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리영희 읽기 '시장상 학생부문 수상작'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김건아 (군포 대야1로, 고교생) | 기사입력 2021/12/24 [08:58]

2021 리영희 읽기 '시장상 학생부문 수상작'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김건아 (군포 대야1로, 고교생) | 입력 : 2021/12/24 [08:58]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다. 리영희 독서록 쓰기 행사 마감일을 이틀 앞두고 감상문을 쓰기 시작해서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과 내 지식, 이해력의 부족으로 인한 느린 독서 속도 때문에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일단 크다.

 

 초반 부분과 목차를 봤을 때, 이 책의 대부분은 60, 70년대의 급격히 변화하는 국제 정세, 관계를 다루고 있다.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또 2020년대 청소년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 전체의 기저에 흐르는 리영희 선생의 생각은 어렴풋하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아빠의 부연 설명을 들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선생의 생각은 '우리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을 진실(사실)에 근거하자'는 것이다. 선생이 글을 쓰던 당시에는 반공과 미국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국가적, 개인적 행동과 생각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 선생은 이러한 상황에 반기를 들었다. 반공주의와 미국에 대한 충성, 믿음을 근거로 행동을 결정한다면 이역만리 타향에서 애꿎은 청년들이 죽어 나가고 또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보전하지 못하는 등 사회적 손실로 연결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 판단을 근거로 행동하는 사회는 자신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사회를 위해서는 국가 운영을 맡은 이들의 변화 또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반 대중이 이념이라는 백내장을 극복하고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리영희 선생이 일생 내내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도 언론에 관한 이야기부터 출발한다.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가지 소득이 있었으니, 미숙하나마 언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얻은 것이었다.

 

 한국 언론역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래도 파란만장했다는 대략적인 감은 갖고 있다. 그 시간의 결과로서 현재는 언론이 예전의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여 좀 더 자유롭고 성숙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다. 언론의 실질적 자유(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자유) 문제, 가짜, 왜곡뉴스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한국 언론의 크고 작은 문제 중 나의 관심을 끄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지금 같은 유형의 언론사들로 충분한가’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의 언론들은 대부분 전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문제, 정치인의 비리 문제로 대표되는 '큰 문제', '큰 논란거리'를 주로 다룬다. 물론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언론계에 존재하는 게 이런 유형의 언론사들 뿐이라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보편적이고 큰 문제 못지않게 우리가 사는 지역의 문제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지역에는 지역 사람들의 삶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그곳의 고유, 특수한 문제와 사건들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와 사건들은 전국에 수천, 수만 개의 조각들로 점점이 박혀있다. 

 그런데 이 무수한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 중•대형의 언론사들은 관심을 가질 동기가 별로 없고 애초에 그러한 언론사들은 이것을 다루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도 분업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편적이고 큰 문제들을 다루는 언론 부문과 멀리서 보면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지역의 문제를 다루는 지역 언론 부문이 제각각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 언론 시스템은 전자는 많고 후자는 적은 구조인 것 같다. 이로 인해 지역의 문제들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사실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거나 혹은 애초에 그러한 욕구가 생기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의 결과로서 사실의 인식에 기반한 합리적 행동 또한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 언론기관이 필요한데 이는 지역 시민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참여를 통한 ‘시민언론’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본다. 지역 언론은 그것이 돈이 안 된다는 점에서 사업체의 이익과 무관하며 공공부문의 이익과도 거리가 먼 반면, 시민들에게는 큰 이익이 되기에 지역 언론기관의 설립과 유지는 시민들의 참여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이 활성화된다면 그것이 없던 때에는 자신이 사는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긴 하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 지역문제의 존재와 진상을 인식함으로써 삶의 터전을 가꾸고 발전시키며 때로는 지켜나가는 적극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을 인식하고 그 사실에 입각하여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행동과 사고를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지역 언론이 활성화되고 이에 기반하여 시민들의 참여가 잘 이루어지는 지역사회야말로 리영희 선생이 꿈꾼 진실에 기반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중국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신 내용도 나의 관심을 끌었다. 《대륙 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 중국 본토 사회의 실제와 판단》 부문을 읽으면서 ‘진실의 복무자’ 리영희 선생의 국제정치에 관한 관심과 연구자로서 집요한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이 책 제목을 ‘전환시대의 논리’라고 지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당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냉전이 한창이었고 한반도는 20여 년 전 전쟁을 겪었고 남한 입장에서 북한과 다를 바 없는 ‘빨갱이’국가이면서 북진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를 빼앗아 간 중국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동맹 국가인 미국이 중국과 외교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이런 상황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미국이 하는 일이니 잘한다 라고 칭송하는 남한언론의 줏대 없는 태도를 보면서 리영희 선생은 어이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국익을 도모하는 모든 일이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그 첫 작업으로 우리나라와 지정학적으로 뗄 수 없지만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중국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반공주의 국가인 남한에서 그런 결단을 하신 것은 학자로서의 양심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진실탐사에 대한 용기가 아니면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잘 몰랐던 중국 사회주의혁명의 원인에 대해 과거 미국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방식도 놀라웠다. 이에 따르면 장개석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권력 집단의 무능력이 곪아 터져가고 있는 중국사회의 문제(봉건제의 농민 착취, 인플레 등등)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정부(장개석)는 인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항일전쟁 동안 중국 사회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했고 민족주의를 고양 시켰으며 또한 개혁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확보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국 학자들의 의견이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은 중국 역사에서 무수히 일어났던 농민봉기의 최종판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 농민들은 봉기로써 지배계급을 물리친 적은 많았다. 하지만 항상 얼마 못 가 다시 지배 계급에게 통치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공산주의 혁명을 농민봉기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했던 모택동은 이러한 역사를 유심히 보고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내 생각엔 이것이 중국 공산주의 혁명 과정의 '타협 없음'을 배가시키지 않았을까 한다.

 

  문화혁명의 의도는 한마디로 '자본주의적 인간에서 사회주의적 인간으로의 인간개조'이다. 여기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상대립을 볼 수 있다. 스탈린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극히 신뢰하며 유일한 목표로 상정한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그로 인한 생산력의 증대가 이뤄지기만 한다면 사회문화나 구성원들의 의식, 사상 등은 자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 변화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딸려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택동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인간 변화를 떼어서 생각하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택동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인간 변화가 딸려온다고 보지 않고 전자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인간성이 결국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해치고 무너뜨린다고 보았다. 그 인간성이란 바로 인간의 이기적 속성이다. 이것을 근본으로 하는 기존 사회문화와 인간의 행동 방식, 생각을 싸그리 없애고 사회적 인간성으로 대체해야만 한다는 사상에 기초한 사회운동이 문화혁명이었다. 이 글에서 문화혁명에 대한 논평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경제부국으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지금 어떤 국가이며 리영희 선생이 논평했던 당시의 중국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관해 관심을 이어가고 싶다. 

 

▲ 김건아 씨가 지난 12월 4일 한대희 군포시장에게서 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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