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기 ④ 다음을 기약하는 것까지가 여행메이지 신궁 / 요코하마 / 칸다묘진 / 아사쿠사, 스카이트리 등3일째 되던 1월 7일 아침, 메이지 신궁에 갔다. 전날 하라주쿠에 갔을 때는 시간이 너무 늦어 들르지 못했다. 이곳은 이름대로 일본 개화기의 천황인 메이지가 죽은 뒤 모셔진 신사로, 새해 첫 참배인 하츠모데(初詣で)를 위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1월 1일부터 3일까지의 '산가니치(三が日)' 기간에는 무려 3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도쿄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찾는 셈이다.
다행히 이날은 아직 신년 첫주 주말임에도 참배객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신궁 안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신궁을 둘러싼 삼림은 대도시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규모를 자랑하는데, 사실은 인공림이다. 100여 년 전 신궁을 건립할 때, 일본 전역과 식민지에서 10만여 그루의 나무를 공수하고 11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 전에만 해도 이 지역은 온통 허허벌판에 커다란 전나무 하나만 우뚝 서 있어, '요요기(代々木. 대대로 이어져 온 나무를 의미)'라는 지명이 붙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숲은 울창해졌으나 정작 원래의 '요요기' 나무는 태평양전쟁 당시 전화에 휩쓸려 '아쉽게도 소실됐다'고 한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소실된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나무에겐 죄가 없지만, 아쉬울 것도 없지 싶다.
신바시에서 요코하마까지는 왕복 2시간 정도의 상당한 거리지만, 오래 머물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바다도 볼 겸 가보고 싶은 박물관이 이곳에 있어 '잠깐 들르는' 느낌으로 온 것인데, 오산이었다. 이 도시는 그저 이곳 저곳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을 만큼 풍성한 매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유혹을 애써 뿌리치며 '카나가와 근대문학관(神奈川近代文学館)'으로 향했다. 이 문학관이 요코하마에 지어진 이유는 나츠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많은 작가들이 요코하마가 속한 카나가와현과 연고가 있어서라고 한다. 문명 개화를 견인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피어난 일본 근대문학이, 도쿄와 세계를 잇는 항구이자 문명화된 도심과 동떨어진 휴양지였던 카나가와와 인연이 깊은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내부는 생각한 것보다 작았고,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였다. 그러나 전시품과 설명은 충실하게 짜여져 있었다. 기획 전시가 아닌 상설 전시에도 순환 구조가 있어, 방문할 때마다 전시 내용이 달라지게 되어 있었다. 문학관이 설립된 1980년대부터 만들어진 영상 자료를 전부 열람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4일째이자 마지막날인 1월 8일이 됐다. 이날은 시간이 촉박했다. 전날 과음한 데다 숙소가 일본답지 않게 너무 따뜻해서 그만 푹 잠들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날 갔던 곳들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살피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 많았다.
먼저 일본의 모든 책이 모여 있다는 '칸다 고서점가'로 향했다. 이곳은 책 뿐만 아니라 회화 등 고미술품도 많이 취급하기 때문에,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일요일이라서인지, 아니면 연초라서인지 대부분의 서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설령 열려 있었다 해도 서점은 하나 하나 직접 들어가 보지 않으면 의미가 적고, 내게는 그럴 시간도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나아갔다.
고서점가를 벗어나다 두 갈래 길과 마주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 보면 아키하바라 전자상가가, 왼쪽으로 꺾어 북상하면 악기 상가로 유명한 오차노미즈가 나온다. '이곳 일대에서 인문계와 이공계, 예체능이 한데 모인다'고 표현하면 비약일까.
오차노미즈를 지나면 칸다묘진(神田明神)이라는 신사가 있다. 그곳을 먼저 들른 다음 아키하바라로 가기로 했다. 가던 중에 뜻밖의 것을 마주했다. '부활 대성당' 이라는 이름부터 강렬한 교회 건물이었다. 처음엔 천주교 성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러시아 정교회 산하 일본 정교회의 본산이 이곳이라고 한다. 도쿄 한가운데에 솟은 정교회 성당의 위풍당당함은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일-러 관계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
뜻밖의 만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차노미즈(御茶ノ水. 찻물)'라는 지명이 아깝지 않은 탁한 강물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자, 거기에는 또 다른 '성당'이 있었다. 이번에도 천주교 성당은 아니었다.
'유시마 성당'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서양 최대 종교의 성당과 동양 최대 사상가의 성당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과거 일본 유학 교육의 본산이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근대 교육의 발상지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일본 국립 도쿄의과치과대학 또한 유시마 성당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공자를 모신 곳임에도 기모노를 입은 참배객이 박수를 치며 참배하거나, 소원이 적힌 에마(絵馬)가 잔뜩 걸려 있는 등의 모습은 신사와 똑같았다. 공맹(孔孟)도 일본 땅에 들어오면 별 수 없구나 싶었다.
이곳에 있는 공자 동상은 도쿄 공식 관광 사이트 등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자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2016년 공자의 고향인 중국 니산에 무려 72m 높이의 공자상이 세워졌으니 현재로선 틀린 정보로 생각된다.
슬슬 캐리어를 들고 다니기 힘들어졌다. 공항과 가까운 역의 코인 로커(물품보관함)에 짐을 맡겨 두고, 집에 갈 때 되찾기로 했다. 도쿄 스카이트리가 있는 오시아게(押上) 역으로 갔다. 나리타 공항과도 바로 이어지는 곳이고, 겨울밤 일루미네이션이 예쁘기로 소문난 곳이기에 마지막 들를 장소로 정했다.
오차노미즈로 돌아와 칸다묘진으로 향했다. 서기 730년부터 이어져 내려온다는 유서 깊은 신사다. 역사가 깊어서인지 근대에 와서 지어진 메이지 신궁과 차이가 있었다.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이 도시 건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인공림 안에 지어 주변과 구분된 메이지 신궁과 달리, 주민들에게 보다 가깝고 친근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올라가 보니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운 좋게도 원숭이가 다양한 묘기를 부리는 '사루마와시'라는 공연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한다고 하는데, 1월에는 참배객을 상대로 공연하기 위해 신사에 온 모양이다. 우연히 날짜와 시간이 잘 맞은 덕분에 귀한 경험을 했다.
신사를 가로질러 본당 쪽으로 가보니 정문을 지나 입구 바깥까지도 참배객이 가득했다. 칸다묘진은 메이지 신궁이나 아사쿠사 센소지에 비하면 사람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두 곳과 달리 24시간 개방되는지라 이런 모습은 뜻밖이었다. 이곳에서 모시는 3명의 신들은 각각 재물과 사업, 액막이를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어쩌면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싶어 칸다묘진으로 몰린 것은 아닐까.
구경을 마치고 아마자케(일본식 감주)를 마시며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처음에는 서울 용산처럼 전자상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아키하바라는, 지금은 일본 특유의 서브컬처·오타쿠 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아키하바라에서 아사쿠사의 센소지(浅草寺) 사찰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한 다음부터는 주변을 감상하고, 빠르게 걷고, 다시 감상하기의 반복이었다. 센소지와 주변 상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무언가를 하거나 먹기가 힘들었고, 스카이트리에 가까워질 즈음에는 공항행 열차를 탈 시간이 촉박해졌다. 주변 야경이 무척 아름다워서 그것만으로 만족스럽기도 했다. 따라서 여기부터의 여행기는 사진으로 갈음한다.
기차에 늦으면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발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반대였다. 로커에 넣어둔 캐리어를 찾을 때까지도 귀국을 미룰까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예정대로 귀국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다. 오히려 돌아갈 때 아쉬울 것이 없다면, 그 여행에서 그다지 좋은 경험을 못한 것이 아닐까.
마침 나리타 공항으로 출발하는 역의 이름은 '오시아게' 였다. 마무리를 뜻하는 '시아게(仕上げ)'와 발음이 같다. 여기서 여행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번 도쿄 여행의 전체 루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일차: 나리타 공항 입국 - 도쿄 신주쿠 2일차: 도쿄도청 전망대 - 이케부쿠로 - 메지로 - 하라주쿠 -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 - 신주쿠 3일차: 하라주쿠 메이지신궁 - 신바시 - 요코하마 - 긴자 바 하이 파이브 - 우에노 아메요코 상점가 4일차: 칸다 고서점가 - 오차노미즈 - 칸다묘진 - 아키하바라 - 아사쿠사 센소지 - 스미다 강 - 스카이트리 - 나리타 공항 출국
4일간 총 118,272보, 약 90.7km를 걸었다. 꽤나 꽉꽉 채워서 돌아다닌 일정이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만약 이 일정을 따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여행 날짜를 늘리거나 하루치 일정을 없애서 다른 날 일정을 그날로 분배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저작권자 ⓒ 군포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