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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협치시대...대의제 한계 극복위한 '공론장'부터 마련해야
[기고] 거버넌스와 시민주권 ①
 
송재영 마을공동체와 자치분권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10/24 [13:27]

governance는 steer(키를 잡다,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áo에서 나온 말로, 이를 비유적 의미로 최초로 사용한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B.C.427~B.C.347)이다. 관주도적 행정을 비판하면서 제기된 개념으로서 정부 이외의 민간조직,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등 민간부문이 정부의 독점적 권한인 정책결정과 공공서비스 제공 분야에 참여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소통과 네트워크 관리체계를 의미한다고 정의된다. 

 

'협치', '함께 다스림', '공치' 등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협치라는 개념보다는 공치(共治)로 번역되고 있다.  인간에게 신성불가침한 주권의 개념에서 보면 협치 보다는 공치가 더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버넌스의 선두주자 서울시에서 협치 앞에 시민주도를 붙이는 이유도 거버넌스를 행정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넘어 시민의 주도성을 강조하고 위한 것이다.

 

바야흐로 협치 혹은 거버넌스 시대를 맞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 및 구체적 방향성에 대한 합의와 실행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2년 전부터 협치를 실천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도 조례 제정을 통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공무원 조직 내에 인입하고 협치협의회와 추진단을 중심으로 민관 협치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 2016년 열린 ‘서울 협치시정 시민 대토론회’ (사진=서울시)     © 군포시민신문

 

그나마 박원순 시장의 시정철학의 뒷받침으로 인해 관료사회의 탁상적 사업방식이 시민단체 및 민과의 소통과 협력을 중시하는 분위기 변한 것은 실로 대단한 변화이긴 하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참여가 시민단체 위주로 국한되어 있고, 주민총회와 같이 주권자인 시민들이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이나 서울시 사업에 대한 결정 권한과 재정을 가진 시민자치조직이 아직 없다는 점에서 서울시 협치가 한국의 자치분권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모델로 작용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는 평가이다.

 

그 원인에는 거버넌스가 민주주의 발전 역사에서 차지하는 시대적 의미 및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과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로 시작하여 프랑스 대혁명 이래 민주주의의 본질인 시민주권의 정치철학적 의미를 현실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철학적 계급적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래 현대 민주주의의 쟁점은 자유민주주의냐 자치민주주의냐의 논쟁이다.  오늘 날의 정당정치, 투표를 통해 선출된 공무원이 위임을 받아 대신 통치하는 대의제가 자유민주주의의 골간이라면, 이런 대의제 방식을 최소화하고 주민자치와 총회, 주민투표 등의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결합한 것이 자치민주주의이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이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주의’ 용어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민주주의’만으로 개헌 수정안을 발표했다가 자유한국당이 우리나라를 사회주의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라는 총 공세에 밀려 없던 일로 했던 해프닝이 있었는데,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가 참여민주주의로 변화되고 있는 국제 정치학계에서 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Democracy는 그리스어 demokratia에서 유래했는데 그 어근의 의미는 시민(demo), 지배(kratos)이다. 18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의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배를 의미하였고 우리나라도 헌법 제 1조에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국민주권 이념이 들어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어기고 자유민주주의는 군주제와 귀족제, 파시즘과 싸워 혁명을 이룬 시민을 민주주의에서 배제하고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가가 위임을 받아 시민 대신 통치하는 대의제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주인 대신 위임 통치한다는 간접민주주의인 자유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역사상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심지어 칼 맑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형인 대의제는 겉으론 중립적, 공익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기 쉽게 은폐해 주는 착취의 대리기구라고 할 정도였다.

 

맑스주의자처럼 레디칼하지는 않더라도 자유민주주의가 말하는 대의제는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 형태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루소는 주권은 위임이나 양도받을 수 없다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시민은 선거 때만 황제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며 간접 민주제인 대의제를 비판했다.   

 

선거로 선출된 정치가들이 주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느냐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권을 위임받은 정치가들이나 그 정치가들을 보좌하는 공직자들이 시민의 이익이나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출세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위선적인 행위를 계속 목도하면서 정치를 불신하고 냉소를 보냈다. 자본주의 민법 상 사적 계약에 의하면 당연히 무효가 되어야 할 사기 위임 계약인 정치가 사상가의 사회계약론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면서 자유민주주의 대의제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깊어만 갔다.

 

자유민주주의가 말하는 대의제는 재력 있는 정치적 야망가들 간의 치열한 양육강식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고 정당은 그러한 야망가들의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비민주적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모습에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권이 행사되는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것이 마치 사려 깊고 지혜로운 것처럼 생각하는 정치로부터 도피 현상이 나타났다.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야 할 보물 정치를 잃어버리는 주권 유랑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홉스나 로크서부터 주장된 대의제 자유민주주의는 여성이나 노동자, 빈민 등 약자와 무산자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본질적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해가 1944년도, 미국이 1930년이라는 것만 보아도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는 반민주적이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자유민주주의의 반민주성과 불평등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한 주권자인 시민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 시장론은 민주주의 원론적 가치가 자유와 평등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은 자본가들에게 시민과 노동자를 마음껏 착취하라는 자유에 불과했다. 그리고 불평등과 빈곤 상태에서 자유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빈익빈 부익부를 양산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바로 대의민주제였다.  

 

국가 사회주의 패망 이후 자유민주주의가 더 노골적인 패권과 양극화로 치닫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침탈이 심해지는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거버넌스(governance)가 탄생했다.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인 대의제를 허물고 소도시 폴리스와 같은 완전 직접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권자인 시민의 참여와 소통 및 네트워크를 통해 관 주도에서 민 중심의 정책 결정 구조를 도입한 것이 거버넌스다.  

 

그러한 의미에서 거버넌스는 전적인 직접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민의 주도적 참여를 통해 관과 함께 정책결정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주권자의 공적 결정에 대한 관심과 의견이 분출하는 것에 대한 현대 민주주의의 수정이라 할 수 있다.  

 

행정에서 먼저 나온 개념인 거버넌스는 정치학에서는 참여민주주의나 숙의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정치학에서 참여민주주의나 숙의민주주의가 시민주권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거버넌스는 시민사회의 전문가나 단체들과의 소통 네트워크 구축과 주권자인 시민의 토론과 숙의를 통해 정부나 자치단체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버넌스는 숙의 민주주의와 자치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혼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David Held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사적 이해관계에 대한 과도한 인정, 공공선의 실종, 수단적 형태의 합리성, 공적 의사 결정의 질을 논쟁의 중심에 놓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숙의 민주주의자인 Dryzek는 토론과 논쟁, 행위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증명하는 것, 보편화할 수 있는 정치 메커니즘과 사회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존의 민주주의 절차를 풍부하게 하고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이 제안한 방안인 숙의적 여론조사, 숙의하는 날, 시민 배심원제, 유권자 반응 메커니즘과 시민 의사소통의 확대, 민주시민교육, 숙의시민집단 및 결사체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 등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책 결정이 선출된 공직자나 관료들에 의해 정파적,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막고 시민의 개입을 통한 공적 성격의 결정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선출직 공직자와 직업 관료에 의해 실행되는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대의제를 시민의 숙의를 모아내는 절차나 제도를 통해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  보완은 아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민의 보편타당한 의견을 모아낼 수 있으면 된다. 나아가서 시민의 참여가 한정된 숙의적 방안을 넘어 유럽의 덴마크나 스위스처럼 주민총회나 투표를 통해 정책 결정을 하는 사안별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거버넌스는 자치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숙의와 자치는 동면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자치민주주의는 고전적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비판한 것처럼 정치에 무지하고 관심도 없는 대중을 집합시켜 놓고 선동가들의 선동에 현혹되어 묻지 마식 투표를 통해 집행부의 의도를 관철해 나가는 포플리즘적 사이비 자치민주주의가 아니다. 주권자인 시민이 공동체의 총회에 참석하여 토론하는 정치참여를 통해 공익과 공공선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함으로써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과 발전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인류의 진보와 미래를 위한 최선의 정치제도가 자치 민주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버넌스의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 이제까지 공익적인 것을 다루는 정치는 나쁜 것이고 사적인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편견에 쌓여있는 시민들이 모이고 자신의 얘기서부터 시작해서 공익적인 얘기를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자치조직(100인 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와 방식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  예산과 자산이 시민의 것이라고 인식하고 그것을 공익적 목적에 배분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긍지를 얻을 수 있도록 이러한 시민의 결정이 정책 결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입법과 조례 제정을 통해 절차적 제도적 틀을 세우는 것이다.

 

셋째, 거버넌스 확대의 실천단위가 될 수 활동가 및 시민 주도의 거버넌스에 적극적인 공직자 양성을 위한 민주시민교육과 연계하는 거버넌스 학교를 설립하여 거버넌스가 자치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는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버넌스는 기능이 아니라 시민주권이라는 철학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버넌스는 신성불가침의 주권은 시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시민이 직접 주권을 운영 관할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정신과 원리와 직결된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는 위임 방식의 주권행사를 축소해 나가면서 주권자의 직접 주권행사를 확장시켜 자치민주주의라는 성숙된 민주주의로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중앙 권력의 지역에 대한 재정과 권한의 양보를 압박해 나가는 자치투쟁의 역사로서도 거버넌스가 요구되고 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프랑스에서 우리의 촛불혁명이 위기에 빠진 세계의 민주주의에 희망을 주었다고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는 선거로 주권을 가져가서는 지배자가 되어버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한다. 주권자인 시민이 직접 정치의 주체가 되는 자치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는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대통령만 되새기는 것은 아닌지 시민들은 걱정이 많다. 

 


 

#글쓴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시민주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풀뿌리민주주의(자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자치분권 개헌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맞아 지방정부 차원에서 논의되는 거버넌스와 관련하여 참고와 도움이 되고자 연재의 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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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4 [13:27]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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