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리영희 읽기 '시의회 의장상' 수상작

-리영희 선생과 ‘대화’하다-

김준열(군포 속달로) | 기사입력 2021/12/17 [10:34]

2021 리영희 읽기 '시의회 의장상' 수상작

-리영희 선생과 ‘대화’하다-

김준열(군포 속달로) | 입력 : 2021/12/17 [10:34]

<레 미제라블>,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리영희 선생이 작고하시기 전에 프랑스 원문으로 <레 미제라블>을 읽는 모습을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불어 실력은 물론 프랑스혁명 정신을 벼르기 위해 80세의 노구에도 책을 집어 든 것이다. 책은 무려 1,800페이지에 달했다. 선생의 독서열과 탐구정신이 감탄을 자아낸다.

대야미는 이색적인 장소이자 매력적인 장소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포개져 있어서다. 살다 보니 군포에 리영희 선생이 사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은 군포시민신문 발기인으로 참여하셨다. 지역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포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리영희 선생이 되었다. 

2005년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를 단 <대화>라는 대담집이 출간되었다. 어느 공부 모임에서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책장에서 책을 집어 밑줄을 친 부분을 뒤적였다. 노구의 몸이지만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짚어내는 대목은 감탄을 자아냈다.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씨와 대화하면서 적절한 책의 구문을 인용하는가 하면 종교와 사상, 철학에 대한 견해를 가감 없이 쏟아낸다. 시대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매섭게 느껴졌다. 리영희 선생은 ‘미신처럼 남한사회에서 믿어오던 ‘허위’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정치적/사상적 우상의 가면을 벗기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덧붙였다. 

 

대화> 속 첫 간지에는 <우상과 이성>의 머리말을 인용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 우상과 이성(1977) 머리말에서 - 

 

짧은 독서감상문을 쓰는 이유를 굳이 찾자니 리영희 선생의 목적을 따라 배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리영희 선생에 대한 글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는 장일순 선생을 참스승으로 생각했다. ‘노자적이면서 불교적이고, 오히려 비기독교적’인 장일순 선생의 생활양식은 어떤 규율이나 규범에 전혀 매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영희 선생 자신도 어떤 이념이나 종파에도 매이지 않는 삶을 사셨던 궤에 비슷하지 않을까. ‘유일신’과 ‘절대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를 ‘부처의 제자’이자 ‘예수의 제자’이고 싶다고 말할 때 그가 추구했던 삶의 본질이 느껴졌다. 리영희 선생의 사격술은 최고의 경지였다고 한다. 모든 기술은 그 기술 속에 ‘종교적 승화의 원리’가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로 살아왔지만 그는 종교적 깨달음을 통해 참된 인간의 삶을 찾았던 구도자에 가까워 보였다. 

2021년 현재, 리영희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인류 문명의 근간을 되묻는 시절이다. 리영희 선생은 책의 말미에 남은 역할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 주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그는 공산주의를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여겼고 사회주의를 통해 치유되는 자본주의를 주장했는데, 코로나 사태를 보며 어떻게 현대 문명을 진단하실까. 지역에서 추구할 수 있는 ‘진실’은 무엇이며 어떤 ‘우상’에 도전할 때라야만 인간의 해방과 행복과 사회의 진보를 얻게 될까. 리영희 선생의 빈 자리가 허전하기만 하다. 

리영희 선생은 글 쓰는 정신을 중국의 문호 ‘노신’으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짧은 글로 세인의 의식의 눈을 뜨게 하는 노신의 에세이식 글’을 좋아하셨다. 리영희 선생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글쓰기에 있을 것이다. 글이 메시지를 포함한 하나의 미디어라면 ‘진실’을 추구하는 미디어의 확장은 지역의 변화와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숨겨진 ‘우상’을 찾아 해결하고 인간의 해방을 향한 정진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에서 리영희 선생이 환하게 웃고 계실 것만 같다. 

20세기 실존주의 지식인 장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던 리영희 선생의 정신이 번뜩이는 순간은 나와 무관할지도 모를 이웃과 지역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할 때이다. 코로나가 던지는 인류 문명의 묵직한 물음에 경쾌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리영희 선생과의 대화가 고픈 까닭이다. 

 

▲ 김준열씨가 지난 12월 4일 성복임 군포시의회 의장에게서 상을 받고 있다. (사진=고희정)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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