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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미담] 안중근, 일본의 심장을 쏘다
임진택 창작 판소리-안중근, 제국 일본의 심장을 쏘다!
 
신완섭 기자   기사입력  2021/06/07 [14:32]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이날 점심식사를 끝내자마자 동작동 현충원을 찾았다.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군데군데 묘지에선 묵념이나 절을 하는 약간의 무리들이 있을 뿐이다. 딱히 아는 분이 없어서 故 김대중 대통령 내외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였다. 점심을 함께했던 사학자 L 교수가 일러준 바로 아래 숲속 ‘창빈 안씨(1499~1549) 묘역’도 찾았다. 조선 11대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로서 양주 장흥리에 있던 묘소를 좋은 터로 모셨다 하니 현충원이 자리 잡기 훨씬 전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찌는듯한 더위에 그늘에서 잠시 땀을 식히던 자리에 이런 시비가 세워져 있다. “남녘 뜨거운 베트남 전선에서/ 순간 속을 영원히 포옹하고// 겨레의 십자가 지고 달려간/ 한 참다운 군인이/ 몸 바치고 여기 쉬고 있다// 잘 자라!/ 고이 잠들라!/ 못다 외친 너의 절규는 영원히/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새겨지라라. <육군소령 김인오를 추모하며, 갑간 150기생들의 글>” 나도 함께 마음에 새기며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작 판소리 안중근 공연 참관객 (사진=심완섭)  @ 군포시민신문

 

대림역 4번 출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이곳에서 오후 4시 <임진택 창작 판소리-안중근, 제국 일본의 심장을 쏘다!> 공연이 열린다. 먼저 와 있는 동네 후배들(김명철 부부, 박선봉, 오수철)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 소리꾼으로 출연하는 배재정 명창(사실 아직은 아마추어지만 명창 못지않다)의 부인 김경순 여사에게 가져간 꽃다발을 대신 전했다. 잠시 배 명창을 소개하면, 한살림생협, 과천·군포·안양·의왕의료생협에서 활약해온 협동조합의 참일꾼 김경순 여사의 남편으로 군포에서 알고 지내는 동네 형님이다. 전 직장인 기아자동차 노조 위원장답게 강단 있는 모습이고, 직장 은퇴 후 스스로 명창 임진택 선생을 찾아가 <백범 김구>를 사사 받았다. 2020년 창작 판소리 <전태일> 등에도 출연하며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창작 판소리 안중근 공연의 문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막이 오르자 사설·작창 임진택 선생이 중머리 단가 <영웅열사가(英雄烈士歌)>로 공연의 문을 연다. “조선국 황해도 해주 수양산 자락에 한 사내가 태어날 제 가슴에 일곱 개의 점이 있으니 북두칠성의 정기로다. 이름을 응칠이라 지었더라. 아해의 타고난 성질이 가볍고 급한지라 ‘무거울 重 자를 써서 중근이라 개명하니 중근이 거동 봐라, 글공부에는 관심 없고 총을 들고 산에 올라 수렵에만 열중할 제, 백발백중 명사수라. 하로난 동무 하나이 염려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님은 문장으로 이름을 떨치신데 너는 왜 하필 무식 하등한 직업을 자처하는다?‘ 이에 안중근이 이르기를 ’옛날 초 패왕 항우는 글공부를 안 했어도 만고의 영웅이라. 항우가 장부라면 나 또한 장부일러니 다시는 그런 말 마라‘ 타고난 영웅이 분명쿠나,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제부터 우리가 안중근의 거사를 판소리로 한번 엮어볼 터인즉, ’좋다, 잘한다, 아먼, 그렇지‘ 추임새를 넣어가며 호연지기를 길러보세.” 

 

이때부터 아니리 잦은모리 엇모리 중중모리 단중모리 세마치진양 중모리 엇중모리 빠른세마치 진양조 빠른잦모리, 심지어 프랑스 신부와 일본 검찰관의 목소리를 흉내 낸 ’~했숑, 와따구시와 ~데스.‘ 기차의 기적소리, 총소리 등 버라이어티한 판소리가 펼쳐진다. 마침내 안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이 진양조로 낭독되며 공연은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이 어미보다 먼저 감을 불효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옳은 일로 이에 이른즉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어라.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이 아닌 대한인 전체의 공분이니 대의에 목숨을 내놓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니라...”

 

 창작판소리 안중근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정확히 다섯 달이 지난 1901년 3월 26일 중국 여순의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것으로 공연은 끝난다. 마지막 마무리 엇중모리는 이러하다. “안중근 죽는 날까지 노심초사한 일이 민족의 독립이요, 동양의 평화로다. 그가 남긴 미완의 저서(동양평화론)는 오늘 우리 현실의 예언이라, 여순지역 중립화는 한반도 중립화 담론이며, 한중일 3국 평화회의는 한반도 6자회담이라, 공동은행 화폐 추진은 동북아 경제공동체인즉 유럽연합 EU보다 80년이나 앞섰더라... 우리는 아직 의사님의 유해조차 찾지를 못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만,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이 의사님 모신 무덤이라, 안중근 의사여, 민족의 화해 일치와 통일을 향한 겨레의 길, 부디 저 세상에서 돌보아 주소서, 지켜 주소서.” 

 

공연이 끝날 무렵 공연의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나도 모르게 무대 위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찰칵, 찰칵, 셔터 누르는 몰카 소리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우리 일행들은 이날의 주인공 배재정 명창과 기념사진을 찍고는 구로역 근처 골목 주막에서 술로 감동을 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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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07 [14:32]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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