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가랑비가 날리는 가운데 오전 11시경 ‘카페 마실(산본로323번길 26-26 3층)’에 들어서니 정은석 대표가 책을 읽다가 뭔가를 적고 있었다. 황급히 자리를 정돈한 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놓는다. 산본 최고의 커피 맛집답게 깊은 향을 음미하며 말문을 열었다.
Q1 우선 카페를 차리기 전의 정 대표 모습이 궁금하군요 1977년 경남 거창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고교 졸업 뒤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와 서울에서 재수 생활을 했어요. 중학교 졸업 직전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돌아가시고 이듬해에는 큰형마저 교통사고로 죽자, 식구들이 모두 힘들어하던 때 저를 이끈 것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여행에 대한 갈망이었죠. 그래서 대학 진학을 관광경영학과로 한 뒤에도 노가다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악착같이 여행비를 모았습니다. 군 복역 후에도 휴학까지 해가며 해외여행에 탐닉, 24살 때 처음으로 유럽 캠핑카 투어를 한 달간 다녀왔습니다. 이때 파리 에펠탑 앞에서 꽹과리를 치며 우리나라를 알리는 홍보 일을 잠시 했는데 언어불통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어서 이후 언어연수차 7개월간 캐나다를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9년 만에 대학을 나온 뒤에도 6개월가량 여행사에 취업, 여행에 관한 정보 및 영업 요령 등을 습득했지요. 가까운 중국 일본을 자주 드나들며 모사화(模寫畵), 오토바이 자켓, 미니벨로, 신발 등의 수출입뿐만 아니라 직거래사이트인 이베이, 원데이몰 거래 등도 모색했으나 사업자금과 고환율 문제 등으로 별 재미를 보진 못했습니다. 32살 때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온 뒤 비로소 해외에서 국내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지요
Q2 그렇다면 카페 사업은 어떤 경위로 손대게 되었나요 네팔 트레킹을 다녀온 후 커피를 로스팅해 주는 사업을 해볼까 해서 중고 로스팅 기계를 찾던 중 군포를 처음 와보게 되었어요. 카페 개업을 준비하던 여성분이 기계를 내놓았던 건데 개인 사정상 가게를 못 열 입장이 되었다며 차라리 자기 가게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나고 제의하지 않겠어요. 카페 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차에 솔깃해져서 살던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형의 도움까지 받은 끝에 33살 때 인수하게 되었지요. 그곳이 바로 14년 차 운영 중인 지금의 ‘Cafe Masil’입니다.
Q3 ‘마실’이란 브랜드가 참 멋지다고 여겼는데 정 대표의 아이디어가 아니었군요 그랬지요(웃음). 우리말 마실이 ‘마을, 나들이’란 뜻이잖아요. 저도 ‘마실=여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새로운 브랜드로 바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부제로 ‘꿈꾸는 공간’이란 문구를 붙였을 정도로, 제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오롯이 녹여내서 모두가 행복해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좋은 커피콩과 적당한 로스팅을 기본으로 도서관 같은 학구적 분위기와 집 거실처럼 편안한 인테리어 덕분인지 2010년에 문을 연 뒤 8개월이 지날 즈음부터 단골손님들이 불어나면서 순조롭게 순항을 거듭, 초기사업자금으로 융자를 냈던 1억 원을 모두 갚게 된 2016년에는 2호점까지 차려 부푼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장기 사태가 벌어지면서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결국 올해 4월 산본역사 근처의 2호점은 정리하고, 본점만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Q4 자영업자들이 하나같이 힘들어해 안타깝습니다. 그런 와중에 보람된 일은 없었나요 카페를 시작한 지 2년 뒤에 결혼하여 아들 둘, 딸 하나를 얻은 게 최고의 보람 아닐까요(웃음). 그 밖에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수련관의 요청으로 직업체험 멘토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명 ‘학교 밖 청소년 멘토링’을 14년째 하고 있는데, 관심 있는 학생들이 카페로 찾아오면 제가 바리스타 교육을 직접 지도하는 방식이지요.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다녀갔던 17살 여학생이 지금은 30대 중반의 주부가 되어 단골손님으로 찾아주니 보람이 더욱 커지요. 얼마 전 청수년수련관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상장 제목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당신은 안 변해’상이었습니다.(웃음)
카페 일을 시작하며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자체가 가게가 문 닫는 것이라서 고객들을 생각하면 섣불리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있지요. 카페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은 캠핑, 트레킹 등 제가 쌓은 ‘여행의 경험을 테이크 아웃’하는 프랜차이즈를 시도해 보는 일입니다. 이미 해외여행 화보집을 발간한 적이 있으며 여기에다 생생한 경험담을 보탠다면 좋은 상품이 되지 않을까요.
기자 후기_Cafe Masil에는 군데군데 책장이 놓여있고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불행히도 정 대표에겐 인간 멘토 대신 책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짙은 커피 향을 맡으며 창가 테이블에 턱을 괴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은 바쁜 현대인에게도 잠시의 낭만과 위안을 선사할 것이다. 다만 그가 노트에 남긴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 글은 자영업자의 비애를 느끼게 만든다. 좋아서 하는 일이 돈 버는 일로 승화하여 많은 이들이 마실 나갈 곳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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