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도시' 일본 나가사키 주민도 '강제동원 3자변제 NO'<2023 동유라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평화여행> ①한일반핵평화연대와 아시아평화시민넷이 '2023 동유라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평화여행'이라는 제목으로 2월 28일부터 3월 7일까지 7박 8일간 일본에 방문했다. 니이가타에서 시작해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고쿠라, 세모노세키,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거치며 각지에서 평화교류와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방문 중 있었던 주요 사항을 일본 현지 주민, 재일교포 등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전한다.
"피해자 나라가 스스로 피해자에게 배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전일본자치노조 나가사키현 본부 회관에서 3월 6일 오후 열린 한일 시민 교류회에서 한 나가사키 시민이 한 말이다.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해법 최종안, 일명 '제3자 변제'가 발표된 날이었다. 교류회 중 '발표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라는 질문이 나오자 한국 방문단은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기사를 찾았다. 결과를 통역해 알려주자 일본인 참가자들은 "잘못됐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 절대 다수가 일제의 강제징용 자체를 모르는 현실 속에서 이날 참가자들은 어떻게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가사키시에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민단체와 자료관이 있는 덕택이었다. 히로시마시와 더불어 '원폭 도시'로 유명한 나가사키시에는 두 곳의 자료관이 있다. 한 곳은 국립 나가사키 평화기념관의 원폭자료관이고 다른 곳은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다. 이곳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나가사키 시의회 의원을 지낸 故 오카 마사하루(岡正治, 1918~1994) 목사의 유지를 잇고자 1995년 시민들의 손으로 건립된 곳이다.
국립 자료관이 있음에도 민간 자료관이 필요한 이유는 핵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강조하되 그 이유와 전후사정에 대해서는 뭉뚱그리는 일본의 태도에 있다.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날보다 앞서 3월 4일 방문했던 히로시마시에서 만난 이승훈 선생(前 히로시마 평화교육연구소 사무국장)은 히로시마 국립 평화자료관에 대해 "방문할 가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자료관에 들어가면 1930년대의 평화롭던 히로시마 사진이 크게 붙어 있다. 원폭 피해자 노인조차 그것을 보고 '그립다'고 말하게 하는 사진이 왜 평화자료관에 있어야 하는가" 라고 지적했다.
1945년 핵이 투하되기 직전 히로시마는 이미 일본의 주요 군사도시로서 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마치 '행복하고 윤택했던 일상이 핵으로 인해 지옥이 됐다'는 식으로 포장한다는 것. 이러한 기조가 히로시마의 평화운동가 사이에도 퍼져 "히로시마는 군사도시였기에 원폭 투하 목표가 됐다"는 사실을 말하면 '원폭을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비난 받는 실정이라고 선생은 설명했다.
민간 자료관이 있는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에 비하면 다소 사정이 나았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 중인 기무라 히데토(木村英人) 씨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한국 방문단을 직접 안내했다. 이날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본래 휴관일임에도 불구하고 사키야마 노보루(崎山昇) 이사장이 방문단을 위해 직접 문을 열여 주기도 했다. 원폭 피해자 2세인 사키야마 이사장은 핵무기, 원전 문제 등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날 교류회는 기무라 씨가 준비한 '동북아의 평화·화해를 위해 모이자! 부르자! 외치자!' 한글 현수막 구호 아래 12명 안팎의 일본 시민들이 참가했다. 일본 시민 가수의 환영곡을 시작으로 양측의 현황보고와 질의가 오갔으며 마지막에는 일본측 제안으로 다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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