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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時雨 47회: 배꼽 아래 세치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교무   기사입력  2018/03/06 [10:57]

장거리 통학하는 중학생 소년은 눈 비비며 여섯 시에 일어나 어머니가 챙겨주신 밥을 대충 챙겨먹고, 여섯시 반에 부대 정문에서 읍내 ‘크낙새 군인아파트’까지 가는 장교 통근버스를 탔다. 7시쯤 서울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면, 퇴계원을 거쳐 위생병원 가까이 휘경중학교에 8시 언저리에 도착했다.   

 

오가는 시각이 일정하다보니 버스에서 늘 마주쳐 기억에 남는 몇몇이 있다. 흰 블라우스에 뽀얀 피부, 길게 늘어뜨린 검은 생머리로 아침마다 마음 설레게 하던 직장인 누나. 한 시간이나 가야하는 내게 매양 다가오셔서 은근히 양보를 권하시던 공포의 시골파마 두 할머니. 일본어 회화실력을 뽐내던 아재들. 향수를 진하게 뿌린 처자. 날 더러 가르마가 두 개니 두 번 장가갈 거랬던 오지랖 넓던 아지매. 그리고 중년의 아버지와 딸...출근시간 버스 안은 빼곡하고 답답했다. 

 

먹골 배 과수원을 넘어 신내동으로 내려가는데, 열린 차창에 나뭇가지가 스치더니 뭔가 손등을 간지린다. 머리를 찧으며 졸다 눈을 떠 보니 이파리에 묻어 들어온 자벌레 한 마리가 몸을 세워 길을 찾는다. 그런데 수상한 몸동작 하나가 눈에 더 들어왔다. 

 

▲ 미투운동을 다룬 타임지 표지   

 

중년 사내가 왼편 창을 향해 서서 천정 손잡이를 잡고, 허리를 세운 채로 엉덩이만 내밀어 등을 마주하고 있는 아가씨 힙hip에 소심하게 비비적거린다. 괴상한 자세가 우스꽝스러웠다. 얼마나 대단한 쾌감을 얻자고 그 많은 눈을 피해 어린 딸을 옆에 두고, 뒤에 선 여성에게 몸을 들이댔을까?

 

시인 김경주는 산문집 ‘밀어’에서 ‘외로움’을 “자신의 살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시간”이랬다. 중년의 그도 외로워서 그랬을까? 그래서 몇 겹 얇은 옷가지를 사이에 두고 느끼는 남의 살갗을 통해 자기 살을 확인하려고? 아름답지 않다. 추행일 뿐이다. 

 

이 사회의 엘리트 가운데도 그를 닮은 이들이 있다. 그러나 권력과 지위, 영향력까지 가진 그들이 약자를 겁박해 삿된 욕망을 채워온 죄는 필부匹夫의 비행卑行과 비할 바 아니다.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 없다臍下三寸に人格なし’는 말로 어물쩍 퉁치고 넘어가던 호시절은 끝났다. 이제 값을 치러야 할 차례다. 그만큼 세상이 밝아지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자꾸 생각나고, 달콤한 속삭임을 듣고 싶고, 체취를 맡고 싶고, 입 맞추고 싶고, 안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건 본능이니 누가 뭐라 겠는가. 그러나 눈, 귀, 코, 혀, 피부, 뇌가 자아내는 감각의 제국에 갇혀 중독된 나머지, 내 여섯 감각을 만족시키려 타인을 힘으로 눌렀다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스스로 져버린 자라 죄벌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겠다. 

 

“탐한 욕심이 나거든 사자와 같이 무서워하라.”는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나 역시 마음에 점 하나 찍는다. 

...만약 여인과 더불어 말할진댄 마음을 삼가고 행동을 바르게 하며...늙은 사람은 어머니로 생각하고, 나이 많은 사람은 누나로 생각하며, 어린 사람은 누이와 같이하고, 어린 아이는 딸과 같이 여겨서 그를 공경하기를 예로써 하며...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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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06 [10:57]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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