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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칼럼] 공정(公正)이란 무엇인가?
 
김동민(민주화운동기념공원 소장)   기사입력  2021/07/07 [11:12]

▲ 김동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소장

김 아무개에게 10만원을 주고 재량껏 박 아무개와 나눠가지라고 했다. 단 김 아무개가 준 돈을 박 아무개가 받지 않겠다고 하면 없던 일로 하고 돈은 바로 회수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1만원을 주어도 받을 것 같다. 많든 적든 공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 1만원 제안은 절반 이상이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 최후통첩게임이라는 실험을 진행하면서 두 사람의 뇌를 관찰했더니, 이를테면 1만원 제안을 거절했을 때 뇌의 ‘뇌섬’이라는 영역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뇌섬은 역겹거나 혐오스럽거나 공정하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활성화되는 곳이다. 인간은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저항하는 존재라는 얘기다. 아니꼽고 치사해서 안 받고 만다는 것이다.

 

인간이 공정을 추구하며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뇌를 갖게 된 것은 물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다. 이런 때는 대개 신경계의 작용으로 흥분을 하게 되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뇌섬도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 더. 원숭이 뇌의 측좌핵에 전극을 꽂고 모니터 화면의 여러 기호들을 누르게 한다. 이때 원숭이는 이것저것을 눌러보다가 특정 기호를 눌렀을 때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보상을 얻게 되면 그 순간에 측좌핵의 신경세포들이 발화한다. 기분이 좋다는 신호다. 이로써 기대감이 생긴다.

 

그러나 주스가 나오는 동안에는 발화가 증가하지 않는다. 기대감은 거기까지라는 얘기다. 효용 그 자체보다는 효용에 대한 기대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기대를 갖고 기다리는 시간이 진짜 즐거운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여행 자체보다도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기간이 더 즐거운 법이다. 기대의 다른 말은 꿈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즐겁게 일을 한다.

 

“즐거움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며, 뇌를 자극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목적 없는 지나친 신체 동작을 취하고, 다양한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대체로 쾌락을 얻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인간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공정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공정한 분배에 대한 기대는 뇌를 즐겁게 하고 표정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꿈이 있고 기대가 있으면 고된 노동도 극복하면서 즐겁게 일을 한다. 협력하여 노동을 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던 원시사회의 모습이다. 공정은 수백만 년에 걸친 원시공동체사회에서 습관이 되어 본능으로 굳어진 개념이다. 공동체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함께 협력하여 노동을 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정을 기대하며 힘든 노동을 견디는 유전자가 형성된 것이다. 그 공정에 대한 기대가 깨졌을 때 격하게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공정의 문제로 앓고 있다. 특히 소위 이대남에 해당하는 일군의 젊은이들은 무언가 불공정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고 있다. 이 사태에 직면해 정치권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초긴장 상태에 있다. 공정이 최대의 화두로 부상한 것이다. 이대남은 왜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 것인가?

 

사실 20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보면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기에는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할 것이다. 직장, 결혼, 집 등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담해야 할 부모세대에 대한 책임은 어깨를 짓누른다. 게다가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 등 자연조건도 절망적이다. 꿈을 꿀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 어른들이 책임감을 갖고 길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이대남 청년들에게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대가 무너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의 고민을 처음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소위 인국공 사태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었다.

 

공정은 현상일 뿐 수면 아래 잠재되어 있는 본질은 따로 있다. 공정의 문제가 본질이라면 어찌 조국 교수의 자녀들에 대해서만 과녁을 겨누겠는가? 더 심각하게 기대를 무너뜨린 사례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선택적으로 분노하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이대남의 일부가 주장하는 능력주의는 본능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와는 차원이 다르다. 복잡하게 꼬여 있다. 도대체 불공정하다고 분노하는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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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07 [11:12]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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