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時雨 48회: 평화는 오리 평화는 오리[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여든 중반의 홍 할아버지는 유쾌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후 소년시절 이북에서 쏘련군을 맞은 얘기며, 베트남전에 한진 직원으로, 총알 빗발치던 밀림을 가르며 물자 나르던 무용담, 돈 벌러 중동 간 이야기에, 쉰 넘어 미국 와서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화려했던 연애사까지, 여러 번 들어도 재미지다. 그런데, 유독 할배의 음성이 가라앉는 대목이 있다. 한국전 당시, 남원에 사령부를 둔 빨치산 토벌대원으로 지리산에서 겪은 3년의 기억이다.
처음 사람을 죽인 건 신병시절 고참의 명령으로 인민군 포로에게 총을 쏠 때였다고 한다. 죄책감에 며칠을 아무것도 못 드셨단다. 내가 살기 위해 숱하게 동포를 죽여야만 했던, 참혹했던 시절이다.
“어르신, 그럼 ‘이현상’이라고 잘 아시겠네요?” “백교무가 리현상을 어드렇게 아네?!”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현상, 그는 남부군 대장이었다.
2001년 여름, 정주 그리고 대광이와 함께 지리산행을 준비했다. 나름 테마여행이라, 조정래씨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산에 오르자고 의기투합했다. 서울역에서 무궁화호 야간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 구례역에 내려, 화엄사를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세 시간 조금 못되는 시간을 오르며 주린 배를, 멸균우유에 탄 미숫가루로 채우고 속보로 능선을 탔다.
40km 남짓 거리의 지리산 종주를 1박 2일에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보니, 쉴 새 없이 걸었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은 건, 파란하늘, 바람 반대 방향으로 가지를 남긴 고목, 들꽃, 안개비, 풀냄새 그리고 셋이서 돌아가며 부르던 노래...해지기 전 겨우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등산객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따라 일어났다. 여름이지만 제법 쌀쌀하다. 끼니를 준비하며 해돋이를 기다렸다. 햇반을 데우고 라면을 끊였다. 스팸을 구워 입에 한 입 베어 문 채로, 찬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간다. 저 넘어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그길로 장터목산장에 가니 이제 천왕봉이 보인다. 줄곧 내가 선두에 섰지만 막내 대광이를 앞세웠다.
하산 길은 중산리 빨치산루트로 잡았다. 내려가는 최단거리다. 경사가 몹시 급했다. 무릎에 무리 덜 가게 조심조심 발 디뎠다. 군데군데 빨치산 대원을 흉내 낸 마네킹이 어색하게 놓여있고, 녹슨 안내판이 거기가 비밀 아지트였다고 알린다. 그 길을 따라 벌어졌을 보급과 긴박한 전투, 비명, 죽음... 소설 ‘태백산맥’의 장면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토벌군이 옥죄어오는 가운데, 이현상과 인민유격대는 북한의 김일성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국군도 경찰도 민간인들도 너무 많이 죽었다. 피아골 단풍과 세석평전 철쭉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피를 떠올리는 건 지나친 감상일까. 여전히 분단조국에 사는 우리에게 지리산은, 새살 돋아 아문 생채기에 남겨진 흉터, 그런 땅이다.
일찍이 지리산은 반야의 지혜로 사바세계 중생의 아픈 마음을 건지려, 수도인들이 적공해온 신령스러운 터다. 원불교 대산종사는 이 뜻을 이어받아, 6.25 전쟁 희생자들의 원한을 풀어내고, 산 자들의 마음을 부처님의 바른 법으로 단련시켜, 평화의 세계를 이루자는 염원으로, 법도량法道場 지리산국제훈련원 건립을 부촉하셨다.
부처님 모신 대각전大覺殿에서 반야봉과 천왕봉을 바라보며, 어른이 남기신 말씀을 되새긴다. 평화는 오리 평화는 오리, 참 평화가 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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