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화 단계에서 개인은 구체적인 욕구와 충족사이의 불균형을 인식하거나 어느 정도 욕구충족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허전함이나 부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물질적 결핍의 문제는 비물질적 욕구의 문제로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결핍의 상황이 악화될수록 이른바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지고 극단적인 결핍상황에서 인간은 모든 행위를 무산시키는 행동이라 할 수 있는 자살에 이를 수 있다.
가치화 단계에서 개인은 다양한 결핍의 문제 중에서 구체적인 행동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각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결핍의 우선순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결핍을 의식하고 결핍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나면,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는 동기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위도 또 세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다.
결핍 극복의 행위
문화적 활동의 특별한 형태로서 놀이는 결핍의 보상과 관련이 있다. 호이징하는 『호모루덴스』에서 놀이는 하나의 과잉 일뿐, 일상적이거나 실제적 생활의 진지함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놀이는 삶의 기능으로서 개인에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놀이가 포함하고 있는 의미와 의의, 놀이의 표현적 가치, 놀이의 정신적·사회적 결합 등과 같은 문화적 기능 때문에 놀이는 사회에서도 꼭 필요하다. 이러한 놀이를 통해 삶을 풍족하게 하고 ‘실제적 결핍’의 문제를 보상해주고 있다. 놀이를 통한 결핍의 보상은 경제행위의 형태가 이전(移轉)된 것이다. 여가나 스포츠는 물질적 결핍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데 따른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현대사회의 결핍의 문제
그러나 이러한 거짓 욕구가 자본주의 기업의 조작(造作)적 활동결과인 과대선전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매스미디어가 거짓욕구의 생산에 그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는 있지만, 국가와 다양한 이익단체 역시 이러한 생산에 일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날 경제는 여전히 ‘극단적’효율성이라는 목표에 집착하고 있다. 이러한 거짓과 욕구에 의한 부족감은 시장경제나 사적 소유의 결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더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핍의 문제와 국가의 역할
오늘날 우리사회의 ‘총체적 난국’내지는 극단적인 사회문제의 근원은 개인적인 기대와 요구의 결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제도나 규범체계가 오히려 결핍극복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법체계나 정부에 대해 거부하는 행동양식은 다원적 민주주의의 개인적 표출이 아니라,‘현실’의 제한된 울타리를 뛰어 넘으려는 결핍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까지 분배의 정의에 실망했던 사회집단의 결핍을 해소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위기’의 잠재력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결핍의 문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존재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결핍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는가에 따라서 그 해결책을 찾기도 했으며, 좌절하기도 했다. 결핍에 대한 국가의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군포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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