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나는 코로나와 입시 등의 이유로 해외 여행은 둘째치고 국내 여행조차 못 가본지 1년 가까이 되던 상태였다. 오랜만의 첫 여행지는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변산반도였다. 평소에 변산을 여행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는데 그곳에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회사가 소유한 숙소가 있어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설렘보다 호기심이 더 많은 여행길이었다.
이 사진은 숙소에서 바다를 본 모습이다. 우측에 있는 것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8호인 수성당이다. 수성당은 순조 1년(1801)에 처음 세워진 신당이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가지 못했다.
3시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자마자 녹초가 됐다. 오래 운전하는 것이 생전 처음이기도 했고 숙소가 너무 편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어른들은 바로 나가고 싶어했다. 가끔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어른들은 산을 좋아할까?'이다. 산의 정상을 올라가면 좋은 풍경이 펼쳐지지만 올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렇기에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어쩌면 등산의 고통이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고통보다는 적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평소에는 그 고통을 속으로 눌러야만 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산에 가서 조금이라도 안정을 취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많이 느낀 점이다.
숙소를 나와 처음으로 갔던 곳은 부안의 명물인 채석강이었다. 채석강은 평소 물이 차있지만 물이 빠지면 엄청난 바닥이 드러나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물때가 맞지 않아서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채석강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격포 방파제로 갔다. 방파제로 가는 길에 배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부안군청 홈페이지를 찾아 보니 부안군은 자체 평가에서 해양수산과가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한다. 늘어선 배들을 보니 모두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기잡이배를 타보기는커녕 낚시를 해본 경험이 없기에 그분들의 노고가 체감이 되지 않는다. 군포가 내륙지역이어서 그런 것일까? 시민기자로서 장차 이런 분들을 취재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침식 작용으로 깎인 바위를 봤다. 침식작용은 바람이나 물이 그 운동에 따라 토지를 깎거나 화학적으로 용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진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이 바위에 가장 맞는 말인 것 같다. 바위에는 인간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깊이의 구멍이 나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던 침식 작용이 눈 앞에 직접 나타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격포 방파제 풍경은 내가 살면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의도치 않게 시간대도 마침 일몰 무렵이었다. 등대 바로 옆에서 붉은 해가 지고 있으니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등대를 올라가서 찍고 싶었지만 '감전주의'라는 무서운 문구와 함께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놔서 그럴 수 없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 라는 말이 있다. 하루를 열심히 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날의 해는 같은 해로 기억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일출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처 지리를 매우 잘 알고 있을 해양경찰 분들께 물어서 '격포항횟집'이라는 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반찬이 많이 나와서 반찬만 먹었는데도 어느 정도 배가 찰 정도였다. 처음에는 회를 오래 먹으면 질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둘째날 해가 뜨자마자 간 곳은 '슬지제빵소'라는 빵집이었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갖가지 새로운 빵들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느 빵집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달랐다. 빵집보다는 카페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슬지제빵소는 1999년 처음 '슬지네 안흥찐빵'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역사 깊은 빵집이라고 한다. 빵집 이름에 있는 슬지라는 분은 2016년에 전라북도 스타 소상공인 경연에서 스타 소상공인 8인에 선정된 분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방문했을 때는 직원 분들만 계셔서 만나볼 수 없었다.
우리는 인절미 빵과 크림 찐빵을 주문했다. 인절미 빵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인절미 본연의에 맛을 유지하면서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빵을 먹고 나서 곰소염전을 구경하러 갔다. 염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눈에 담았다. 발로 수레를 돌려서 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곳은 호스로 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제조하는 곳에는 바닷물이 담겨있지 않았다. 바닷물을 그대로 소금으로 만드는 과정이 더럽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지만, 소금을 만든 후 세척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다음에는 부안청자박물관이라는 곳을 갔다. 흔히들 청자 하면 전라남도 강진을 떠올리지만 부안도 청자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부안의 보안면이라는 곳에 11세기 때 만들어진 가마터가 발견됐다. 그래서 부안을 빼놓고는 우리나라 청자 역사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는 가족끼리 관람하려고 했으나 일행의 의견에 따라 해설사를 초빙하게 되었다. 해설사분이 설명하기로는 청자보다 백자가 굽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백자가 먼저 사용되었다고 한다. 청자는 1,300도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고려 시대가 되어서야 출현했다고 한다.
이 병은 술이나 음료를 담던 병이다. 부안에서 만든 청자는 물가 풍경이 그려진 것이 특징이라 이 병 또한 부안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사진 속 모형처럼 도자기 실패작을 깨트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도자기 중 낮은 급으로 분류되는 것은 깨트린 것이 아니라 주로 상류층이 아닌 서민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면은 장인 정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고 한다.
박물관을 다 둘러본 후 '자매식당'이란 곳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생선구이는 다른 식당에도 흔하게 있는 메뉴여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만큼 맛이 좋았다. 특히 고등어구이는 비린 맛이 강해서 평소에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는 남김없이 다 먹고 나왔다.
다음날인 3일째 오후 3시, 다소 늦게 시작한 일정은 직소폭포 관람이었다. 폭포로 가는 길에는 선인봉이 있었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크게 내륙 쪽의 내변산과 바다 쪽의 외변산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 선인봉은 내변산에 위치하며 높이는 264m라고 한다.
3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 폭포가 유명한지 알 것 같은 광경이었다. 폭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날이 춥고 해가 내려가고 있어서 아쉽게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채석강을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굴을 채집해 먹고 있었다. 생굴을 먹어본 적이 없어 궁금해서 나도 맛을 봤는데, 바닷물 탓인지 짠맛이 너무 강했다.
채석강 절벽에는 과학시간에 한 번쯤은 봤을법한 단층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채석강은 제일 아래쪽이 수성암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는 역암과 사암, 사암과 이암의 교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됐다. 부안, 변산반도라는 곳을 처음 여행했는데 정말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매력을 느끼고 궁금증을 갖게 하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저작권자 ⓒ 군포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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