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時雨 43회: 버려진 소녀들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뉴욕교당 교무 | 기사입력 2018/01/04 [17:31]

시우時雨 43회: 버려진 소녀들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뉴욕교당 교무 | 입력 : 2018/01/04 [17:31]

‘폭력학생 물러나라.’ 학교법인의 부당징계에 항의하는 나 포함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을 향해, 여러 날 홀로 피켓을 든 이가 있었다. 경제학부 교수 L이다.

 

▲ 소녀상 (사진=픽사베이)   

 

시위대와 교직원간의 몸싸움 사이에 애매하게 계신걸 보다 못한 경비원이, 따로 모시고 나가려 해도 요지부동이다. 갖은 야유에도 아랑곳없다. 무슨 사명감으로 혼자 저러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희한하고 이상했다.

 

인문학도로서 경제학을 또 하나의 전공으로 삼은 나는, ‘동양경제사’ 강의실에서 L을 다시 뵈었다. 되도록이면 피하려했으나, 수식과 그래프가 어지러운 이론경제학 수업들에 곤혹을 치르다 보니, 경제학과에 개설된 일반경제사, 국제경제사, 한국경제사 등은 본의 아니게 꼭 챙겨들어야 할 강좌가 되고 말았다.

 

안병직, 이대근 박사와 함께 낙성대경제연구소 멤버로,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그의 강의는, 여타 사회과학이 그렇듯 각종 문헌과, 계량화된 수치, 통계에 바탕 했다. 그래서 언뜻 객관적으로 보이고 설득력을 가지지만, 그 안에는 무서운 것이 들어있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견해가 특히 그렇다. 메마르고 스산한 음성이 낮게 깔린다.   

 

“...전쟁 지휘관의 중요한 책임 중 하나는 부하들의 성욕을 관리하는 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은 군용 공창가公娼街인 위안소를 운영했다. 이는 16세기 이래 막부幕府에 볼모로 잡힌 지방영주의 가족을 따라온 무사들이 성욕을 풀도록 운영된 유곽遊廓에 뿌리를 둔다. 초기 위안부들은 경성에서 인력거를 타다가 돌을 맞았다는 신문기사가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분들은, 1945년 종전 후 빈털터리로 내동댕이쳐졌기 때문이다. 모집은 총독부와 군이 위탁한 중개인이 맡았다. 그들은 가난한 집에서 딸을 사서, 강제로 끌고 가기도했다. 위안부였던 어른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팔았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듣는 내내 불편했다. 그 학기를 마지막으로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4년 MBC 100분 토론에서 일본군 ‘위안부’관련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으로부터 팽개쳐진 소녀들은, 조국에 돌아와서도 가족과 이웃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또 다시 내버려졌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면서 일제 35년 만행에 대한 대가를 받았으면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도외시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당사자를 빼고, 배상 아닌 치유명목으로 10억엔을 받기로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맺는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 엄마부대 봉사단’은 할머니들에게 합의수용과 일본용서를 강요했다. 그리고 지금껏, 조선인으로 일본군이 되어 위안소에 드나들었던 그 누구의 참회도 없었다.

 

버려진 소녀들은 할머니가 되었고 한 분 두 분 험한 세상을 등지고 있다. 반인륜적 범죄에 몸은 탔고, 비겁한 침묵과 외면, 멸시, 폭언에 옥죄이던 그녀들은, 이제 ‘평화의 소녀상’으로 돌아와, 인류사회에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종을 울린다.

 

그 긴 시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묻히고 잊혀 질 뻔 했던 그분들의 삶과 소녀상을 지켜낸 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었다. 그분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온정어린 가슴이었다.

 

그네들의 응어리진 한恨마저도 풀어질 때라야, 삭풍 그친 그 자리에 꽃 피는 봄날이겠다. 그날은 오리라. 우리네 마음과 마음이 소녀를 끝내 저버리지 아니한다면...   

 

풍랑이 그치었으니 이제는 편안하시리...

옛 가지 봄 돌아올 때, 또 다시 꽃이 피겠네. 

- 원불교 ‘위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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