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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칼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대중문화평론가의 경직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기사입력  2018/04/24 [10:09]
▲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지난 번 칼럼에서 천박해 보이는 제목으로 언급했던 jtbc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푹 빠졌다. 예쁜 누나가 밥을 잘 사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친구의 동생과 연인관계가 되어 알콩달콩 나누는 사랑이 흐뭇하고 재밌다. 손예진과 정해인의 연기가 일품일 뿐 아니라 출연하는 모든 연기자들의 연기가 리얼하여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칼럼까지 쓰게 된 것은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의 글 <진보적 로맨스-익숙한 젠더 ‘달달한 줄타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대한 비판이다. ‘진보적 로맨스’라는 건 구태의연한 오빠-동생이 아닌 누나-동생의 로맨스라는 약간의 칭찬이고, ‘익숙한 젠더’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여성관이라는 혐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다. 나는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환원주의란 게 있다. 황진미의 비평은 경직된 페미니즘의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페미니즘으로 환원하는 관점이다. 환원주의가 가장 아름답게 적용되는 게 뉴턴의 역학이다. 복잡한 사물의 운동을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깔끔하게 설명한 것이다. 모든 사물은 질량에 비례하여 다른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두 사물 사이에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중력이 작용한다는 ‘보편적’법칙이다. 이 법칙으로 우주의 모든 사물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결정론도 환원주의에 해당한다. 뉴턴역학도 결정론이다. 초기 조건을 확인하면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뉴턴이 미적분을 개발해서 행성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밀물과 썰물의 시간, 일식과 월식의 시간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환원주의가 남용되어서는 곤란하다. 한때 통섭(統攝)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최재천 교수가 유행시킨 건데 그의 스승인 하버드대학의 윌슨(Edward Wilson)이 원조다.

 

윌슨 교수는 사회생물학을 제기한 학자로서 사회현상도 생물학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 생물학을 중심으로 모이자(통섭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 환원주의라고 하여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통섭은 환영받지 못하고 반짝 인기로 끝났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도 기본적으로 결정론으로서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인데 지나치면 환원주의로 비판받을 수 있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원시공동체사회가 붕괴되고 사적 소유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시작된 남성중심의 가부장사회는 타파되어야 마땅하다. 그 점에서 남녀평등을 지지한다. 그러나 남녀관계가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건 젠더(gender)의 차원이고 생물학적 성의 구분은 엄존한다. 남자와 여자의 정서적 차이는 젠더가 아니라 생물학적 본능이다. 차별은 안 되지만 차이는 자연의 법칙이다. 페미니즘이 과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황진미의 지적이다.

 

“하지만 그는 귀여운 동생 역할을 거부한다. 오히려 윤진아에게 ‘작고 귀엽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진아가 젠더 폭력을 겪는 상황에 자주 나타나 완력을 쓴다. 여성의 귀여움과 남성의 마초성을 강조하는 이성애 모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누나-동생’사이라는 진보적 구도를 취하면서도 남성 주도의 이성애 모델을 크게 훼손하지 않기 위해, 윤진아의 순진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옳지 못하다”, “지양되어야 한다”“더욱 옳지 못하다”“지지할 수 없다”“않기를 바란다”등의 강한 주장으로 훈계한다. 대중문화 비평이라는 건 주관적이다.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게 대중문화의 생리다. 그러나 이렇게 환원주의적 페미니즘의 비평은 불편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저 편하게 보면 된다. 윤진아(손예진)의 부모는 서준희(정해인)와 그의 누나 경선(장소연) 남매를 친자식처럼 사랑한다. 그렇게 자라왔다. 그런 누나와 동생이 연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의 근친결혼 수준이다. 부모와 형제들의 충격과 반대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게 사랑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보기 좋고 아름답다.

 

여기에 무슨 페미니즘인가? 남녀관계를 다루는 드라마는 모두 페미니즘의 주장에 충실해야 하나? 그러려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논문을 쓰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은 드라마의 그런 설정이 아니라 경직된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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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24 [10:09]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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