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12주기 추모행사 리뷰3] 12/5 광주 5.18묘소 참배 및 군산 해양대 시절 발자취 기행

신완섭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 기사입력 2022/12/14 [09:16]

[리영희 12주기 추모행사 리뷰3] 12/5 광주 5.18묘소 참배 및 군산 해양대 시절 발자취 기행

신완섭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 입력 : 2022/12/14 [09:16]

  본 기행은 2022년 ‘리영희 12주기 추모행사(12/2~12/5)’의 피날레이자 가장 의미 있는 행사이다. 왜냐하면 이날이 선생의 기일이어서이다. 아침 7시 군포시청에서 참가자 30여 명을 태우고 곧장 광주 5.18묘역 7구역에 묻혀계신 선생의 묘소로 달려갔다, 달리는 버스에서 선생이 민주화묘역에 묻히게 된 까닭을 설명했다. 이야기는 1980년 5월로 돌아간다. “1977년 『전환 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 책 내용의 반공법 위반 혐의로 2년간 만기 복역을 끝낸 게 80년 정초, 한양대 교수로 복직하였으나 5월 17일 밤 11시 반경 당시 안기부 직원들에 끌려간 뒤로 남산의 지하 감방에서 꼬박 두 달간 취조 심문을 당한다. 선생을 김대중 내란음모 연루자, 광주폭동 배후조종자로 지목하여 허위진술을 받아내려 압박한 것이다. 아무런 혐의 입증을 못 하자 결국 선생을 풀어주지만, 한양대 교수직 및 국제 엠네스티 이사직 등 모든 공직을 박탈해 버린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5.18 민주묘역에 묻히게 된 것이다. 

 

▲ 5.18민주화묘역 리영희 선생 묘소 참배 (사진=신완섭)


  제1코스. 5.18민주화묘역 리영희 선생 묘소 참배

  묘역에 도착한 시간이 채 오전 11시가 안 되었으나 입구가 제법 붐빈다. 알고 보니 같은 날 돌아가신 송기숙 선생의 1주기 추모행사에 광주시장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 탓이다. 이들의 행사에 앞서 우리 일행이 먼저 ‘민주의 문’을 들어서서 ‘추모탑’ 앞에서 참배했다. 정금채 대표의 배향에 이어 일동 묵념으로 민주화 선열들에 대한 예를 갖추고는 곧바로 추모탑 뒤편 선생의 묘소로 직행했다. 먼저 준비해간 꽃바구니로 정 대표와 참배에 동석한 한복 차림의 어르신(서경원 전의원)이 함께 헌화식을 가졌다. 이어 내가 지은 추모시조를 낭독했다. 

  이만큼 하셨으니 편히 눈 감으소서, 

  성미는 불같고 문장은 칼 같으나 

  의중에 담긴 마음은 봄볕처럼 온화했네// 

  붓 들어 하신 말씀, 진실과 자유리니 

  으름장 놓지 않아도 그 뜻을 따르리다.

  로진油 300℃ 열에 송진도 녹이잖소// 

  진실은 진심으로 통하는 법이라오. 

  실개천 맑은 물에 손발을 더럽히랴, 

  을(乙)자형 물줄기 따라 청청히 흘러가서// 

  밝음이 저문 하구에 이성을 내려놓자 

  히놀놀 붉힌 표정, 달빛이 어루만지리니

  다 놓고 간다는 말은 제발 말고 가소서” 

  묘비 뒷면에 새겨진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히다’란 문구를 마음 깊이 되새기며 다 함께 묵념으로 선생을 기렸다. 가져간 현수막을 펼쳐 다같이 기념 촬영을 하는 것으로 간단한 참배 행사를 끝내고 유영봉안소로 이동하는 길에 한겨레신문을 함께 창간했던 언론인 송건호 묘소도 둘러보았다.

  유영봉안소 안은 온통 5.18민주인사들의 영정사진으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실제 주인공인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정 외에도 5.18 당시에 희생된 무명인과 어린 자식까지 포함된 일가족 희생자 등 피맺힌 사연의 영혼들이 안치되어 있다. 다같이 묵념하고 추모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추모관 조금 못 간 곳에 땅을 다스리는 12간지 문양을 새겼으나 정작 첫째인 자(子, 쥐)와 마지막 해(亥, 돼지)는 없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민주화 운동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뜻이란다. 과거 망월동 묘역은 현재로는 노동계 인사 묘지로 성역화하고, 이곳 국립묘역은 민주화운동 인사로 구분 안장하고 있다. 참고로 전국의 민주묘지는 서울 강북 수유동의 ‘4.19묘지’,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의 ‘3.15묘지’, 이곳 망월동의 ‘5.18묘지’ 세 곳이다.

  추모관에서 관련 영상을 보았다. 시민 피해는 탈취 무기를 자진 반납한 당시 5월 27일 새벽 4시 공수부대를 투입하며 커졌다. 끝까지 항거하겠다며 시청을 점거한 시민군에 총알 세례를 퍼부으며 무차별 공격을 가해서이다. 화면 속 한 시민군 참여자는 “우리는 평화집회를 했을 뿐, 점포나 은행 등을 탈취하지 않았다. 군인과 경찰은 우리를 폭도로 몰아 때리고 죽였다. 살기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모관 내부에는 각종 5.18 관련 자료들이 즐비했고 특별전으로 ‘홍성담 작가의 5월 판화전’도 열리고 있었다. 진실은 긴 역사의 흐름에도 묻히는 법이 없다. 우리는 리영희 선생의 진실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정오를 조금 넘겨 인근 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으며 광주 일정을 끝냈다.

 

▲ 군산 해양대 교사 자리 앞에서 (사진=군포시)

 

  제2코스. 군산 리영희 선생의 해양대 시절 및 근대역사 발자취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군산 시내로 들어선 시각이 오후 3시경, 이날 군산기행 해설을 맡아준 군산 YMCA 유희영 사무총장이 우릴 반긴다. 곧바로 1950년 전후로 자리했던 당시 해양대 캠퍼스 부지로 향했다. 선생은 원래 1946년 경성공고 졸업과 동시에 국립해양대학 1기생으로 입교했으나 인천 해사국 자리에 있던 해양대는 1학년을 채 마치지도 못한 채 전북 군산으로 이전했고 1947년 5월부터 1953년 10월까지 7년 5개월간의 군산시대를 거쳐 부산으로 최종 이전했다. 당시 신영동 장미동 일대에 걸쳐 교사(校舍)와 식당, 기숙사가 있었는데, 현재 군산초등학교 자리에서 1947년 5월 5일 개강식을 가졌다. 우리는 신영동 3-15번지 교사 자리를 찾았다. 인근 가구점 사장의 전언에 의하면, 이곳이 당시 교사였는데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며 셔터를 올리고 그 안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외벽과 지붕, 천장 등 1940년대 낡은 건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에 일행 모두는 탄성을 지르면서도 근대문화유적으로 보존하고 있지 않음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유 총장도 이 내용을 군산시청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일제강점기 내내 쌀을 수탈해간 인근 ‘부잔교(浮棧橋, 뜬다리)’와 당시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도 둘러보았다. 1899년 5월 군산항이 개항한 이래 1905~1938년간 네 차례의 축항 공사를 통해 지어진 부잔교는 조류간만의 차(최대 높이 8M)가 심한 서해의 특성상 만조때 쌀을 실을 수 있는 필수시설이었다. 이를 통해 일제는 1933년 한해에만 209만 섬을 이곳에서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또한 1910년 10월에 세워진 조선은행은 산미증산계획에 따라 일제가 모든 농지를 손아귀에 넣고 수확량의 최대 75%를 소작료로 수탈하는 빨대 역할을 했다. 당시 일제는 ㈜구마모토농장(熊本農場)을 통해 김제·정읍·옥구·익산·부안 5개 군 26개 면을 장악, 농장 1,200여만 평에 소작농가 3천여 가구를 형성하여 무려 농가의 87%를 소작농으로 부리며 50~75% 소작료라는 미명으로 쌀을 수탈했다. 우리 근대역사의 아픈 민낯을 대하며 깊은 한숨이 나왔다. 유 총장은 군산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유일한 도시라며 역사의 산실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공원도시’로 이름난 군산을 대표하는 친환경 호수인 ‘은파호수공원’을 둘러보았다. 호수 면적이 53만 평에 이르는 이 공원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등장하는 천연호수, ‘미제지(米堤池)’다. 유입되는 하천 없이 오로지 빗물로만 형성된 특징으로 고도의 관리가 요구되는데, 시민운동의 힘으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도로 건설 및 개발을 차단하고 인공시설을 없앤 후 유원지 대신 호수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한다. 유 총장은 “소나무 재선충병을 방제하려고 헬기로 농약을 뿌리는 짓은 어리석다. 소나무는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추울 때 대거 송진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다. 그런데 이상기후로 날씨가 따뜻해진 만큼 송진이 적어진 소나무는 병충해에 노출되고 만다. 해충을 잡으려는 농약 살포는 오히려 벌과 같은 이로운 곤충까지 없애는 어리석은 짓이므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목 종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답”임을 강조한다. 해박한 그의 환경, 역사 인식에 감탄하며 근대역사문화지구대 내에 있는 ‘콩돌식당’에서 두부전골로 저녁 식사를 하며 모든 기행을 끝냈다. 

 

  리영희 선생의 12주기 추모행사의 막을 내리며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의 일생이 걸어오는 것”이라고 노래한 정현종 시인의 시구처럼 한 사람의 업적이 한 사회, 나아가 국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추모 공연을 통해 여러 연주자와 가수, 시 낭송가를 만났고, 학술 세미나를 통해 이해영 교수와 한설 역사학자, 신동진 언론학자를 만났고, 선생의 묘소참배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과 만났고, 선생의 해양대 시절 발자취를 돌아보며 참가자들과 선생의 진실 정신을 교감하고 군산 알리미 유희영 총장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역사를 만났다. 이런 유익한 행사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군포시에 깊이 감사하고, 함께 준비해준 리영희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참여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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