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④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기사입력 2022/03/03 [08:46]

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④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입력 : 2022/03/03 [08:46]

편집자주) 군포시 대야동에 사는 18살, 14살 청소년 형제가 여행을 떠났다. 25일간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주에서 마치는 코스로 영호남 이곳 저곳을 떠돌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 비용은 ‘가양주작 양조장’ 알바로 번 돈, 가족 친지들의 용돈 그리고 ‘한무리나눔장학회’의 장학금을 모아 마련했다. 매주 한편 씩 형제가 보내온 여행기를 4주간 연재한다. 


 

순천에서 (2월 15일~2월 18일)

 

  순천에서 우리의 주 타깃은 '기적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여 만든 혁신적인 놀이터인데 그 모습이 어떤지, 노는 사람은 많은지 보기 위해 가보기로 했다. 1호 놀이터인 ‘엉뚱발뚱’에는 이상하게 애들이 단 한명도 없었다. 놀이터 자체는 좋은 것 같았다. 직접 미끄럼틀도 타보니 꽤 재밌었다. 방학이라 학교를 간건 아닐텐데 왜 아무도 없는걸까? 석연찮아 하고 있는데 힌트가 지나갔다. 학원을 다녀오는 듯한 아이 두세명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아이들에게 놀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기적의 놀이터’가 비록 대단하긴 하지만 뭔가 근본적인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 순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 (사진=용감한형제)


  2호 놀이터 ‘작전을 시작하지’에는 그래도 아이들이 좀 있었다. 이 놀이터엔 피라미드 모양의 커다란 ‘밧줄오르기 놀이기구’가 있었다. 5살만 어렸어도 바로 뛰어가 올랐을 테지만 나도 좀 늙었는지 그런 충동이 생기진 않았다. 그냥 주변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곧 어떤 경향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그냥 오르기만 한다. 몇 번 오르락 내리락만 하고 그러다 그냥 가버린다. 이걸 주의깊게 본 것은 놀이기구가 ‘술래잡기’ 같은 어떤 놀이의 도구일 때에만 지속적인 즐거움이 생겨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구는 술래를 피하고 또 누구는 추격하여 잡는 이러한 놀이의 맥락속에서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도구가 놀이기구이다. 그런 놀이가 없으니 꼭대기까지 한번 오르면 거기서 끝이다. 그 뒤론 할 게 별로 없다. 그냥 오르락 내리락만 하고 슝- 내려오기만 하고 휭휭 타기만 하다가 곧 싫증이 나서 집으로 돌아간다. 놀이가 펼쳐지지 않고 놀이기구만 덩그러니 있는 광경이다. 이건 같이 놀 친구들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문제다. 내가 경험한 바 술래잡기의 경우 최소 4명은 필요하고 모두의 체력이 마라톤 선수급이어야 그나마 재밌다. 근데 이마저도 놀이 친구들을 모으기 힘들고 모았다 해도 채 1시간을 못가 깨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끼리 서로 시간이 안 맞는 것이다. 다른 할일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론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조직하지 못 할 때에 놀이가 해체된다. 물론  인터넷 같은 다른 공간으로 놀이가 이동하는 변화를 감안하면 그들을 마냥 수동적이라고만 보는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

 

▲ 2호 놀이터 ‘작전을 시작하지’ (사진=용감한형제)


광주에서 (2월18일-20일)

 

  순천 다음으로 광주를 갔다. 첫날에 어떤 백반 집에 갔는데 거기 반찬 중에 생굴이 나왔다.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반찬은 남기지 말자’는 여행수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먹어봤다. 근데 나쁘지 않았다. 섞박지랑 같이 버무러져 있는데 조합이 잘 맞아서인지 괜찮았다. 내가 생굴을 먹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사실 굴 뿐만이 아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마늘도 이번 여행 중에 고기와 같이 먹는 그 맛을 알아버렸다. 입맛의 스펙트럼은 시간이 갈수록 넓어진다는 확신이 드는 요즘이다. 

 

▲ 5.18 국립묘지에 고 이영희 선생 묘소 참배 (사진=용감한형제)     ©군포시민신문

  광주에서의 둘째 날에 엄마아빠가 놀러왔다. 반가웠긴 했지만 눈물이 날 정돈 아니었다. 같이 밥도 먹고 동생 생일파티도 했다. 방을 4인실로 옮겨서 같이 잤는데 불을 끄고 누워서 아빠랑 조금 얘기한다는 게 새벽 2시까지 해버렸다. 그럼에도 일찍 일어나서 졸린 눈을 비비고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갔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해설가 분이 전체적인 설명을 해 주셨는데 듣는 내내 슬픔과 분노가 밀려왔다. 내가 5.18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하기 위해선 알아야 한다. 알아 가야겠다.

 엄마, 아빠의 방문은 우리에게 자극을 줬다. 솔직히 요 며칠 여행에 게을렀던 게 사실이다. 다른게 더 재밌고 감명을 줘서 그런건 아니다. 그런 점에선 여행을 충실히 하는 쪽이 훨 낫다. 다만 길을 나서는게 귀찮았을 뿐이다. 우리 형제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동과 추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숙소를 더욱, 계속 박차고 나가야겠지. 이제 3일 남았다. 여행의 끝이.

 

전주 여행기(2월 20일~2월 23일)

 

 전주까지는 엄마 아빠가 태워줘서 비교적 편하고 재밌게 왔다. 우린 일찍 헤어지기 아쉬워서 중간에 담양 ‘소쇄원’에 들렀다. 조선시대 몇몇 양반들의 별장으로 쓰인 곳이라고 했다. 정말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장소였다. 아담한 한옥 앞에는 계곡물이 흘렀고 그 주위에 빽빽이 들어찬 대나무 숲이 그늘을 만들어 냈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청량감이 대단했다. 계절이 겨울인데도 말이다. 인간의 건축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 속을 걷다보니 몇백년 전에 역시 이같이 걸었을 선비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바람이 불때마다 대나무숲이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고 계곡물이 졸졸졸 소리로 화음을 맞추는데 어찌 사색에 잠기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그 합주에 시 한줄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난 21세기 사람이라 그런지 자연의 하모니를 들으면서도 사진찍는거 말곤 아무것도 안했다. 전주에 도착하여 같이 콩나물국밥을 함께 먹은 것을 끝으로 엄마 아빠와는 헤어졌다. 

 

▲ 담양 소쇄원 제월당에 앉아서 (사진=용감한형제)

  

  전주는 역시 관광지였다. 한옥마을에 가보니 월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한복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여점 앞을 지나니 가게 주인들이 우리한테도 한복을 권했다. 당연히 그냥 지나갔다. 지금 상상해 보면, 형제 둘이 투닥투닥 거리면서 걷는데 복장은 한복인 모습이 꽤나 우스웠을 것 같다. 

  한옥마을이 의외로 별로여서 어디 다른 델 가볼까 하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가까운 산에 있는 울창한 숲을 뚫고 튀어나와 있는 ‘흰 석상’이 눈에 띄었다. 옆에 기와지붕도 있는걸 보니 절인듯 했다. 우린 무계획 여행자의 원칙대로 행동했다. '그냥 일단 가봐'. 산 밑까지 가서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니 표지판에 성당이 있다고 써져 있었다. 흰색 석상과 기와지붕의 정체가 순식간에 모호해졌지만, 사실 그게 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지 그냥 그걸 보고 싶었다. 우린 이런 분명한 목표를 갖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십자가가 꽂혀 있었다. 안내문에 천주교 박해 때 죽은 사람들이 이 산에 묻혀 있다고 했다. 아무리 박해하고 아무리 죽여도 천주교도들은 기어코 이 나무 울창한 안식처에서 죽은 동료들을 기리고 기도했다. 어떤 집단을 박해하고 탄압하여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애초에 가능하기는 한건가?

  열심히 오르니 곧 성당을 만나게 되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텅 빈 성당도 꽤나 신비로웠다. 성당의 색유리에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몽환적인것 같다. 석상은 없었는데 길이 저 위로 계속되는걸 보니 더 가야 있는 듯 했다. 얼마 안가서 암벽을 배경으로 십자가 하나가 등장했는데 길이 이걸로 끝인 것처럼 보였다. 길을 잘못 든 건지 더 가야 하는건지 혼란스러웠지만 바위와 바위 사이로 길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여서 더 가보기로 했다.

 

▲ 전주 선학상 정상에서 (사진=용감한형제)


  우린 가끔씩 기어 오르기도 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이 길은 암벽을 돌아가는 지름길이고 그 뒤편에 완전한 길이 있다는걸 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잘 다져진 길을 만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 걸었다. 드디어 어딘가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왔을 때, 난 흰 석상의 기운을 강하게 느꼈다. 냉큼 올라가 봤다. 근데, 석상이 없었다. 하지만 실망감은 집에서 나오려고 하자마자 바로 귀가했다. 그보다 훨씬 더 장엄한 것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주의 전경이었다. 그 계단은 산 정상 전망대로 올라오는 계단이었던 것이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기에 처음엔 좀 얼떨떨했지만 곧 기쁨이 밀려왔다. 그 감정이 나를 전망대 옆에 있는 바위 위에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올라가게 했다. 아슬아슬하게 쭈그려 앉아 둘러보니 나보다 높이 있는 물체가 주변에 단 하나도 없었다. 장관이었다. 마치 타잔이라도 된듯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리 오래 있진 못하고 곧 하산을 결정했다. 이러이러 하다가 흰 석상은 어느새 잊혀 버린 것인데 올라온 길과는 다른 길로 내려오다가 그것을 만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용감한 형제 여행 결산

- 여행일수 : 22일

- 방문한 도시 : 8개

- 총이동거리 : 857.4km

- 그 중 도보이동거리 : 85.4km

- 여행경비 : 136만원(1일 평균 61,000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포토] 밤길 어린이 지키는 '노란 요정'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