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칼럼] 학기말 우울증

상대평가의 비교육적 처사

김진웅(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기사입력 2017/07/14 [08:14]

[김진웅 칼럼] 학기말 우울증

상대평가의 비교육적 처사

김진웅(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입력 : 2017/07/14 [08:14]
▲  김진웅(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매번 학기말이 다가오면 우울해진다. 방학을 앞두고 기분이 그런 것은 성적평가 때문이다. 최근 대학에서는 성적을 학생들 학업성과에 따라 자율적으로 부여토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평가 기준으로 통제한다. 상대평가는 산출된 성적 그대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등급별 인원을 정해서 학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A는 최대 25%, B는 35%, C이하는 40% 이상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처럼 학점 평가기준이 이미 사전에 주어져 있다. 이 기준을 벗어나면 아예 컴퓨터에 성적입력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특히 C 학점 이하를 무조건 40% 이상 편성하라는 식의 규정은 비교육적 처사이다.

 

상대평가제도 여파로 인한 강의에서의 부정적인 변화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필기시험이 학생실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논술형보다는 단답형 또는 객관식으로 출제되기도 한다. 둘째, 일방적 주입식 강의가 보편화되고 있다. 셋째, 깊이 있는 토론문화가 점점 사라진다. 모두 질적 평가를 없애고 양적 평가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창의성이 강조되고 학문간 경계가 사라진 융복합 시대에, 입시교육과 같은 대학문화가 지배하는 현상을 바라보면 암울해진다.

 

이런 문제는 대학이 교육행정기관의 지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불합리한 제도가 횡행함에도 속수무책이니 교수로서 자괴감이 든다. 특히 한 학기 동안 과제하랴, 조별 발표준비 하랴, 강의 들으랴 등등 바삐 생활해 온 제자들에게 정작 이에 상응하는 학점을 부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는 너무나 미안하고 화가 난다.

 

채점할 때 모든 학생이 A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잘 나오면 교수로서 기뻐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가 되곤 한다. 이들을 정해진 상대평가 기준에 맞게 쪼개서 A/B/C/D 등급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동점을 받은 학생 중 한명은 A, 다른 학생은 B+를 부여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왜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지속되는가? 한마디로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한 방편이다. 알다시피 교육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대학 줄 세우기, 재정지원사업으로 길들이기 등에 여념이 없다. 교육부 사업을 따기 위해 대학들이 무리하게 구조조정하고, 하루아침에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은 예사가 되었다. 문제가 되었던 이화여대사태는 교육부 대학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학은 더 이상 진리탐구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와 기업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교육부는 대입학생수가 매년 크게 감소하는데 따른 대학의 위기를 해결한다는 구실로 다양한 당근과 채찍으로 대학을 길들인다. 가장 자율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할 대학이 어느 순간 타율적이고 순응적인 존재로 변질되었다.

 

이제 대학총장은 높은 인격과 지성을 갖춘 교수가 아니어도 된다. 특히 사립대학은 교수나 박사가 아닌, 경영을 잘하고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을 총장으로 영입하곤 한다. 또 밀월관계 형성을 위해 교육부관료 출신들이 대학수장으로 영입되는 현실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또 대학을 어떻게 이끌고 가겠는가?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정치관료권력에 휘둘리는 현실을 나치시대의 독일대학과 비교 평가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대학이 정치화될 때, 학문은 죽고 나라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대학이 자율과 자유를 토대로 진리를 탐구하는 전당이 될 때, 새로운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들이 솟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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