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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땅에 태어나서, 정주영
생각하는 불도저
 
신완섭 기자   기사입력  2021/03/19 [01:21]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지난해 말 합정역에서 양화대교로 가는 길목에 ‘정몽주 동상’과 마주쳤다. 뜬금없는 곳에 세워진 포은 정몽주(1337~1392) 동상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동상을 세운 이도, 글을 새긴 이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었다. 어떤 관련이 있길래 다리 앞 외진 곳에 동상을 세웠을까, 인터넷 검색 결과 현대건설의 양화대교 준공기념으로 현대그룹 정 회장이 같은 본관인 연일(延日) 정씨로서 충절을 지킨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정몽주를 기려 이곳에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본 ‘포은 정몽주 선생 상’ 글씨가 너무도 소박하고 단아하여 故 정주영 회장을 추가로 검색하던 중 그가 남긴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다시 읽어보게 된 것이다.

 

  올해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작고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태어난 해는 1915년으로 한일합방 5년 후이면서 3.1운동 4년 전의 암울했던 일제 시기이고, 태어나기는 강원도 북녘땅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시골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소학교를 2등으로 졸업했으나 열아홉 나이에 늘품 없는 농사일이 싫어 도시로 가출을 결행하여, 우여곡절 끝에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와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설립하여 자동차·건설 사업에 뛰어든다. 1950년 한국동란 통에 전국이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현대건설만은 미8군 공사를 독점하다시피 잠시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맺어지기 전 4월에 정부 발주로 따낸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 다리 공사는 큰 시련을 안긴다. 피폐해진 나라 경제 탓에 자재 값과 노임이 폭등한 결과 5,478만 환의 계약금을 훨씬 상회하는 6,500만 환의 적자를 낸 것이다. 이 일로 형제들까지 가산을 다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지만 악착같이 공사를 마무리 지어 인정받은 높은 ‘신용’ 평가 덕택에 부산항 신축공사 등 정부 발주 복구사업 수주를 연이어 받게 된다. 그 뒤 한강인도교 공사, 경부고속도로 공사 등 굵직한 공사를 따내며 일약 건설업의 주역이 되었으니 값비싼 희생을 되돌려 받고도 남았다.

 

  이런 성실과 신용은 해외건설시장 진출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에서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으나 건설 노하우 축적과 함께 국제적인 신망을 얻게 된다. 1976년 따낸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당시 9억3천만 달러로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선진국들의 방해 공작과 입찰에서부터 은행보증, 공사 장비 등 모든 것이 열세였음에도 정 회장은 뚝심과 지혜로 풀어냈다. 이때부터 세인들은 그를 ‘생각하는 불도저(thinking bulldozer)’라 불렀고, 나라에는 외화 보따리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1967년 설립한 현대자동차는 일제 때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경영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지만,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100% 국산 자동차를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 것이다. GM, Ford 등과의 불리한 합작을 뿌리치고 ‘Hyundai’ 브랜드를 고수한 결과 마침내 오늘날 K-car 선풍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그의 사업 신념은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독자적인 사업을 독자적인 브랜드로 끝까지 일궈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중단’이나 ‘타협’이란 말은 없다.

 

  1972년 3월 첫 기공식을 가진 현대조선 사업은 훨씬 더 드라마틱했다.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1967~1971) 박정희 정권은 제철, 종합기계, 석유화학, 조선을 국책사업으로 육성하려 했다. 정 회장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놓고 조선업 진출을 종용했다. 정부가 보증을 선다고 해도 차관도입이 힘들게 되자 주머니에서 5백 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앞선 조선술을 증명하는 기지를 발휘해 설득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첫 수주 받은 대형유조선 2대조차도 지어지지도 않은 도크를 파내는 동안 도크 밖에서 부분 조립하고 도크가 완성되면 도크 안으로 운반해 건조를 계속하는 조선소건설과 선박건조 동시병행 방식으로 진행하여 차질없이 납품한 쾌거도 이루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현대와 정 회장에 얽힌 일화는 당시로선 기적 같은 대사건이었다. 6.25동란 이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60달러였다. 필리핀이 당시 800달러였으니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최빈국이어서 자본은 언감생심 기술마저 형편없던 시절이라서 오로지 떼울 수 있는 건 몸 밖에 없었으나 정 회장은 ‘하면 된다’는 굳건한 신념으로 기술과 자금의 벽을 넘어섰다. 거기엔 특유의 뚝심 말고도 그만의 무한긍정 정신이 작용했다. 젊어서 농사를 지을 때나 막노동에서 엿공장으로, 또다시 쌀가게로 전전할 때도 노동에 대한 고마움을 가졌고 기업활동 중 발생하는 숱한 어려움에 봉착해서도 조금의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적인 기지와 역발상으로 난국을 극복했으니 ‘생각하는 불도저’란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일단 재산 많은 부자면 행복한 사람인가?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최선을 다해 자기한테 맡겨진 일을 전심전력으로 이루어내며 현재를 충실히 살 줄 아는 사람은 우선 행복한 사람이다.” 그가 묻고 답한 본문의 한 구절이 깊은 울림을 준다. 반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세상에 대한 불평과 증오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느라 문제를 해결할 능력 발휘를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과 실패만을 되풀이한다. 좌절과 실패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운(運)은 ‘때’이다. ‘좋은 때’와 ‘나쁜 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좋은 때’를 잘 알고 잘 잡아서 성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쁜 때’는 또 그대로 최선을 다한 노력과 성실성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비켜 가거나 잘 수습하기 때문에 언제나 운이 좋은 사람으로 비쳐질 뿐이다. 운 좋은 사람으로 불리는 그가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으로 꼽는 세 가지는 첫째 건강한 사람, 둘째 담백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 셋째 생각하는 사람이다. 건강한 심신은 사고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서 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생각의 있고 없음은 교육 수준과는 무관하다. 날마다 열심히 생각하며 살았던 자신으로서는 생각 자체가 향상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 약간의 회한이 발견된다. 1980년 경제산업구조 개편이라는 구실로 국보위가 저질렀던 창원중공업 강탈 사건과 1987년 6월 항쟁 이후 거듭된 악의적 노동쟁의, 1992년 대선 출마 이후 자신과 현대에 가해진 김영삼 정권의 정치보복 등 정치적인 목적과 필요에 따라 조령모개식으로 등장했던 정책이나 인위적인 처단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시련들, 그라고 왜 회한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땅에 태어나서 한 사람의 기업인이자 노동자로서 성실과 신용으로 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에 한 몫을 다한 무한한 긍지를 자신의 후대들이 똑같이 느끼기를,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을 덮고 나는 불도저 정주영의 성공비결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름대로 결론지은 것은 다섯 가지, 즉 투지, 성실, 신용, 애국, 평정심이다. 이 다섯 가지에 관해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첫째 투지(鬪志). 투지란 말은 그야말로 ‘싸우려는 의지’이다. 타고난 천성도 있겠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투지는 불타오르기도 한다. 옛날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초패왕 항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그가 베푼 마지막 홍문연(鴻門宴)에서 굴욕을 참고 살아남아 마침내 천하대업을 이루었다. 정 회장도 스스로 밝혔듯이 한때 ‘고령교의 덫’에 걸렸으나 계약금액을 능가하는 공사비용을 쓰고도 끝까지 완공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나의 길지 않은 직장생활에서 느낀 점도 성공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더라는 점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어 승리의 매운맛을 보아야만 투지는 더욱 굳건해지는 법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임자,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처럼 일할 의욕이 없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바로 투지의 문제였다.

 

  둘째 성실(誠實).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인데, 1993년 미국 콜로라도대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처음 발표한 개념이다. 내용인즉, 빌게이츠, 모차르트 같은 대부분의 천재들은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증명이다. 정 회장은 한술 더 떠 대표적인 새벽형 인간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근면성은 젊어서부터 그만의 습관이 되어 매일 새벽 5시에 눈을 떠 일을 시작한다. 현대조선 공사 때는 혼자 차를 몰고 나갔다가 바다에 빠져 물귀신이 될 뻔한 적도 있었으나 일을 하는 내내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책 중에도 “‘한강의 기적’ 속에 ‘기적’은 없다. 다만 성실하고 지헤로운 노동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겠는가. 청운동 자택 응접실에 걸어놓았던 액자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다)’만 봐도 그가 얼마나 근면·성실하려고 자신을 세뇌했는지 가늠이 된다.

 

  셋째 신용(信用). 믿음의 정도는 그 사람의 됨됨이다. 사업가의 신용도는 사업의 진척도와 맞먹는다. 일제 때 아도서비스 공장 화재로 알거지가 되었을 때 선뜻 거금 3,500원을 빚내준 사채업자나 한국동란 중 미8군의 공사를 싹쓸이했던 것이나 계약금보다 더 많은 공사비를 쓰고도 고령교를 완공했던 일, 기획서 한 장에 현대조선소 설립비용을 차관해준 영국의 금융기관과 조선소도 만들어지기 전에 대형유조선 2대를 발주해준 그리스의 리바노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은 인간 정주영의 됨됨이를 높게 사 준 결과였다. 그만큼 그는 맡은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완수하는 집념을 보여주어 국내외에서 완벽한 믿을맨으로 부각되었다. 신용은 변하지 않아서 변함없는 신용 덕에 현대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넷째 애국(愛國). 애국은 남녀 간의 애정보다 더 숭고한 뜻을 지닌다. 그중에서도 진실된 애국은 잃어버린 나라도 되찾게 만든다. 정 회장의 오랜 선조인 포은 정몽주는 조선의 역성혁명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해서 그는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丹心歌)>를 부르며 고려의 마지막 신하로 충정을 바쳤다. 600여 년이 흐른 즈음 같은 핏줄의 정 회장도 조국 대한민국의 발전에 혼신을 바쳤다.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 눈부신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해외언론이 현대의 발자취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임을 대서특필할 때도, 정 회장은 내 민족 내 나라를 위해 할 일을 다 했을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2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해온 나로서도 기업가가 최고의 애국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부국강병의 최일선에 선 사람들이므로...

 

  다섯째 평정심(平靜心). 평정심은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고, 평상심(平常心)은 ‘일상적인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두 말 중 정 회장의 평소 자세는 평정심에 가까웠다. 정 회장은 어떤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흔들림이 없었다. 평정심을 잃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마음 수양이 되어 있었고 자신감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현대조선 설립 차관도입 차 영국 버클레이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을 때 학위를 따져 묻자, 전날 본 옥스퍼드대학 졸업식 장면을 떠올리며 “이번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단번에 경영학박사 학위를 주더라”는 농을 쳤다. 이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낙관적인 유머였고 차관도입은 그 즉시 성사되었다.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다. 기업 경쟁의 범위도 국내를 떠나 글로벌하게 이루어진 지 오래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현대자동차가 GM, 도요타와 경쟁을 벌이는 무한경쟁 시대에 놓여있다. 다행히 우리 기업들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글로벌 경쟁을 선도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이 마윈이 중국 당국의 금융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의 ‘앤트 그룹’을 손보는 모습을 보며 섬찟했다. 기업활동에 발목을 잡는 기업 길들이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6공,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갖은 수난을 겪었던 정 회장은 마음의 앙금을 털어내고 각자 가야 할 길이 자유롭길 바란다. 기업은 기업인이, 정치는 정치인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가자는 것이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정치가 아니라 기업을 지원하고 돕는 정경협력을 통해 선진 대한민국으로 나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만사가 어지럽다. 2021년 ‘흰 소의 해’를 맞다 보니 정 회장이 소 떼를 이끌고 방북했던 1998년이 떠오른다. 두 차례에 걸쳐 1,001마리의 소를 북한에 전달하면서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고 결국 개성공단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다급한 펜데믹 해소일지 몰라도, 길게 봐선 남북 경협의 실마리를 푸는 일일 것이다. 우직한 소의 느린 걸음으로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의 걸음을 신축(辛丑)년 올해에 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시 한 수 남긴다. 

 

  불같은 성미에 황소 같던 왕고집,

  도저히 꺾이잖던 집념의 사나이 

  저돌적 위세에 눌려 하늘마저 감복했지 

 

  정만은 차고 넘쳐 극진했던 애국애족,

  주베일 공사 따내 외화벌이 나선 끝에

  영웅이 되고도 남을 나라 살린 일등공신

 

▲ 책 표지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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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19 [01:21]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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