년 농지개혁 및 1953년 한미방위상호조약 체결, 의무교육제도 마련 등의 영상을 담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 북한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번영과 선진국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두 나라는 같은 언어, 역사, 인종을 공유하면서도 어떻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갈라졌을까? 이에 대한 이 영화의 대답은 지난 70년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초석을 마련했던 이승만 대통령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동의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승만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려왔다. 그중에는 서울신문 중앙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을 한 이영석이 2018년에 펴낸 <건국전쟁>이란 책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펼쳐보니 저자는 당시의 무법천지 건국 상황을 내전 상황으로 보았고, “이 전쟁에서 이겼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단언했다. 갑자기 찾아온 해방 이후 극도로 혼란스러웠을 당시를 감안한다면 1954년 맺은 한미방위상호조약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은 일단 동의한다. 그래서 콜, 이 책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든 말든 영화 제목 속 ‘전쟁’이란 표현에 대한 내 의구심도 일단 접고자 한다. 단지 감독이 내세운 반쪼가리 팩트들을 근거로 몇 가지를 반박하고자 한다. 

 

  진실 공방

 

  1. 이승만의 독재욕 vs 권력욕

  영화에서 이승만은 온 국민의 열망에 의해 1948년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합법적 절차를 거쳐 장기집권을 했으며, 1960년 3.15부정선거마저도 부통령 자리를 노린 이기붕의 무리수가 빚은 참사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추대한 이후 그는 워싱턴D.C에 대한공화국(The Republic of Korea) 활동본부를 설치, 각국에 자신을 ‘대통령(the Provisional President)’이라 밝히며 외교활동을 펼쳤으나 정작 중국 임시정부에는 발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아 결국 임정은 업무태만을 사유로 그를 탄핵시킨다. 이전 하와이 이주 초기에는 이주한인들로부터 모금한 독립지원금 대부분을 다른 용도로 유용하고 15% 정도만 독립자금으로 사용해 하와이 갱스터라 불릴 정도로 빈축을 사며 교민사회를 분열시켰다. 1942년 6,7월에는 미국의 소리(VOA) 초단파 방송망을 통해 고국동포들의 투쟁을 독려한다며 본인의 이름을 만방에 홍보했고, 해방되던 해 10월 16일 개인 자격으로 김구 등 임정 요인들보다 한 달 앞서 귀국했던 그는 직전 이틀간 일본 도쿄에 머물며 맥아더 장군과 두 차례에 걸쳐 비밀회동을 가졌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안내를 받으며 호화로운 환영식에 참석, 미군정의 지원 하에 내정된 대통령의 위세를 떨친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1960년 별도로 선출되는 정·부통령 자리를 자유당이 독차지하기 위해 3.15부정선거를 저지른 것인데, 영화에서는 이 일로 집안식구 모두가 자살해 버린 이기붕 부통령 후보의 단독범죄로 묘사한다. 이게 가당찮은 주장 아닌가. 아무리 대통령의 직접 관여 흔적이 없다한들 소가 웃을 일이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동의나 묵인 없이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취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선·3선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2. 한강다리 폭파와 부교

  김덕영 감독은 "다리 폭파 이전에 경찰과 군 병력이 부교를 설치해 사람들을 대피시켰다"고 말한다. 류석춘 교수가 제공했다는 영화 속 사진은 부서진 한강다리 옆에 설치된 부교로 피난민들이 건너는 장면을 담고 있다. 

  당시로 돌아가 보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3,4시경에 북한이 남침했다. 전군에 비상이 걸린 것은 급보가 들어오기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난 오전 7시였다. 이때 국방장관 신성모는 "신사는 주말에 근무하지 않습니다"라며 전화코드를 뽑아놓은 채 자고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오전 10시 30분이 넘어서야 경복궁 경회루에서 낚시하다가 보고를 받았다. 미군 역시 모든 지휘라인이 부재 상태였다. 이틀 뒤인 6월 27일 새벽 1시에 비상국회를 연 신익희 의장은 신성모 국방장관과 채병덕 총참모장에게 전황을 물어보았는데 신성모는 수도 이전을, 채병덕은 수도 사수를 주장해 격론이 벌어졌다. 이후 수도사수결의가 채택되었지만 국군통수권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대전으로 내려와 있던 상태였다. 채병덕 총장으로부터 다리 폭파를 지시받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공병학교장 엄홍섭 중령에게 폭파 준비를 지시, 오후 4시경 완료했으나 국군 북상과 미군 가세 등 헛소식이 전해지며 폭파는 잠시 지연된다. 28일 새벽 1시경 북한군 전차가 미아리고개에 출현, 채 총장은 새벽 2시 20분경 인도교를 건너온 뒤 최 대령에게 최종 폭파 명령을 내린다. 명령에 따라 2시 30분경 한강철교, 2시 40분경 한강대교(인도교), 이어서 광진교까지 당시 한강에 놓인 3개의 다리가 차례로 폭파되었다. 9월 21일에 열린 군법회의에서 너무 이른 폭파 명령으로 교량 위 민간인 500~800명 정도와 차량 50여 대가 강물 속으로 추락했고, 한강 이북에 4만의 국군병력과 군사 장비가 묶여 개전 초기부터 한국군이 밀리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실제 북한군 전차가 한강변에서 처음 목격된 시각은 폭파 7시간이 지난 오전 10~11시경이어서다. 여하튼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날 총살형을 언도받고 곧바로 사형집행되었다. 우리 군법회의에서 책임을 물어 공병감을 즉시 사형에 처한 것은 도망간 이승만을 위한 면죄부였나, 희생양이었나. 그런데 김 감독의 주장처럼 새벽 2시 반이 넘어 벌어진 오밤중의 폭파 시점에 한 사람도 민간인 피해가 없었다는 건 무슨 근거인가. 만약 김 감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백주대낮에 찍힌 한강다리 옆 부교를 건너는 피난 행렬 사진은 다리 폭파 직전의 하루 이틀에 불과했을 것이다. 북한군이 한강변까지 점령한 마당에 우리 군경의 지휘 하에 피난민들을 곱게 내려보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폭파 전날인 27일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저녁 7시 반경에 대전으로 되돌아온 이승만이 이날 밤 10~11시 사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끝까지 서울을 사수할 테니 피난 가지 말고 서울을 지키라”고 육성 담화까지 내보냈으니 서울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그렇게 믿고 남은 시민들에겐 9.28수복 이후 서슬퍼런 부역자 조사라는 앙갚음만 남았다. 

 

  3. 농지개혁 업적 찬양

  영화에서는 ‘농지개혁’을 통해 수백년간 내려온 만석꾼이 사라지고 대신 기업가 정신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입안된 3개년 경제계획을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완성시켰다는 주장이다. 과연 이승만 혼자의 치적일까.

  농지개혁은 1941년 충칭임시정부가 만장일치로 결의한 대한민국건국강령에 나올 정도로 김구, 안재홍, 지청천 등 해방 초기 거의 모든 우익 지도자들이 외쳤던 내용이다. 농지개혁의 모델은 앞선 미군정기에 상당 부분 마련되었고 조봉암 등 국회 소장파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농지개혁에서 이승만의 역할은 상대적이지 절대적이라 할 수 없다. 당시 이승만은 농지개혁은 받아들이면서도 제주4·3사건의 평화적 해결, 반민특위를 통한 친일파 척결 등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나. 더구나 그의 1958년 ‘경제 3개년 계획’은 실천 면에선 낙제점이라 박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연결시키는 건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4. 의무교육제와 이승만 

  영화는 이승만이 강조한 의무 교육 덕분으로 자유민주사상 의식이 전 국민에 빠르게 보급되어 급기야는 4.19혁명에 의해 이승만 자신이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사실일까.

  의무교육에 대한 요구는 미군정 당시 교육계에서 싹텄다.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인의 국민적 몽매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해 교육계 인사들은 애국계몽, 실력양성 등 교육운동에 열을 올렸고 해방 이후 미군정과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의무교육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 이승만 정권에서 이어간 점은 사실이겠으나 국내 근현대 교육 발전의 기틀을 이승만 개인이 마련해준 것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공치사다. 오히려 이승만이 표방했던 일민주의(一民主義)는 자신을 숭배하는 내용으로 교육 과정에 반영하고 강조했다. 4·19혁명 발발의 정확한 이유도 3.15부정선거와 김주열 군의 끔찍한 피살사건으로 촉발되었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누적된 저항의 표출이었지, 그가 의무교육으로 심어주었다는 민주 의식의 고양과 관련짓는 것은 억지춘향식 주장에 불과하다.

 

  5. 유일한 선각자 이승만?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서 이승만은 민족의 ‘유일한 선각자’로 부각된다. 3·1운동을 이끌었고 여성 교육을 통해 최초로 남녀평등을 이루었으며 미일전쟁을 예언, 외교독립이라는 책략을 독창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진실에 어긋난다.

  이승만이 배제학당 출신으로서 감리교단과 아펜젤러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여성교육과 남녀평등은 기독교 정신과 선교사들의 헌신을 통한 성과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1919년의 3·1운동은 거국적 민족운동이었지 국내에도 없었던 이승만의 공적은 손톱 때만큼도 없었다. 나가도 너무 나간 개인 찬양이다. 미일전쟁과 외교독립론 발상은 1920년대 임정 자료에 언급된 대로 안창호에 의해 더욱 구체화 되었으며 애국계몽운동, 무장투쟁, 외교독립론 등은 당대 대부분의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하고 함께 실천했던 내용들이다. 오히려 그는 미일 강국체제의 국제정세를 들먹이면서 평화적 외교 방법이 아닌 무장독립운동은 하등 독립에 보탬이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안중근 윤봉길 나석주 등 숱한 무장독립운동가는 단순 테러범인가. 무장방식을 내세웠던 임시정부는 청부살인 소굴인가. 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누가 감히 이승만을 유일한 선각자라 부를 것인가, 

 

  영화를 다 본 느낌은 한 마디로 먹먹하다는 거였다. 각종 미디어에서 본, 2,30대 젊은이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훔쳤다는 감동 기사와는 달리, 왠지 서둘러 영화를 종료한 것 같은 감독의 조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다큐 영상물은 관람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레이션이 깊은 감동을 주는 법인데, 그간에 알려졌던 이승만의 독재 이미지를 정 반대 시각에서만 다루다 보니 윷판에서 모를 기대했다가 빽도가 된 억측 판국이어서 머리만 혼란스러워졌다면 나만의 생각일까. 

  모든 인간은 불완전체라서 아무리 위대한 성인군자일지라도 공과 과가 엄연히 혼재한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등소평도 모택동 사후 그의 공과를 두고 ‘功七過三’(공은 70%, 과는 30%)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공적을 추켜세우며 영원히 그를 추앙해야 한다고 했던가. 역사는 현상학이 아니라 해석학이다. 평가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다면 이미 인식된 역사적 사실들과 대조해 공과를 따져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반대의 주장만 내세운다면 보는 이는 또 다른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전후 맥락을 고려한 세심하고도 객관적인 나레이션이 부족했던 게 나로선 가장 큰 흠결이었다. 막말 논객 진중권으로부터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천박한 상업성이 깔려 있다”고 의심받는 비평을 감수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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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burtra 2024/02/22 [12:40] 수정 | 삭제
  • The above article by 신완섭 기자 is fair and appropriate. I thank him/her for the precious time to help correcting the potential misunderstanding. Here is my critiques of 건국전쟁 movie. 건국전쟁, 영화감상 Feb 19, 2024 Before viewing, I knew this movie was made and conceived by right wing activists who feel President Syngman Rhee is unfairly portraited as a failed politician. The movie carefully collected documentary movie clips and edited to correct the perception of Rhee. Though I knew President Rhee’s successes and failures from the history textbook, I think the movie was made as good as it could be from the point of the right-wing factions. Among the successes of President Rhee, I agree with Mr. Han’s positive assessment of Rhee’s agriculture land reform. However, there are more of President Rhee’s failures that were not revealed. President Rhee brutally eliminated his rival Kim Goo who was the official leader of the Korean provisional cabinet. The assassination of Kim has never been satisfactorily accounted for. I believe President Rhee should have been ultimately responsible for the event. Syngman Rhee was unsuccessful team player of the Shanghai provisional Korean Government. Though he was superior in many aspects to those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s cabinet, he should have respected the authority more and fully cooperated. He should have been more patient with the official government authority of the Korea no matter how much he thought the cabinet was incapable and disagreeable. I think the movie did what a movie can do but I hope the viewers’ discretion that a movie has a limited scope and thus should not accept the claims in the movie indiscriminately. I think, therefore, the current historical judgement of President Syngman Rhee is fair and appropri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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