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기 ② 8백만 신의 나라, 4천만 인구의 도시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본 낮의 도쿄 풍경/신주쿠 연어절임구이, 돼지고기 생강구이, 이케부쿠로 커피숍 등

전주호 기자 | 기사입력 2023/01/19 [16:42]

도쿄여행기 ② 8백만 신의 나라, 4천만 인구의 도시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본 낮의 도쿄 풍경/신주쿠 연어절임구이, 돼지고기 생강구이, 이케부쿠로 커피숍 등

전주호 기자 | 입력 : 2023/01/19 [16:42]

2일차인 1월 6일, 아침 6시도 되지 않아 눈을 떴다. 아쉽게도 해 뜨기 전에 숙소를 나서는 것은 실패했다. 1월 무렵 도쿄의 일출은 6시 50분경으로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가량 빠르다. 

 

▲ 신주쿠니초메 쇼주인(正受院) 사찰 옆에 조성된 공동묘지.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계획한 첫 일정은 도쿄 도 도청사(도쿄도청)에 있는 전망대였는데, 숙소와 가깝고 개장 시간이 9시 30분이라 꽤나 여유가 있었다. 숙소 주변을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길 건너 빌딩 사이로 웬 푸른 기와지붕이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 가 보았더니, 작은 사찰이 있고 그 옆에는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었다. 도시 구석구석마다 사원이 있는 일본의 풍경 자체엔 익숙했지만, 번화가 바로 앞에 공동묘지가 있는 모습은 또 새로웠다. 삶의 공간과 바로 맞닿는 곳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와 다른 이들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 쇼주인의 다츠에바 상(正受院の奪衣婆像) (사진=신주쿠구립 신주쿠역사박물관)


묘지 입구 우측에는 유리 창문이 달린 작은 건물이 있었다. 당시엔 창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아 바깥의 설명만 읽고 넘겼는데 나중에 찾아 보니 신주쿠 유형문화재인 '쇼주인(正受院)의 다츠에바(奪衣婆, 탈의파)' 목조상이 그 안에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도천의 탈의파는 죽은 이의 옷을 벗겨 주는 할머니인데, 이 목조상 또한 오른손에 옷가지를 들고 정좌해 있다. 에도 시대에는 기침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공동묘지 바로 뒷편에는 술집 거리가 있었다. 걸어가며 간판을 살펴 보니 게이 바와 보이즈 바(남성 종업원과 대화하는 바)가 태반이다. 거리에도 젊은 남자들이 여럿 보인다. 퇴근하는 종업원들이려니 싶다. SNS에서 친구에게 이 광경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묘지의 음기를 남자의 양기로 누르는 거 아냐?" 피식 웃고는 도쿄도청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 신주쿠 역 동편 숮불구이 건생선 정식 신파치식당(しんぱち食堂)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숙소가 있는 신주쿠산초메에서 도쿄 도청으로 가려면 고가도로를 따라 신주쿠역을 넘어가야 한다. 가던 길에 배가 고파 이른 시간에도 여는 메밀국수집이 있는지 찾다가 대신 뜻밖의 정식집을 발견했다. 연중무휴에 아침 7시부터 영업한다는 것을 보아 이 주변에 많은 직장인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가게이리라 짐작한다.

 

들어가자마자 키오스크에서 막혔다. 일본에서 정식이나 라멘, 덮밥 등 일품을 다루는 식당은 보통 입구의 키오스크에서 식권을 구매하고 그것을 직원에게 내는 방식인데, 이곳은 키오스크에 메뉴가 없고 QR코드를 찍는 카메라만 달려 있었다.

 

의아해하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던 주문용 태블릿과 함께, 좌석번호가 적힌 QR코드 쪽지가 비치돼 있었다. 먼저 자리에 앉아 주문해 식사부터 하고, 계산은 나갈 때 키오스크에 QR코드를 인증해 이뤄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2022년에야 관공서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퇴출하기 시작한 '낡은 나라' 일본이라지만, 수요가 있는 분야에선 충분히 발전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신파치식당의 연어 사이쿄즈케야키 정식.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주문한 메뉴는 연어 사이쿄즈케야키(サーモン西京漬け焼き) 정식이다. '사이쿄즈케(西京漬け)'란 서경, 즉 교토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선을 쌀된장(시로미소)과 미림 등에 절여 맛과 보관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먹어 보니 생선절임을 구운 것임에도 짜거나 풍미가 강하지 않고 감칠맛만 은근히 배어든 느낌이었다. 평소 별로 짜게 먹지 않는 편임에도 간장을 따로 뿌려 먹었을 정도였다. 함께 나온 유부 된장국도 맛이 적당해 편안했다. 그래도 한국인에겐 너무 허전한 반찬 구성인지라, 사진엔 없지만 나중에 네기토로(다진 참치회)와 무우엉절임도 추가로 주문했다. 두 반찬 모두 따로 돈을 내 시킨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좋았다.

 

▲ 도쿄도청으로 향하는 길.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식사를 마치고 번화가를 지나쳐 도쿄도청으로 향했다. 도쿄도청은 관공서로서는 이례적으로 243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마천루를 가져, 1991년 완공 당시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도쿄를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산다'던 일본 버블 시대 말기에 지어진 탓이라고 한다. 살인적인 땅값을 내고 부지를 넓힐 바에야 그 돈으로 건물을 높게 쌓아올려 사무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 도쿄도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청 건물 내 사무실 층으로 향하고 있다. 2023년 1월 6일 촬영.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전망대가 있다 해도 엄연히 관공서다 보니,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음에도 직원들이 분주하게 카드키를 찍고 사무실 층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물 내에는 우체국 등의 공공기관도 있었다. 

 

도쿄도청 전망대는 무료 개방이다. 북측·남측의 두 타워가 쌍둥이처럼 서 있는데, 2023년 1월 현재 북측 타워는 백신접종센터로 쓰이고 있어 출입할 수 없다. 도청 홈페이지 스케줄표에 따르면 최소한 3월까지는 폐쇄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매주 첫째, 셋째 평일 화요일에는 남측 타워도 정기 휴무로 문을 닫으니 여행 중 방문할 사람들은 홈페이지나 공식 트위터 등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 도쿄도청 전망실 내부 모습. 2023년 1월 6일 촬영.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내부는 사방의 벽이 트인 구조가 아니라서 전망대 다운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대신 보통의 전망대와 달리 공간의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장점은 있었다. 누구든 자유로이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도 놓여 있었다. 북측 타워에 가로막힌 쪽을 제외하면 도쿄 전체를 둘러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쿄도의 인구는 약 1,400만 명, 주변 현을 포함한 수도권 인구는 약 4,400만 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버금가는 숫자가 이 전경에 기대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면서, '우리도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느끼는 순간이었다.

 

▲ 도쿄도청 전망실에서 바라본 도쿄 전경. 먼 곳에 후지산이 보인다. 2023년 1월 6일 촬영.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그런데 찬찬히 둘러보던 시선에 후지산이 들어오자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으로는 조금도 전해지지 않지만, 고작 200여 미터 높이에서 거만하게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나라의 무엇보다도 훨씬 거대한 존재가 저만치서 모두를 굽어보고 있었다. 대체로 분지에 자리잡아 산과 어우러진 한국 도시들과 달리, 끝없는 평지 끝에 한라산의 두 배 가까이 높은 산이 떡하니 솟아 있는 꼴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아이가 실종되면 우리나라에선 "범이 물어갔다"고 하지만, 일본에선 "신이 숨겼다(神隠し)"고 한다던가. 8백만 신을 모시는 일본인의 문화와 정신을 지배하는 무언가의 편린을 잠시 맛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일정식 레스토랑 뽀빠이(POPEYE). 2023년 1월 6일 촬영.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전망대를 내려오고 나서는 인근의 신주쿠 중앙공원을 한 바퀴 돌고 길을 나섰다. 이 다음 목적지에 가려면 전철을 타러 역 방향으로 가야 했는데, 왔던 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조금 남쪽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왠지 느낌이 좋은 식당 간판을 보게 됐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일렀지만 지나쳐 갔다간 후회할 것 같아 곧바로 들어갔다.

 

▲ 돼지고기 생강 구이(쇼가야키)와 게살 고로케 세트.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메뉴를 보니 메인 요리에 튀김류 하나를 끼워 주는 세트가 있었다. 돼지고기 생강 구이와 게살 고로케를 시켰다. 고기는 크기도 큼직하고 생강 맛이 부담스럽지 않게 스며 있었다. 게살 고로케는 다소 느끼할 정도로 크리미해서 가게에 비치된 레몬즙과 소스를 끼얹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 타카세(タカセ) 이케부쿠로 본점 2층 커피숍(喫茶室)에서 바라본 이케부쿠로의 상징 세이부 백화점.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도쿄 북서쪽의 번화가인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역 밖으로 나오니 'BIG ISSUE' 잡지 판매원이 있었는데, 잡지 표지에 배우 이정재의 얼굴이 있어 흠칫 놀랐다.

 

이케부쿠로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이전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 호기심으로 들른 것인데, 각종 체험 공간이나 쇼핑 시설 등 즐길 곳이 많은 도시였지만 혼자서 할 만한 건 별로 없었다. 역 앞에서 옛날식 커피숍을 발견해, 세이부 백화점의 전경을 창밖으로 감상하며 차를 마셨다. 다음엔 친구나 애인과 함께 와야겠다고 속으로 기약하곤 떠났다.

 

▲ 타카세 이케부쿠로 커피숍의 디럭스 푸딩과 사이펀 홍차.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첫날 결심했던 대로 정말 '하루를 이틀처럼' 길게 보내 버린 탓에, 이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여행기로 넘긴다. 마침 이날 오후에는 7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주류 판매점에 들렀고, 이어서 3일차인 7일에는 긴자와 우에노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두 동네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음 편은 술 특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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