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상 칼럼] 영조와 정조 그리고 인삼정홍상의 일상건강이야기(20회)
지난 설을 앞두고 홍삼 제품에 대한 광고를 자주 보거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명절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겪는 일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홍삼을 먹는다는 말이겠죠?
홍삼신화라고 불러야할 만큼 홍삼이 면역력에 좋고 기운을 나게 하는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인삼은 부작용이 있지만 홍삼은 누구에게나 괜찮다는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영조는 조선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드물게 8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조는 어머니가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집권과정에서는 당파싸움에 자식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만든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한 것은 인삼 덕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해에는 인삼을 20여근, 즉 800그램을 먹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거의 매일 먹었다는 것이죠.
영조는 이중탕이라는 처방을 달여 자주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탕은 인삼이 군약(君藥)이므로 인삼탕이라고도 하는데, 인삼, 건강, 백출, 감초로 이루어진 처방입니다. 이중탕은 소화불량이 있고 대변이 무른 증상에 많이 쓰이는 처방입니다. 영조는 자신의 건강에 많은 공을 세웠다는 뜻에서 인삼탕을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승정원일기>에 건공탕이라는 이름이 1,732번이나 나온다고 하니 영조가 건공탕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조의 손자 정조는 49세에 돌아갔습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을 보면 일찍 죽은 것은 아니지만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노론 소론 등 당파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개혁정책을 펼친 정조에 대한 반대파가 수은으로 독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파인 심환지와 정조 사이에 내밀하게 오간 편지가 공개되면서 독살설은 좀 수그러듭니다. 정조는 일 중독자였으며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또한 술을 자주 하고 골초였다고 합니다. 그런 것도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일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인삼이 들어간 처방을 먹은 것이 운명을 재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의료사고일 수 있다는 것이죠. 정조는 꽤 다혈질이었다고 합니다. 신하들과 격렬한 논쟁을 자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오늘부로 난 신하들과 일체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할 정도로 격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정조는 양인(陽人)으로 보이는 데 양인에게는 인삼이 맞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 어의들은 인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인삼이 조선의 특산품이기 때문입니다. 선조는 비싼 중국약재보다 조선의 약재를 많이 쓰라는 명을 내립니다. 허준은 동의보감을 편찬하면서 인삼이 들어간 처방을 많이 수록합니다. 허준의 스승 양예수는 특히 인삼을 많이 썼습니다. 그 반대편에 선 사람이 어의 안덕수입니다. 당시 설화집인 <어우야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양예수는 집중적인 투약으로 효과를 빨리 보는 반면 사람 상하는 일이 많았지만, 안덕수는 효력은 느리나 사람 상하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인삼은 성질이 날카롭고 힘이 셉니다.
이와 같이 인삼은 누구에게는 독이 되고 누구에게는 천하 명약이 됩니다. 홍삼이라고 해서 인삼의 날카로운 성질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찌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소화와 흡수에 유리할 뿐입니다. 칼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합니다. 인삼, 홍삼을 복용한 후에 부작용을 겪었다면 날카로운 칼을 함부로 휘두른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삼은 어떤 사람에게 좋을까요? 다음번에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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