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수많은 이들이 촛불로 밤을 태우며 “이게 나라냐”고 절규했다. 전임 대통령 박근혜가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더니 외교마저 파탄냈다. 그가 뻔질나게 해외나들이에 나서 옷자랑을 일삼더니 무엇을 얕보였는지 주변강대국들의 나라 대접이 꼴사납다. 역사는 반복한다더니 조선을 둘러싼 치욕스러운 주변정세가 되풀이되는 꼴이다.
중국은 종주국이 종속국에 대하듯 행세한다. 일본은 군국주의를 되살리더니 한반도를 식민지로 여기는 자세다. 미국은 초강대국의 일방주의를 강압한다. 중국이 사드배치에 무차별적 경제보복으로 위세를 부린다. 그 바탕에는 한-미동맹을 중국에 적대적인 미-일동맹의 하위개념으로 편입한 데 대한 반발이 깔려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더러운 역사를 단돈 10억엔을 받고 없던 일로 치부하니 일본이 깔본다. 사드는 미국소유의 병기이고 미군방어를 위해 미군이 운영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10억달러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쓴다. 한-미FTA는 불평등협정인데도 엉뚱한 트집을 부린다. 근거도 없는 통일대박론을 떠벌리더니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실험발사로 협박을 일삼는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쓰시마 도주를 통해 “명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길을 빌리자”가도입명(假道入明)"의 뜻을 조선에 전달했다. 조선이 거절하자 그는 1591년 3월 답서를 통해 “명을 치려고 하니 길을 빌리자”는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말로 침략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조선조정은 왜군의 전란준비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한심한 작태를 벌였다. 당파싸움에 눈이 멀어 통신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조차 거짓으로 보고하여 일본이 강토를 유린하도록 손 놓고 기다린 꼴이 됐다.
명나라 태창제가 1620년 즉위한지 29일만에 급서했다. 그의 아들이 천계제로 즉위했으나 재위 6년만에 23세에 요절했다. 그의 동생이 뒤를 이었으니 그가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이다. 소년황제들을 앞세운 환관들의 국정농단 탓에 나라가 망국지란에 처해 있었다. 그 틈을 노려 만주의 후금(後金)이 중원을 넘나봤다.
그 상황에도 조선은 명만이 살길이라고 외쳤다.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가 친명배금(親明排金)을 표방하고 후금과 외교관계를 끊었다. 후금의 태종 홍타이지가 그것을 빌미로 1627년 1월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했다. 그가 조선에 명의 연호를 쓰지 말고 왕자를 인질로 보낼 것을 요구하고 철군했다. 이것이 그 해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정묘호란이다.
그 후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으로 개칭하고 숭덕제라고 칭제했다. 그가 보낸 사신을 인조가 접견을 거부했다. 또 즉위식에 참석한 조선사신이 그에게 배례하지 않아 조선이 친명정책을 바꿀 뜻이 없음을 드러냈다. 숭덕제가 명을 치기 전에 배후의 위협부터 없애려고 12만 대군을 이끌고 1636년 12월 조선을 침략했으니 그것이 병자호란이다.
조선조정은 청군의 침공을 열흘이나 지나서 알았다. 9년전 인조의 강화도 파천을 지켜본 청이 피난길을 차단해 버렸다. 남한산성으로 피난길을 돌린 인조는 강화성이 하루 만에 함락되자 백기를 들었다. 1637년 2월 24일 인조와 세자를 비롯한 군신백관 500명이 한강 상류의 나루 삼전도(三田渡)에서 숭덕제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는 굴욕적인 항복의식을 가졌다.
그후 조선은 무기개발도 청의 눈치를 봤다. 네덜란드인 박연의 힘을 빌려 대포를 만들었다 들통 날 뻔했다. 1655년 3월 청나라 사신이 조선의 동태를 살피려고 왔다.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2명이 그를 붙들고 고국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들이 훈련도감의 포수로 배치되어 있던 터라 자칫 문초라도 했더라면 사단이 날판이었다. 조정이 놀란 나머지 처형까지 논의하다 유배 보내는 것으로 끝냈다.
총질한 미국상선을 불태웠다고 미국의 함대 5척이 강화해협에 침입했고 결국 1882년 통상조약을 맺었다. 여기서 조선은 일본과 달랐다. 일본도 굴욕적으로 쇄국의 문을 열었지만 선진기술-지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조선은 국책사업을 미국인의 이권사업으로 넘기는데 몰두하다 나라를 일본한테 뺏겼다.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일약 태평양의 강자로 부상했다. 1905년 7월 29일 미국 전쟁부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가 도쿄에서 만나 미국의 필리핀 지배, 일본의 조선 지배를 서로 인정하는 비밀협약을 맺었다. 이것이 이른바 타프트-가쓰라 밀약(Taft–Katsura agreement)이다. 조선의 운명이 미국과 일본의 손에 의해 결정 났지만 조선은 모르고 있었다.
새 정부는 나라의 체통부터 바로 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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