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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 러시아를 가게된 일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싸이베리아 여행기’ ①
 
신선임 안산선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18/09/01 [09:33]

[편집자주] 대야미 속달동 주민 신선임 씨와 가족들은 지난 겨울 아프리카 여행에 이어 이번 뜨거웠던 여름에 러시아 바이칼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이에 매주 토요일 러시아 여행기 ‘생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지난 겨울 탄자니아로 거슬로 올라간다. 탄자니아 탕가에서 만난 바이르마Bairma라는 여성은 딱 한국인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혹시나 하고 “Are you from China?(중국에서 왔니?)”라고 물었더니 “I am from Buryatia of Siberia.(시베리아 부리야트에서 왔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프리카 대륙의 한 남쪽 귀퉁이에서 들은 ‘싸이베리아’라는 단어의 울림은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금기에 대한 빗장을 풀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했다.

 

▲ Buryatia of Siberia(사진=구글지도)     © 군포시민신문

 

내가 그의 집에 머무는 동안 밤새 찻잔을 기울이며 들은 이야기는 시베리아에서 터키로 그리고 독일에서 아프리카까지 오게 된 한 디아스포라의 인생사이자 한때 강력한 지배자의 출현으로 세계 제국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상실한 채 시베리아의 한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부리야트 민족의 부침의 역사였다.

 

80년대 냉전 시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나에게 소비에트는 자기 나라의 영공을 침공했다는 이유로 여객기를 격추시킨 무시무시한 공산주의 국가였다. 1984년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 모여 연일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에 동원되는 것도 모자라 수업 시간에 반공 포스터 그리기, 표어 쓰기를 해야 했다. 초등학생에게 각인된 소련과 관련된 단어들에 대한 위험하고 불순한 감정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된 것을 볼 때 1980년대 남한의 반공 교육은 과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990년대 이후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나서도 러시아로 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도 이런 반공 교육의 영향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 이르쿠츠크 레닌 거리와 칼막스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우뚝 서 있는 레닌 동상(사진=신선임)     ©군포시민신문

 

아프리카에서 맞닥뜨린 ‘싸이 베리아’라는 단어는 그렇게 오랫동안의 신비와 금기를 넘어서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리야트 공화국의 주도인 울란우데를 가기 위한 관문인 이르쿠츠크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면서 바이칼 호수를 지나칠 수 없었고 이참에 짧은 구간이나마 시베리아 횡단 열차(Trans-Siberian Express)를 탑승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따라서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부리야트, 바이칼 그리고 열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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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01 [09:33]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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