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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 알혼섬의 남과 여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싸이베리아 여행기’ (7)
 
신선임 안산선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18/11/05 [07:00]

[편집자주] 대야미 속달동 주민 신선임 씨와 가족들은 지난 겨울 아프리카 여행에 이어 이번 뜨거웠던 여름에 러시아 바이칼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이에 매주 토요일 러시아 여행기 ‘생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보아 온 고향 바닷가의 모습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길을 떠나 새로운 풍경을 보아도 다시 예전의 고향이 떠오르고 은연중에 고향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을 애써 찾아가고 이름난 곳을 가 보아도 고향의 모습을 능가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멀리 떠나 보지만 마음으로는 고향으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오는 남자. ‘어머 저것 봐!’ 하며 그의 옆에 있는 여자가 바이칼 호수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새롭고 낯선 풍경에 흥분하여 난리지만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다.

 

“딱 우리 고향 바닷가 모습이구만”

 

 

▲ 바이칼 호(사진=픽사베이)     © 군포시민신문

 

나는 지방의 도시 출신이다. 어린 시절 전세 기간이 끝날 때마다 짐을 꾸려 이사를 다닌 기억이 있다. 낯선 동네에 새로 이사 와서 동네 아이들 텃세를 견디며 새로운 아이들과 적응할라치면 다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후에 성장하여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두 발이 닳아져라 쏘다녔다. 배를 타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섬에도 가보고 작은 체구에 맞지 않게 배낭을 높이 쌓아 올려 산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양 다음에 갈 새로운 여행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고향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남자와 이미 고향을 상실한 여자는 함께 여행을 갈 때마다 토닥토닥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여행에서 겪게 되는 낯설고 생경한 문화의 차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집을 떠나온 여행자로서의 불편함에 쉽게 익숙해 있는 여자에게 가능하면 쾌적하고 편하게 여행 하고 싶은 남자의 볼멘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내게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이란 이렇게 약간의 긴장이 필요한 일이다.

 

남편은 어떨까? 어제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오는 길에 만난 치에게 내가 악다구니를 퍼붓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았을까.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그런 치들과 싸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와 달리 그는 차라리 택시비를 협상하고 싶어 했다. 아예 그런 놈에게는 한 푼도 못 준다며 말도 꺼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내가 괜히 자신에게 화풀이 하는 것 같다며 벌써 감정이 상해버렸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겪은 소란에 남편은 애초에 이번 여행도 편한 여행이 되기는 물 건너간 것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 바이칼 호(사진=픽사베이)     © 군포시민신문

 

알혼 섬으로 가는 것은 거의 한 나절이 걸린다. 이르쿠츠크에서 달려 온 버스가 선착장까지 오는데 6시간. 배를 타고 알혼 섬에서 내려 다시 타고 온 버스를 찾아 타고 비포장도로를 1시간 더 달려야 후지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니 5시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지쳐 버렸다. 알혼 섬을 달리는 내내 숲은 보이지 않고 풀밭만 펼쳐져 있어 여기를 오려고 이렇게 고생했나 싶을 정도이다. 아까운 휴가를 이렇게 길에서 다 써버렸구나 싶다. 이 여자는 왜 나를 여기에 데려왔을까.(남편의 입장에서 써 보았다)

 

“그래도 알혼 섬을 보지 않고서 바이칼을 논하지 말라고 하니 우선은 방문 자체에 의미를 두 는 것으로 해요.”

 

호수인 바이칼은 바다 마냥 20개의 섬을 품고 있다. 알혼 섬은 단연 바이칼에서 가장 큰 섬으로 72km로 뻗어 있는 그 모양이 바이칼 호수와 그대로 닮아있다. ‘알혼’은 ‘바람 부는, 햇빛 비치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부리야트 말에서 왔는데 시베리아 샤먼들의 성지이며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부리야트 족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일하는 아가씨는 예쁘게 생긴 부리야트인이다. 드물게 영어를 잘 해서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알혼 섬으로 오면서 확실히 부리야트인이 눈에 많이 띈다. 7시간 동안 우리를 알혼 섬으로 데려다 준 버스 운전사도 안내소 직원들도 모두 부리야트인이다. 외모면에서 닮아 있어서 그런지 이쪽에서 말을 걸기 전에는 러시아어를 쏟아 내는데 영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제야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알혼섬 북부 투어를 예약하며 숙소에 돌아왔는데 밤이 되자 온도가 많이 내려갔다. 샌들을 신고 다닌다고 양말을 안 가져왔는데 발이 시려 잠을 못 잘 정도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서 그런지 동네 개들이 짖느라고 야단이다. 서로 돌아가며 컹컹 짖어대는데 끝이 안 날 것 같던 개 짖는 소리도 내가 잠에 빠져서인지 어느덧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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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5 [07:00]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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