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時雨 39회: 수레바퀴 아래서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뉴욕교당 교무 | 기사입력 2017/11/20 [18:02]

시우時雨 39회: 수레바퀴 아래서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뉴욕교당 교무 | 입력 : 2017/11/20 [18:02]

점포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수상한 최 주임에게 밉보였는지 한 달 내리 야간근무다. 수원시청 옆 인계동. 어스름한 하늘아래 건물사이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들거린다. 온갖 술집에, 노래빠, 룸살롱, 단란주점, 호스트빠, 퇴폐 마사지샵이 즐비한 그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땅이 아닌가 싶었다. 그 한복판 훼미리마트 직영점장이 바로 나였다.

 

▲    훼미리마트 직영점장 시기 본인  

 

첫 손님이 오더니 농치듯 묻는다. “저 퇴근하게요? 출근하게요?”“출근이요.”딱 봐도 근처 유흥업소 여자애다. 머리세우고 화장한 호빠 선수들도 다녀간다. 걔네들은 서로 사귄다고도 하고, 서로의 업소에 가서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같은 방법으로 푼다고도 한다.

 

삐끼들이 하나 둘씩 거리에 나타난다. 한 무리의 사내들은 개도 사람 만든다는 숙취음료 ‘여명808’을 사 마시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룸살롱에서는 위스키 전에 낸다는 딸기 맛 우유를 한 아름 담아간다. 꽉 조인 옷을 입고 춤추다 터진 옷을 급하게 꿰매려는 직업여성들 덕에 반짇고리가 의외로 잘 팔린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가지가지 주사와 추태가 요지경이다. 토악질은 기본이고 매장 앞에서 시비가 붙어 치고받는 사건도 종종 있다. 돈을 내다가 갑자기 뒤 돌아서, 내려간 원피스 지퍼를 채워 달라질 않나, 카운터에 진열된 콘돔을 사라고 조르는 여자 친구에 급당황하는 분의 민망한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갑자기, 한 아가씨가 문을 밀치고 들어와 다급하게 숨겨달라고 한다. 진상손님을 만나 도망친 게 분명하다. 창고 쪽을 가리키며 가 있으라고 했다. 곧 기도(木戶)로 보이는 오닉스 반지를 낀 검은 양복 차림의 범상치 않은 놈이 그녀를 잡으러 들이닥쳤다. 시치미를 뚝 땠다. 그는 못미더워하며 두리번거리다 나갔다. 아가씨는 잠시 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갔다.

 

새벽으로 넘어갈 즈음.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중년남성이 덩치 크고 험상궂은 남자에 기대 매장 뒤 구석, 우리은행 자동화 기기에서 현찰을 뽑았다. 술값과 화대를 신용카드대신 현금결재 해서 할인받는 눈치다. 그러고선 마침 화이트데이라 진열해둔 사탕바구니 하나를 골랐다. 아내에게 가져다주려나 싶다. 그런데 이 양반이 에누리 해달라고 한다. 아무리 장사꾼이 손님을 가려 받지 않는다 해도 그렇지, 질펀하게 즐기는 데는 돈 다발을 펑펑 쓰고선, 집사람에게 가져갈 선물 값을 깎는 인간과 흥정하고 싶지 않아, 안 판다고 돌려보냈다.

 

새벽 3시가 되자, 아까 그 아가씨가 다시 왔다. 단골이기에, 가래가 안 나온다면서 늘 사가던 던힐 담배를 미리 알고 내놨다. 그녀가, 하루 한 개씩 꼭 챙겨먹던 뼈 칼슘 우유를 비롯해 이것저것 더 골라 계산하며 소득공제영수증을 끊으려고 아버지 전화번호를 부르려는데, 내 손가락이 먼저 숫자를 누르고 있었다. 흠칫 놀라는 눈치다. 그리고 부탁이 있다고 한다. 부모님께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말하려니 증명서를 떼 줄 수 있냐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했다. 씁쓸하게 나가다가 뭔가 잊은 듯 되돌아 와서는, 현금입출금기에 그날 번 돈을 입금했다.

 

밤새 계산대에 서서, ATM을 두고 돌고 도는 돈을 보았다. 술잔이 오가는, 웃음을 팔고 외로움을 달래는, 몸을 거래하는 자리 자리마다 그 돈이 흘러 돌고 돌았다. 이미 십 수 년이 지났지만, 누군가는 오늘도 ATM에서 돈을 찾아 쾌락을 사고, 또 누군가는 그 돈을 다시 ATM에 넣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이 무거운 애욕의 굴레에 매여 윤회(輪廻)의 수레바퀴 아래에 짓눌려 신음 하는 중생의 삶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굴레를 벗고 수레바퀴를 굴리는 이를 일컬어 부처라 이름 짓는다. 탐욕에 젖은 돈이 흐르는 길로 돌고 도는 중생도, 그를 일으키는 부처도 다 내 안에 있다고, 모든 것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업(業)에 따라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지금 수레바퀴 아래에 깔린 ‘나’일지라도, 내일은 수레바퀴를 운전해 가리라 꿈꿀 수 있다. 부처님 법은 희망의 메시지다.

 

...금생에 업력에 끌려 다니면 내생에 그 과보가 다시 돌아오고, 금생에 업력을 굴리고 다니면 내생에 그 과보가 생기지 아니하도다. - 대산종사법어 제12 거래편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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