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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리영희 ③ 양윤정
반향과 울림을 주는 진정한 어른
 
양윤정 시인   기사입력  2020/11/25 [00:01]

편집자주) 리영희 선생 10주기 추모하며 생애 마지막 16년을 보낸 군포에서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의 글을 기고 받아 연재한다. 25년 전 군포시민신문의 발기인으로 지역신문 창간 지원에도 아낌없이 지원하셨던 선생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추모한다.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대표적인 인문사회 학자로 선생님의 책을 읽지 않은 자는 토론의 자리에 있을 수 없을 만큼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리영희 선생님은 태풍 같은 반향을 일으켰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를 밤새워 읽고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기쁨과 이런 어른이 같은 시대에 있음에 박탈감과 상실감에 상처받은 청춘이 위로받으며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다. 

지면으로 만나던 리영희 선생을 실제로 만난 것은 2003년 7월 초순이었다.

산본 도서관에서 시민 문예창작반 수리샘 문학회 임원을 맡아 고은 시인 초청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은 시인이 강의 내용이나 강의료는 묻지 않고 군포 산본이면 제가 좋아하는 형님 리영희 교수와 임헌영 평론가가 사는데 두 내외분을 뒤풀이 점심 식사자리에 초대할 수 있다면 강의에 응하겠노라 하는 것이었다.

 

지도교수로 격주로 뵐 수 있는 임헌영 선생님께 도와 달라 청하였다. 임헌영 선생은 리영희 선배님이 몸이 안 좋으신 것으로 아는데, 안성 대림 동산에서 우리 동네로 오는 고은을 안 볼 수야 있나 하시며 쾌히 대답을 주었다, 했다. 강의는 당시 고은 선생의 명성 덕분으로 산본 도서관이 꽉 찰 정도였다.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리영희 선생 내외분을 임헌영 선생이 모시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대화도 자유롭지 못했던 리영희 선생님은 음식을 천천히 조금 드셨다. 식사 끝 무렵 고은 선생이 벌떡 일어나 리영희 선생님 등 뒤로 가더니 등과 어깨와 팔을 주물러 드리며 우리같은 철부지 곁에 오래 계셔야 한다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임헌영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형님이 그러시면 내가 앉아 있을수 있냐며 고은 선생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 것이었다. 이런 후배님들의 모습과 그 모습이 아름다워 환한 웃음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이 좋으셨는지 약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리영희 선생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었다. 

 

그 후로 몸이 많이 좋아지셔서 구술을 받아 적는 인터뷰도 하시고 지인들이 찾아오면 간단한 식사도 나누고 책 [대화]도 출간하셨다. 산책 나오신 선생님을 간혹 마주치곤 하였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뵌 날은 치과 치료를 하러 안양 나가는 15번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이 들면 이론이나 논리보다 감각이 둔해지는 게 무서운 것 같아 ......

 

모셔다드릴까요? 하니, 아니야, 바쁜 사람 시간을 내가 갑자기 써서야 쓰나 하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베레모에 셔츠를 단정하게 조이던 앰블럼 끈이나 단아한 입매와 독수리 눈처럼 날카롭게 빛나던 그 눈매, 자유와 진실에 대한 신념과 의지 하나로 온몸으로 그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오롯이 통과해 스스로 빛이 된, 의연한 사내 리영희 선생님께 엎드려 감사드리고 싶다. 선생님이 계셔서 영광이었다고. 

 

                                                      2020년 11월 늦가을

 

▲ 리영희 선생님과 문학기행에서 (사진=양윤정)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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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5 [00:01]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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