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②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기사입력 2022/02/15 [09:03]

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②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입력 : 2022/02/15 [09:03]

편집자주) 군포시 대야동에 사는 18살, 14살 청소년 형제가 여행을 떠났다. 25일간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주에서 마치는 코스로 영호남 이곳 저곳을 떠돌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 비용은 ‘가양주작 양조장’ 알바로 번 돈, 가족 친지들의 용돈 그리고 ‘한무리나눔장학회’의 장학금을 모아 마련했다. 매주 한편 씩 형제가 보내온 여행기를 4주간 연재한다. 


 

 

2월 5일 토요일 

 

  대구를, ‘빈둥빈둥’을 떠나는 날이다. 이불을 개고 잠자리를 위해 물건들을 치워놓았던 방을 원상복구 시켰다. ‘빈둥빈둥’을 나올 땐 아주 오래 살아 익숙한 곳에서 떠날 때나 느낄법한 감정이 밀려왔다.

  울적한 감정은 경주로 가는 순탄한 길 위에서 사라졌다. 시외버스는 순탄했지만 시내버스는 그러지 못했다. 숙소인 삼촌 집 근처에서 내리지 못하고 이상한 곳에 내렸다. 형제는 서로에게 탓을 하다가 마지막엔 정류장 이름을 다르게 알려준 네이버 지도를 비방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네이버가 시간을 뒤로 감기 해주진 않는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지도 보면서 걸어가자'였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순식간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대야미에서 걷기연습도 했고 길은 지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우린 자신감이 붙었다. 1시간 정도 걸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바람이 모질긴 했지만 걸어간 덕분에 경주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걷는 여행은 여행이라는 인간 행위의 원형이 아닐까?

 

▲ 경주로 걸어가는 길에서 만난 형상강 (사진=용감한 형제)


2월 6일 일요일

 

  빨래와 아침을 해결하고 남산을 향해 걸어갔다. 남산을 향해 걷다 보면 첨성대 같은 여러 유적을 만나게 된다. 제일 먼저 만난 것은 대릉원. 거대 무덤과의 조우는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우린 그냥 평범한 길가를 걷고 있었다. 상가건물이 죽 늘어서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길. 걷다보니 한 블록이 끝나는 곳부터 더 이상 상가 건물이 없는 지점이 나왔다. 우리는 평범한 대화를 하며 평범한 길을 정면을 응시하는 평범한 자세로 걸었다. 오른쪽에 ‘잔디 공터’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것을 본 것이다. 그 한순간 공포를 느꼈다. 전혀 예상을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봤기 때문이다. 거기에 뭐가 있을 거라는 예상을 전혀 못하고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대무덤을 보고 화들짝 놀랄 것이다. 곧 경외감이 솟구쳤다. 고분을 배경으로 그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김연우를 찍은 '작품' 사진도 하나 건졌다.

 

▲ 거대 무덤 앞에 선 동생 연우 (사진=용감한 형제)

 

 대릉원을 지나 첨성대를 보러 갔다.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관광지로서 경주의 가치를 체감하는 한편 거부반응도 일어났다. 여행을 할 때 사람이 많은 것이 싫다. 그래서 첨성대는 대충 보고 얼른 남산 쪽으로 걸었다. 사람이 점차 줄더니 아예 사라졌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 옆을 걸었다. 그 차들은 불국사를 향해 가는 것 같았다. 우린 진작에 불국사는 포기했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었다. 남산 등산로의 입구가

▲ 걷던 중 김건아, 김연우 형제 기념 사진 (사진=용감한형제)     ©군포시민신문

어딘지도 몰랐다.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하나뿐일 순 없지만 ‘모든 산에는 어떤 정문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막연히 걸었다. 곧 시골마을이 나왔다. 가로질러 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올 것 같았다. 길가의 작은 표지판에 ‘국보 불곡좌상’이 표시되어 있는데 거기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우린 ‘국보’를 목표로 계속 걸었다. 숲의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잠시 후 대나무 숲이 나왔다. 그 뒤에 불곡좌상이 있었다. 대나무 숲 중간에 확 뚫린 터가 있고 거기에 좌상이 있는 모습이었는데 신성함이 느껴졌다. 그 ‘신성함’을 증폭시켜 준 것은 좌상 앞에 음식을 갖다놓고 염불을 외는 40대 중반쯤의 아저씨였다. 옆에는 10살쯤의 소년이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 지체장애인 같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자체로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방해가 될까봐 조금만 보고 얼른 나왔다. 사진도 안 찍었다. 

  나는 이 좌상(정확히 ‘마애여래좌상’)에서 다른 차원의 힘을 느꼈다. 보여지기만 하는 ‘죽은 문화재’가 아니라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도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되는 ‘살아있는 문화재’를 보았다. 불곡좌상과 소통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둘러싼 대나무 숲의 그 평화롭고 고요하고 신성한 모습은 사진 없이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2월 8일 화요일

 

  어제 마산에 도착했지만 피곤해서 돌아다니진 못하고 다만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간식도 좀 사고 꼭 필요했지만 집에서 미처 챙겨오지 못한 손톱깎이도 하나 샀다. 써보니 집에 있는 것 보다 성능이 더 좋았다. 오늘은 샤워를 하고 양말과 속옷을 빤 후에 부림시장을 목표로 길을 나섰다. 중간쯤에서 ‘마산 어시장’으로 경로를 바꿨다. 사방이 생선의 은빛으로 반짝였다. 갖가지의 생선이 엄청 많다. 신기해하면서도 이게 과연 다 소비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생선을 사러 온것이 아니라 밥을 먹으러 온 것이었기에 그냥 보기만 하고 지나쳤다. 식당을 찾고 찾다가 결국 돼지국밥집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밥을 먹고 ‘창동 예술촌’으로 갔다. 골목이 예쁜 곳이었고 옛날의 느낌이 물씬 났다. 옛날엔 한국 탑급의 번화가였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이 발달한 곳이었는데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예술품 전시장이 백신패스가 적용되고 있어 입장하지 못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것이 이번 여행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 같았다. 

 

▲ 창동예술촌 골목 (사진=용감한형제)

 

  창동예술촌을 둘러보고 숙소 주변에 있는 부둣가를 걸었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밧줄로 매어져 있었다. 요즘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상승 때문에 멸치 등의 생선이 잘 잡히지 않아 많은 배들이 묶여만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바닷물이 참 뿌옇다. 바다와 부둣가와 항구가 울상을 짓고 있다.

 

2월 9일 수요일

 

  오늘은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마산의 명물 ‘아귀찜’은 따로 아귀찜 거리가 있을 정도다. 우린 이런 음식거리에 흔히 있는 '원조' 가게로 들어갔다. 사실 좋은 리뷰가 달린 집을 찾아간 것. 먹어보니 진짜 아구찜 원조인 것 같았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맛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식당은 오랜만이거나 처음이다. 먹기 시작할 땐 힘들었지만 계속 먹다보니 입에 익어서 밥 한 그릇을 ‘클리어’했다. 음식내공을 좀 더 쌓고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

  아구찜을 먹는 중에 한 ‘사건’이 있었다. 갑자기 가게 안에 양말 파는 아저씨가 들어와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며 돌아다니는 거다. 사람들이 거절하는데도 나가지 않고 계속 권하는데 나중에는 거의 강요수준이 되었다. 두고 볼 수만 없는 식당 아주머니가 그만하라고 하니 그 아저씨는 느릿느릿 자리를 떴다. 그 양말 파는 아저씨는 왜 그렇게 비굴하고 찌질하게 행동했을까. 존엄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의 천성이 그렇게 생겨먹은걸까? 그의 행동은 자신이 원해서 했던 걸까 아니면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을까? 여러 의문이 따라붙었다.

 

  아점을 해결한 후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놀이터로 가봤다. 이름은 슝슝통통 놀이터 1호 '좋아좋아 놀이터'. 시민들이 놀이터 만들기에 직접 참여했기에 '민주주의 놀이터'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와보니 예상보다는 활기차지 않았다.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도착한 시간대가 좀 애매하긴 했다. 그래도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애들이 놀 시간이 충분치 않거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대충 둘러보기만 하고 걸어서 돌아왔다. 

 

▲ 슝슝통통 놀이터 (사진=용감한형제)


  돌아오는 길에 부림시장의 '6.25 떡볶이'에서 ‘떡튀순’을 먹고 ‘고려당’에서 빵을 사 숙소로 가는데 도중에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을 만났다. 경찰들이 영원히 수장시키려 했지만 기어코 떠올랐단다. 아무리 저 밑으로 가라앉히려 해도 결국엔 떠오르는 ‘부력’을 가진 것들이 이 세상에 꼭 있다.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고 남은 길을 마저 걸었다.

 

▲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곳 (사진=용감한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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