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법부가 내린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박하여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 백색국가 지정취소 등 경제보복을 내린 시점에 출간된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2019.7.10. 발간)>는 ‘No Japan’, 나아가 ‘No 아베’ 국민운동을 벌이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어떤 내용이 우리를 그토록 분노케 하는가? 읽기에 거북한 이 책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가? 그가 정한 책 제목만을 논박의 근거로 삼아 몇 자 남겨 본다.
첫째, 반일(反日)론
반일은 ‘일본에 맞서거나 반대함’을 의미한다. 우리 국민이 반일감정을 갖거나 반일투쟁을 벌이게 된 이유는 지난 역사를 통해 ‘앞서 일본이 그 원인 제공을 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도발을 일삼거나 원한을 가질 만큼 나쁜 짓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반일의 메커니즘은 자생적인 감정표출이 아니라 자극의 산물이다. 약한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비는 법인데, 뺨 때린 놈이 뺨 맞은 사람의 멱살을 잡아챈다면 잠자코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반일의 정서를 가해자 입장은 두둔하고 피해자 입장에서만 찾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가해자 일본이 저지른 죄악-강제동원, 강제징용, 강제부역-은 일체 근거가 없으며, 무지몽매한 대한민국 피해자 집단의 거짓말과 억하심정만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사죄를 할 만큼 했고 한일협정을 통해 줄 걸 다 줬는데 한국이 억지 추태를 부리고 있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객관성을 고려하여 동시에 읽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민족문제연구소 2017년 발간)>에 나열된 강제동원의 숱한 자료와 피해자들의 증언이 몽땅 거짓말이란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 국민 모두를 반일로 내몬 건 철저하게 그의 사고가 ‘친일화’되어 있어서다. 그가 거짓부리라며 우리 국민에게 뒤집어씌운 샤머니즘적 구태 속에는 오히려 일제 망상이라는 주술을 숭앙하는 그 자신과 그의 주술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을 뿐이다. 일제의 도발에 의해 번진 반일감정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전제되면 언제든지 사그라들 수 있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바라건대 그런 날이 빨리 도래하여 ‘타의적 반일(反日)’ 현상은 사라지고 선의의 경쟁 속에 ‘자의적 극일(克日)’ 운동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둘째, 종족주의(種族主義)
종족(trive, species)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종류의 생물 전체’를 일컫는다. ‘조상이 같고, 같은 계통의 언어·문화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으로 확대 풀이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집단’인 민족(民族)이란 말에 비해 생물학적인 분류로서의 의미가 강한 말이다. 그가 민족주의 대신 굳이 종족주의로 표현한 의도는 우리 국민을 미개한 종족으로 비하하고 폄훼하기 위함이다. 백인우월자들이 황인종과 흑인종을 괄시하고 홀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눈에 한국인은 지적 분별력이 떨어지고 거짓말을 일삼고 물질 만능에 젖어있는 샤머니즘적 집단, 다시 말해 개와 원숭이 같은 동물 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를 인정하는가? 지형학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왔고 36년간 일제 식민지배의 굴욕을 겪었지만 수천 년을 면면히 이어 온 민족문화는 계승 발전되어 오늘날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아니한가. 주의(principle, -ism)는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 또는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을 지칭한다. 확실히 검증되거나 체계화된 낱말에 따라붙어 이를 뒷받침하는 조어이다. 종족주의란 말을 우리말 국어사전은 ‘자신의 종족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나 사상’쯤으로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종족+주의’는 통상 한 종족의 축적된 우월감을 내세울 때 사용된다. 세계공용어인 영어로도 tribalism, ethnicism(종족주의)이나 racism(인종주의)은 타 종족과 우열을 가릴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 민족정신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이 말을 선택했다. 민족보다 열등한 종족이란 말로 개념화하여 함부로 주의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반일 종족주의’라는 표현은 온당치 않다. ‘반일 민족주의’라면 몰라도 말이다.
본문 내용을 다 읽고 느낀 소감은 학자로서의 균형감을 상실한, 일방적이고도 선동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불쾌감이 치밀었다. 한쪽 눈을 감고 제한된 시야에서 바라본 음지의 세계 대신 두 눈을 부릅떠서 음지와 양지를 가려주었다면 수긍하는 바가 적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친일로 무장한 경도된 그의 지적은 분노만을 자아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언론의 자유를 방종한 불온서적이다. 저자가 언급한 ‘망국 예감’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부정하는 일종의 주술적 표현이다. 그가 바라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한다. 나라 바깥의 적보다 더 무서운 ‘우리 안의 적들’, 정신 똑바로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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