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①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기사입력 2022/02/09 [12:55]

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①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입력 : 2022/02/09 [12:55]

편집자주) 군포시 대야동에 사는 18살, 14살 청소년 형제가 여행을 떠났다. 25일간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주에서 마치는 코스로 영호남 이곳 저곳을 떠돌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 비용은 ‘가양주작 양조장’ 알바로 번 돈, 가족 친지들의 용돈 그리고 ‘한무리나눔장학회’의 장학금을 모아 마련했다. 매주 한편 씩 형제가 보내온 여행기를 4주간 연재한다. 


 

 

2월 2일 수요일

  

대구 여행 첫날이다. 우리 형제의 여행은 부모님의 강제로부터 시작됐다. 너무 집에만 있으니, 마침 방학이겠다, 한달 정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명령한 것이다. 동생은 몰라도 난 순순히 따를 용의가 있었다. 예전부터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 여행의 시작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연료는 있지만 시동을 걸지 않아 가지 않던 차가 시동이 걸리니 삐걱거리며 굴러가게 된 것일 뿐. 좀 색다른 공간적 환경에 처해보고 싶다는 잠재된 욕구가 부모의 바램과 만나 여행이 되었다. 만약 강제로 가는 거라면 그건 유배지 여행은 아니지 않나.

 

▲  대구 숙소인 '빈둥빈둥'  (사진=용감한형제)


숙소인 ‘빈둥빈둥’에서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일어나서 바로 양말빨래를 하기 위해 수도꼭지에 대야를 갖다 대고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만 펑펑 나왔고 손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도 계속 빨았다. 머리도 감았다. 샤워기가 없어서 양말 빤 대야를 씻어 물을 받아쓰는 방법을 택했다. 머리는 살려줘야 될 것 같아서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찬물과 섞었다. 덜 차가운 물이 됐다. 연우랑 나는 컵으로 물을 떠 서로의 머리에 부어줬다. 형제애라기 보단 많지 않은 '덜 차가운' 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발현된 결과였다. 머리 어디 부분에 샴푸 거품이 남아있는지는 머리감는 그 자신보다 위에서 보는 타자가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대구 성당못 (사진=용감한형제)


 밥 먹고 ‘성당못’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돌벤치에 바둑판과 바둑돌이 한 세트씩 쭉 놓여 있는 특이한 풍경을 봤다. 꽤 많은 할아버지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 고수의 향기가 모든 플레이어들에게서 풍겨왔다. 구경꾼들이 둘러싸고 있는 판은 거기서 빅매치가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특정장소에 어떤 놀이나 게임을 두어 노인들을 오게 하는 것이 참 좋은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장소는 노인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준다. 많은 노인들이 인간관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런 장소는 분명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저녁은 큰고모 집에 초대를 받았다. 스파게티 만드는 것을 조금 거들었고 그 때문인지 스파게티가 아주 맛있었다. 거의 서양 사람들이 먹는 양만큼 먹은 것 같다. 오랜만에 교휘형이랑 교언이형도 만났다. 반가웠다. 교언이형이 시장에서 쓰는 상품권을 7만원치나 줘서 내일은 주변 시장에서 배터지게 먹으려 한다.

 

  여행 1일차 인데 벌써 향수병의 기미가 보인다. 주변 생활공간의 변화가 내 향수병(?)의 가장 큰 원인 같다. 집돌이의 어쩔 수 없는 심리적 현상이다. 곧 익숙해질 것이다. 

 

2월 3일 목요일

 

▲ 양말을 말리는 모습 (사진=용감한 형제)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양말을 빨았다. 벌써 양말빨래가 생활습관이 되었다. 아침밥을 사먹을 요량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관문시장으로 갔다. 시장이 참 컸다. 우린 일단 둘러봤다. 분식집, 김밥 우동집, 국밥집이 많았다. 일단 다 지나쳤다. 그리고 쪽길을 찾았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 있는 뭔가 그런 곳 구석탱이에 맛집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쪽길에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간판을 내건 냉면집이 있었다. ‘삘’ 받아서 바로 문 앞으로 달려가 봤더니 하필 목요일이 휴일인 가게였다. 내일 와야지 하고 발걸음을 돌려 어느 분식집으로 갔는데 밖에서 먹는 형태의 가게였다. 마지막 순간에 발을 돌렸다. 사람들 지나다니는 밖에서 뭘 먹기가 좀 그렇다는 형제의 합의 때문이다. 내가 봐도 소심하고 한심해 보인다. 그래서 결국 돼지국밥집으로 가 두 그릇을 시켜 먹었다. 험난한 아침식사였다. 

 

▲ 대구 '계산성당' (사진=용감한형제)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라타 근대문화거리로 향했다. 참 잘 가꿔놓은 장소였다. 이상화 시인과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의 고택을 둘러보고 계산성당으로 갔다. 100여 년 전에 지어진 성당이란다. 밖에서 보면 삐죽한 두개의 첨탑이 웅장함을 느끼게 하고 안에서 보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 신비감을 간직하기 위해 2~3명의 아주머니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뒤에서 ‘찰칵’ 소리를 내어 영적세계의 신성함을 건드리는 무례함을 저질렀다.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쪽팔렸다. 

 

성당을 나가려고 할 때 등이 굽은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시더니 의자에 앉아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다리를 아이처럼 앞뒤로 흔들거리며 손에 든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았다. 넓고 높고 신비함이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공간에 작고 구부정한 사람이 절묘하고도 초라하게 배치된 그 상반되는 장면은 나의 마음에 이상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 교휘형과 함께 (사진=용감한형제)


 숙소로 돌아와 교휘형과 같이 재밌는 보드게임을 하고 피자와 치킨도 먹었다. 아직은 친밀한 인간관계 속에 있는 여행이다. 식사후에 고모부의 인생스토리를 접했다. 그 서사를 들으며 얻은 확신이 하나 있다. 인간의 지식은 세 가지 부분으로 이뤄진다는 것. 책에서 읽은 것이 한 부분이고 직접 경험한 것이 다른 한 부분이며, 이야기로 들은 남의 경험이 마지막 하나이다. 책만으론 지식의 완전성을 이룩할 수 없다. 결국 나의 소심함, 남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걸림돌이다. 어찌할까? 그냥 내버려 둬야겠다. 여러 파편이 날아와 부딪히면 위성은 궤도를 바꾸겠지. 아니면 아닌 대로 사는 거고. 지금은 일단 내일을 기대하며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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