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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 탄자니아] Malik
더웠던 그 겨울의 기록 (12회)
 
신선임 안산선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18/05/16 [09:25]

[편집자주] 속달동 주민 신선임 씨와 아이들 김형준, 김혜린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매주 수요일에 13회 연재합니다. 지난 1월 4일부터 27일까지 24일간 '더웠던 그 겨울의 기록'이 펼쳐집니다. '잠보'는 '안녕'이라는 인삿말입니다.

 

연재_1. 가자! 탄자니아로 2. 탄자니아에 도착 3. Mangrove Lodge 4. Village Tour 5. 마꼰데 부족의 성년식 6. 노예 시장 7. 잔지바 피자 8. 부리야트인을 만나다 9. Maweni Farm 10. Lars Johansson 11. 모시 Moshi 12. Malik 13. Masaai


  

모시에서 묵었던 Jacaranda Home은 하룻밤 20달러 정도의 게스트하우스였는데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이 좋았다. 찰스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는 있었지만 그와 중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10년 지기 친구들 중 또 다른 찰스가 정원을 가꾸며 잡다한 일을 맡고 있으며 말릭Malik은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찰스의 여동생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 식사와 침구류 등의 세탁을 담당한다. 게다가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들르는 찰스의 여자 친구 노엘라Noela는 모시에 있는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어 찰스의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은 이런 알음알음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우리와 닮아 있다. 사람들은 혈연이나 학연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가고 소규모 사업체 운영은 이에 바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면 ‘아, 거기 내 친구가 하는 좋은 숙소가 있어. 그 친구도 애들이 있으니 깎아줄 거야. 내가 얘기를 잘 해 볼게.’ 이런 식이다.


여하튼 오늘 마랑구 게이트로 우리를 데려다 줄 가이드는 찰스의 친구 말릭으로 서른 살의 무슬림 청년이다. 마랑구 게이트는 모시에서 45킬로 정도인데 50킬로 규정 속도를 준수해서 거의 1시간 30분이 걸렸다. 말릭은 말을 과장하거나 가식적이지 않고 진지하고 학구적인 사람이었고 탄자니아를 넘어서 아프리카와 이슬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의 천진한 질문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의껏 대답해 주어 이동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탄자니아 억양이 섞인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어 간혹 몇 문장 놓친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 찰스의 친구 말릭, 서른 살의 무슬림 청년이다. 우리의 가이드를 맡았다. (사진=신선임) 


“어떻게 탄자니아까지 오게 되었어요?” 

“중국 광저우에서 나이로비까지 가는 직항 티켓이 싸서 급하게 오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케냐의 대통령 선거와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인한 재선거 실시 등 정치적 불안정으로 한국 외교부에서 여행자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탄자니아로 목적지를 변경했어요.”

“케냐는 카오스에요. 탄자니아에 오기 잘하셨어요. 우리는 아주 평화롭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나라에요. 종교가 여럿 있지만 종교 때문에 다투는 일은 없어요. 케냐만 해도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는 이유가 두 민족 간에 다툼이거든요.” 

“두 정당 간에 다툼이 아니었던가요?”
 “두 민족이 내세우고 있는 정당들이 바로 두 민족의 다툼이에요.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분할해서 통치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편의대로 국경선을 그어 버렸죠. 케냐의 최대 부족인 키쿠유 부족이 영국에 대항한 독립 투쟁을 벌임으로써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고 독립에 기여한 민족주의 지도자 켄야파가 대통령이 되었죠. 그의 죽음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카렌족 출신 모이는 독재 정치 및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이에 대한 대규모 시위 및 국제기구의 기금지원 동결 등으로 정치적 불안정과 빈곤이 계속되고 있어요.” 

“탄자니아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나요?”
 “우리나라를 보세요. 세렝게티를 비롯하여 수 십 개의 국립공원과 킬리만자로 산이 있어 관광 자원이 풍부하죠. 게다가 금, 구리, 우라늄, 다이아몬드 등 지하자원도 많아요. 게다가 우간다나 에티오피아와 같은 내륙국에 비해 바다에 면해 있어 도크 시설이 세 개나 있어요. 그런데 그 돈이 다 어디에 갔을까요? 왜 사람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30%는 절대 빈곤에 처해 있을까요?” 

“혹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심한 거예요?”
 “그렇죠. 게다가 정치를 너무 못해요. 초대 대통령이 무조건 농업만 강조해서 농업 국가가 되었어요. 관광 수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관리들의 주머니만 채웠죠.”
 “여기는 왜 이렇게 대통령 사진이 많아요?”
 “가정이 아닌 모든 공적인 장소에서 대통령 사진을 걸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정말이에요.” 

 

우리 대화는 이슬람교까지 이어졌다.


 “수단을 보세요. 백인 무슬림들이 흑인 무슬림을 하인으로 보거든요.”
 “무슬림은 무슬림을 노예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게 코란에 있지 않나요?”
 “맞아요. 세계의 모든 무슬림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서로 형제에요. 적어도 모스크 내에서는 서로 평등하죠. 그런데 같은 무슬림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고 전쟁까지 벌이고 있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 마랑구 폭포에 도착했다. 저 위에는 폭포에 얽힌 전설을 담은 여인의 석상이 바라다 보인다. 이 근방에는 보수적인 차가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부족장의 딸이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자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단다. 그녀가 이 폭포까지 피신했다가 표범이 오는 것을 보고 석상이 서 있는 저 위치에서 놀라 떨어졌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시신의 흔적이 없었다고...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표범이 뛰쳐나올 만큼 우거진 풀숲이어서 머리칼이 쭈뼛 곤두설 정도로 겁이 날 만도 하건만 중등학교 secondary school 학생들이 소풍을 왔는지 와글와글 재잘대는 소리에 분위기가 이내 활기를 띠었다 어느새 히잡을 하얗게 쓴 수십 명 여학생 무리에 포위되어 버렸다.

 

▲  여행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사진=신선임)


“어디서 왔어요?”라고 대담하게 말을 건네는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훔쳐보며 킥킥거리고 자기네들끼리 야단이다. 급기야 남자아이 한 명이 준이를 건드리자 말릭이 부드럽지만 엄하게 스와힐리어로 경고한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와 아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어요. 저는 한국에 있는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나중에 우리나라에 여행오세요.” 

 

Karibu(환영합니다)를 연발하는 인파 속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흥.. 돈이 있어야지) 관광 부국에 광물, 해양자원, 수산물, 농산물이 넘쳐 나는데도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주민의 대다수가 가난하게 사는 나라의 아이들이 갖게 되는 좌절감과 자원의 불모지에서 산업화를 이룩했음에도 부가 소수에게 편중되어 버린 구조 속에서 불황까지 겹쳐 상대적 박탈감과 실업의 늪을 헤매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연예인이라도 된 듯 서로들 나와 아이들 팔짱을 차지하며 사진까지 찍고 헤어졌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눈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말릭이 이제 돌아가자고 한다. 차를 폭포 입구에 주차해 두었지만 마을 초입까지 걸어가자고 준에게 제안했더니 오케이 한다. 아까 말릭과 물수제비뜨기를 성공하더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말릭의 차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내려오는데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게 신나게 앞으로 내달린다.

 

▲ 1970m 마랑구 게이트로 가는 길 (사진=신선임) 

 

차가 계속 오르막으로 달리는가 싶더니  멈추는데 총을 든 군인이 서 있다. 1970m지점인 마랑구 게이트로 킬리만자로 등반이 비로소 시작되는 곳인데 군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킬리 등반은 1명 등반에 가이드, 보조 가이드, 쿡, 포터 2명이 따라 붙는 럭셔리 등반이다. 앞서 밝혔듯 여러 이유로 등산을 포기했는데 등산복의 물결을 보자 나도 모르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미 후회가 밀려들면서 나를 몰아세우는 마음이 목소리를 높인다. 
 ‘니가 언제 여기 또 오겠어? 다음에 온다면 지금보다 돈이 더 들걸... 애들 핑계 대지마. 애들도 다 할 수 있어. 마랑구 루트가 얼마나 쉬우면 콜라 루트라 부르겠어?’ 탄자니아는 한국인과 마주치기 유독 어려운 나라인데 여기저기 한국말이 들릴 정도로 킬리만자로는 한국인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저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지 못하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나는 저들의 총알받이가 되겠지... 애들이 나를 조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보니 요놈들이 나를 기념품점으로 데려다 놓았다.


 ‘얘들아 오늘은 엄마를 건드리지 말아다오. 너희들만 없다면 나는 미련 없이 킬리로 훌훌 올라갔을 몸이구나. 엄마가 구름 속으로 날아갈까 두려워 너희들이 나를 잡아끄는 곳이 고작 여기더냐!’

 

“이렇게 킬리 등반을 못할 거면 차라리 루쇼토에서 더 있을 걸 그랬어요. 말릭도 루쇼토에 가 본 적 있어요?”
 “어릴 때 루쇼토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멀리 일하러 가셨고 어머니는 저희를 떠났죠. 그 시골에서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

 

독일을 비롯하여 그의 얼굴에 남아있는 여러 혈통만큼이나 고단하였을 그의 서른 살이 느껴졌다. 

 

”말릭은 꿈이 뭐에요?“
“가이드 일이 참 좋아요. 차가 있으면 좀 더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기반이 잡히면 여행사를 차리고 싶어요. 여기 모시만 해도 킬리 트래킹뿐만 아니라 사파리까지 관광 자원은 무궁무진하죠.” 

“오늘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설명도 잘 해 주셔서 저녁을 같이 먹고 싶어요. 시간 있으세요?”

“네, 좋아요. 모스크에 들렀다가 기도하고 갈께요.”

“오 그래요? 그럼 모스크에 구경 가도 될까요? 너무 궁금해요.”

“네, 당연히 되죠. 대신 개종하고 오세요.”

"헐~"  

20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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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6 [09:25]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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