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대야미 속달동 주민 신선임 씨와 가족들이 지난 1월 이란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신선임 씨의 ‘이란여행기’를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골레스탄 궁전이었다. 카자르 왕조가 1779년 권력을 가진 이래 테헤란을 수도로 삼고 여기 궁전은 짓게 되는데 카자르 왕조 시대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한창 서구 열강의 간섭이 가열되던 시기 골레스탄 궁전은 유럽과 페르시아 건축술의 성공적인 결합이 구체화된 것이다.
왕이 집무를 보던 메인 홀에 갔는데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하다. 바닥은 페르시아 양탄자로 깔려 있고(맘의 말로는 이런 대형 양탄자는 짜는데 2년은 걸렸을 거라고 한다) 천장은 온통 거울 장식으로 번쩍인다. 유리 상자 안에 있는 왕관과 왕좌는 보석이 빼곡히 박혀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영화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모조품이고 진품은 우리가 다음에 방문할 테헤란 보석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골레스탄 궁전에는 여러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빅토리아 조 영국에서 온 시계, 중국에서 온 고급 가구, 유럽 등지에서 온 값진 보물 등 유럽과 아시아에서 들어온 이 선물들은 19세기 페르시아의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중국 물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페르시아와의 외교 관계가 예전부터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거리가 멀기는 하겠지만 조선 시대에 중국을 통해서라도 외교관계를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도자기가 전시된 것으로 보아 일본도 국제 관계에 슬쩍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말이다. 페르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통해 18세기 과학 기술의 발달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던 유럽과의 관계가 일찍부터 형성되지 않았을까?
19세기, 안으로는 세도 정치로 인한 삼정의 문란으로 극심한 민란이 일어나 나라 안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쇄국 정책으로 밖으로의 문을 걸어 잠그고 서양 문명에 대한 배척으로 일관하던 조선 왕조가 마침내 강제적인 방식으로 빗장이 풀리고 나서 외국과의 무역이나 외교면 에서 자주적인 위치에 설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매몰되어 있었기에 청나라가 아편 전쟁 이후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맥없이 스러져 가자 우리도 그 중심을 잃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화려함을 자랑하던 근대의 페르시아도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땅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이란 북부의 아르메이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어 현재 이란의 국경선으로 거의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페르시아의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정원으로 나왔다. 겨울이라 꽃은 지고 낙엽도 뒹굴고 있어 더욱 을씨년스럽다. 봄이 온다면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한껏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갑자기 한 청년이 영어로 말을 건다. 멀리 마샤드에서 온 청년에게 반가운 마음에 대꾸해 주고 있는데 맘이 무슨 일이냐고 인상을 쓰자 머쓱해 하며 가버린다. 그 남성의 의도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나타난 맘의 매서운 눈은 딸을 보호하려는 엄마의 심정이려니 하고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란은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따르고 있어 남성들이 외국인 여성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대하는 것 같다. 외국 여성에 대한 성추행도 빈번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론리 플래닛 이란편에 실린 내용을 보면 이란은 ‘공식적으로’ 혼전 순결이 요구되는데 이란 남성들에게 외국인 여성은 하룻밤 상대로서 생각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거기에 몇 가지 안전 수칙이 적혀 있는데 아이와 같이 다니므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지만 먼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면 안 된다는 등 수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테헤란 바자에는 워낙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맘이 데려간 무슬림 식당(Moslem Restaurant)은 토박이들 사이에서 소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식당은 홀이 넓지 않았음에도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홀에 들어서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1층 계단부터 줄을 서게 되었는데 점점 줄을 따라 2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쟁반을 들고 샐러드나 올리브, 덕(신맛이 나는 전통 요거트)을 선택해서 담으면 마지막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해서 자리를 잡고 앉으면 된다. 그 혼잡한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앉는지를 정확히 찾아내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이란인들은 대식가들이라 나오는 음식 양이 많은 편인데 남은 음식을 싸 가는 것도 흔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제는 그 줄이 계단을 내려가 길가까지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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