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저는 독립운동이 자랑스러운 역사고, 자긍심을 가질 역사라는 그런 면으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윤주경 당선자의 사고는 1932년에 멈춰있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데도 독립운동정신만 간직하고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 그것이 윤주경의 정체요 자아(自我)다. 이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교육받고 경험한 것을 절대화하며 평생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다.
학생 시절에 4 · 19 혁명에 참가했다고 해서 그 자긍심만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의감 하나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투사들의 상당수는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에 헌신했다.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국민이 깨어있는 만큼 정치는 발전한다. 민주주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국민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동안 정치가 국민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국민이 변하지 않으면 정치도 변하지 않는다.
때로는 정치의 수준이 국민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번 총선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저지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이 국민을 자극했을 것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여주기는커녕 무법천지의 작태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코로나 19의 성공적 대처가 미국 및 유럽의 상황과 대비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국면에 미래통합당(당명을 바꾸는 것은 국민을 얕잡아 보는 속임수다)은 경제실정 운운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다. 동의할 수 있겠나? 비판을 하더라도 근거에 합당하게 해야 수긍하는 법이다. 패스트트랙에서 여기까지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확실하게 각성했을 것이다.
언론은 정치발전을 희망하지 않는다. 정치의 수준이 낮아야 나무라며 권위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신문이 잘 팔리기도 했다. 미래통합당과 조중동에게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있다. 사고가 정지된 태극기 노인들이다. 이들은 미래통합당과 조중동의 지적 수준이 바닥에서 머물도록 붙들어둔 1등 공신이다.
미래통합당과 조중동과 태극기 노인들이 성찰 없이 흘러간 옛 노래를 열창하는 사이에 촛불혁명의 주체인 대다수 국민들의 의식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언론도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조중동은 아직도 자기네들의 편파왜곡보도를 어리석은 국민들이 여론으로 알고 추종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번 일로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민주당과 시민당은 180석을 얻었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의 부담 없이 개혁과제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위원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 좋아할 게 아니라 무겁게 책임감부터 가져야 마땅하다. 15년 전 열린우리당처럼 실용주의 운운하며 개혁과제를 실종시켜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희랍의 민주주의는 노예와 여성을 제외한 남자들에게만 해당되었고, 부르주아 시민혁명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다. 돈 많은 부자 남자들만 참정권을 누렸다. 미국의 국부(國父)들이 실행한 민주주의도 백인 남성들이 독차지했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시작했다.
코로나 19 사태는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구미 국가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정치제도는 민주주의 형식을 구비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주권자로서의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단도 치료도 부자들에게만 부여될 뿐 가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의료민영화의 실상이다. 서구의 민주주의는 허상이었다. 단순히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지도자를 뽑는 제도가 민주주의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실체는 각자가 개인의 인생을 책임지라는 것이다. 복지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미 국가 국민들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공상적 민주주의다. 지식정보사회에서 국민들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해서 정치 위에 설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가능한 법이다.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배움(學)을 전제로 한다. 배움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그 후로도 평생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어서 직업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배우되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하며(學問), 실행에 옮겨 배운 것을 확인해야 한다(學習).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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