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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時雨 45회: 별똥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교무   기사입력  2018/02/05 [09:57]

운천 살던 일곱 살 꼬맹이 시절 별이 쏟아지던 여름 밤, 아버지는 군인관사 마당에 간이침대를 펴고 아들을 뉘여 같이 하늘을 봤다. 귀 간질이는 풀벌레 소리와 선선한 바람결에 취한 아이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별바다에 다시 눈 담그게 된 건, 1997년 12월 강원도 화천 신병교육대서 부터다. 엄동설한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 야간사격을 할 때, 사람을 닮은 타깃에 몇 발 들어갔냐 보다, 총구에 뿜어 나오는 섬광을 타고 밤하늘에 별 하나가 더 늘기를 꿈꿨다.

 

▲  [사사모 사진展5] _은하와 사진_홍영인

 

병영도서관에서 이태형 씨의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를 골라 관물대 귀퉁이에 꽂아뒀다가, 새벽근무 서는 날이면 잠깐씩 훑어보고 경계초소로 나갔다. 허리를 감은 탄띠에 소총 개머리판을 걸치고 왼손은 총열덮개를 잡았으나, 눈은 어느새 별을 읽었다. 

 

북쪽하늘, 작은곰 꼬리에 놓인 북극성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이 빛난다. 겨울 천상엔 오리온, 황소, 쌍둥이, 마차부, 토끼라 이름 지워진 별 무리가 옹기종기 신神들의 소식을 노래한다. 아틀라스의 일곱 딸은 비둘기가 되어 날아올라 플레이아데스성단을 이루었는데, 눈 밝은 이에게만 드러낸다는 모두를 찾으려 시선을 고눴다. 

 

군문軍門을 벗어나서 한동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별자리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별은 내 작은 유희거리였다. 그러다 별을 잊고 살았다. 서쪽 사막에서 바다건너 날아오는 황사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우주를 건너온 가느다란 빛이 눈에 닿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조명이 너무 밝았다. 무엇보다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에 고개 숙일 일이 많았다.

 

출가하고 만덕산 종지기가 되어, 인적 드문 깊은 어둠을 질러 종각으로 가는 길에, 반딧불이가 날아오른다. 더 멀리 하늘에 무수한 별이 반짝인다. 그 중 하나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저 산 너머로 떨어졌다. 

 

마침 곁에 있던 전흥진 교무님이 무엇을 소망했는지 묻는다. 지난날 실패의 아린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낙망에 시름하던 내겐, 별똥에 두 손 모을 낭만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 말 없자, 별똥별이 지는 순식간에 빈 소원이 이뤄지는 이유를 아는지 묻고 조용히 홀로 읊조린다.

 

가슴 깊이 사무치는 원願을 한결같이 품고 있는 자만이, 유성流星 내리는 찰나에 한 생각을 꺼낼 수 있는 거라고. 별똥이 아니라 간절한 그 마음이 일을 이뤄내는 거라고. 수행도 그와 같다고. 어미 닭이 알을 품는 정성으로, 마음 챙기고 놓기를 오롯이 골똘히 오래오래 계속하면, 삶과 죽음의 문제, 인과의 이치가 풀려나고, 참 마음에 낀 티끌이 다 녹아나는 그 순간은 반드시 오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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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05 [09:57]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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