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런일도 저런일도 있어요" 대감마을 박 할머니 이야기

군포 대야미 주택개발로 마을 떠나고 변한 박 할머니의 삶

김건아 인턴시민기자 | 기사입력 2023/01/04 [13:27]

"살다보면 이런일도 저런일도 있어요" 대감마을 박 할머니 이야기

군포 대야미 주택개발로 마을 떠나고 변한 박 할머니의 삶

김건아 인턴시민기자 | 입력 : 2023/01/04 [13:27]

박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2년 여름이었다. 어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독거노인과 인터뷰가 필요해 주택가를 돌아다니다가 길가에 나와 있는 박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그때 질문에 대한 답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사연까지 듣게 되었다. 2022년 겨울, 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12월 19일 진이헌 인턴시민기자와 함께 할머니 댁에 방문했다. 그 후 23일에 한 번 더 방문하여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대감마을 한 철거 중인 집의 차고로 보이는 곳에 건설폐기물이 쌓여 있다. 흰 벽에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 두 글자가 쓰여 있다. 2023년 1월 3일 촬영. (사진=진이헌)     ©군포시민신문

 


 

 

힘들었던 시절

 

박 할머니는 인천에서 태어나 19살 때 군포 대야미 대감마을 청년에게 시집왔다. 처음엔 땅도 없고 집도 없었기에 오두막에서 살았다.

 

자식은 7남매를 뒀다. 배불리 먹기엔 가족이 너무 많았다. 사실 대감마을의 거의 모든 가정이 그랬다. 아이를 많이 낳았고, 그만큼 배고팠다. 배고파도 박 할머니를 비롯한 대감마을 사람들은 아이들 교육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대감마을 주변에는 중, 고등학교가 없어서 아이들을 수원까지 보냈다.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정류장이 10리 밖에 있었다. 아이들은 그 거리를 걸어 다녔다. 걷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길 주변 농장에서 서리를 많이 했다. 농장주들이 “대감마을 애들이 다 따먹어서 헛농사한다”며 이를 갈았다. 

 

나아진 살림

 

힘든 시절을 열심히 일하며 보냈다. 남들이 좋은 구경 갈 때도 묵묵히 일만 했다. 그 결과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었다. 길었던 오막살이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 집에 많은 애착을 가졌다. 어느새 땅도 갖게 되었다. 논밭 합쳐 1,000평이 넘는 땅이 할머니 소유였다.

 

이렇게 살림이 나아진 덕분에 할머니는 마을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원래 대감마을 사람들은 집마다 있는 우물에서 생활용수를 공급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고지대에 사는 사람이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그 똥오줌이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우물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라 항의할 수가 없었다. 소를 키우는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부족할 때마다 돈과 쌀을 빌려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 할머니가 했던 선택은 전기로 깨끗한 물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확보한 물을 혼자 쓰지 않고 우물에 문제가 생긴 이웃들과 공유했다. 전기세는 모두 자신이 감당하면서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 집 마당으로 들어와 물을 받아 가는 일이 할머니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집에 홀로 남다

 

한편, 7남매는 성장하면서 한 명씩 마을을 떠나갔다. 대학에 가기도, 취업하기도, 시집을 가기도 했다. 박 할머니의 남편은 7남매가 집을 다 나갔을 즈음 세상을 떠났다. 

 

집에 혼자 남은 이때부터 할머니는 교회에 나갔다. 할머니가 간 곳은 대야미 최초의 교회로, 생긴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목사는 타지인이었는데, 주변 지리를 몰라서 전도를 못 하고 있었다. 이에 박 할머니는 목사의 오토바이 뒤에 앉아 길을 알려주며 같이 전도를 하고 다녔다. 평생 일만 하느라 익히지 못한 글을 성경을 읽으면서 배우기도 했다. 이 시기 할머니는 사는 게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대야동의 인구가 늘었을 때는 집으로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다. 지붕 아래 있는 제비집을 보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이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삶의 쏠쏠한 재미였다. 

 

마을을 떠나다

 

한편으론 대감마을 생활이 점점 힘들어졌다. 여전히 어느 정도의 농사는 지어야 생계유지가 되건만, 몸은 늙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박 할머니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대감마을 사람들 또한 그러했다.

 

절묘하게도 그런 생각을 조금씩 하던 시기에 대감마을 개발 소식이 들렸다. 박 할머니에 따르면, 대감마을 사람들은 평생 일만 해서 그런지 ‘어수룩’ 했다. 편한 생활에 대한 욕구가 순식간에 불타오른 영향도 있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 제시된 보상금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박 할머니가 보기엔 더 받을 수 있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뭉쳐서 항의하여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은 떠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떠났을 뿐이다.

 

그 후의 생활

 

땅을 꽤 가지고 있었기에 보상금의 액수가 적지는 않았다. 그 돈은 대부분 첫째 아들이 가져갔다. 지금 살고 있는 대야미 아파트단지 인근 한 칸짜리 집은 둘째 아들이 마련해줬다. 생활은 그럭저럭한다. 평일에 하루 세 시간씩 사람이 와서 집안일을 해주고, 근처에 사는 딸도 자주 와서 반찬 등을 마련해준다.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마을을 떠날 즈음부터 시작된 무릎 통증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다. 집 앞 길가까지만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가끔 교회 사람들이 찾아오니 불행 중 다행이다.

 

새로 사귄 친구가 박 할머니네 집으로 찾아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텃밭에 가서 자기 텃밭인 양 채소를 따오는가 하면, 자식한테 전화로 욕설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그 친구를 보기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이사 온 후 가장 안 좋은 일은, 품앗이와 잔치를 하면서 정들었던 마을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감마을에서 나온 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설령 어디 사는지 알아도 거동이 불편해 만남은 불가능하다. 

 

삶의 일부일 뿐

  

박 할머니는 자주 집 바로 앞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무슨 사물처럼 대한다는 느낌이다. 대감마을 사람들은 어른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항상 신경썼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휙휙 지나가 버린다. 손주들도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여러모로 울적한 생활이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는 말만 할 뿐이다.

 

▲ 대감마을 박 할머니. 2022년 12월 23일 촬영. (사진=김건아)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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