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호를 선사한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며

이대수 군포시민신문 전발행인

이대수 군포시민신문 전발행인 | 기사입력 2016/01/21 [14:07]

제호를 선사한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며

이대수 군포시민신문 전발행인

이대수 군포시민신문 전발행인 | 입력 : 2016/01/21 [14:07]

여행 중에 떠올린 감옥여행(?)

 

청소년들과 함께 일본 간사이지역 역사평화여행 둘째 날인 1월 15일 신영복 선생의 소천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일본이라 참석할 수 없어 늦었지만 이 글로 추모의 마음을 대신하고자 한다.

 

▲ 신영복 선생    © http://www.shinyoungbok.pe.kr/

 

1978년 늦 여름부터 신영복 선생이 대전교도소 서화반이 있던 기결수 사동에서 10개월을 가까이서 머물렀었다. 서울구치소에서 이감되어 짐을 풀고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우물물을 뒤집어 썼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리고 독방에 갇혔었다. 서울구치소에서 이른바 유신독재반대 '옥중투쟁'으로 상당수 학생출신 수감자들이 지방 교도소로 이감되었고 징벌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나중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추가 기소가 되어 재판도 받았다. 그러던 중 미결수 사동으로부터 8.15를 기해 단식투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동참했고 그 결과 보안과에 끌려가 포승줄로 결박지워진 채 몇 시간을 지내다 풀려나 다시 징벌방에 갇혔다.

 

두 달간의 징벌기간이 끝난 후 전방되어 신영복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박성준 선생을 비롯해 남파 간첩인 한학자풍인 이구영 선생님은 수백년된 간장을 먹는 집안 내력을 가지신 분이셨고 서화반을 이끌어 오셨다. 그런 분들과 운동시간에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청맥회 서울상대 재학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재판과정과 수감생활 등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신이 살아오신 삶을 소개해 주었다. 늦은 밤 시간 교문 수위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해 주셨다. '똑똑한 학생들은 전쟁통에 다 죽고 겨우 책만 들고 다니다가 교수가 되어 폼을 잡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먹물이 없어 물을 대신 사용해 붓글씨를 익혔다고 하셨다.

 

박정희 유신독재 말기적 상황이고 민주화 투쟁이 활발해 지면서 1980년 봄을 향해 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교도소 생활도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방 안의 십 수 명과 함께 있던 상태라 여러 사람들을 만났었다. 고문과정에서 불구가 된 재일동표 정종학 선생으로부터 중앙정보부 고문받다 죽으려고 뛰어내려 절름발이가 된 사연 등도 들었다. 나중에 정선생 집에서 하룻밤을 자기도 했었다. '오줌 눌 시간밖에 안된다'며 겨우 2-3년 징역을 받은 우리들을 주눅들게 했던 10년 20년 무기수들이 들려 준 많은 절절한 이야기를 기억하게 된다.

 

교도소에는 해방신학 등 많은 책들이 반입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여성해방이라는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이 주는 섹슈얼한 이미지로 반입금지 되었고, 구띠에레즈의 '해방신학'은 내용의 급진성과 상관없이 신학책 이라 허용되는 정도의 상황이었다.

 

 

군포시민신문 ‘제호’와 강연으로 다시 만나다

 

▲ 재발행 이전의 군포시민신문  제호    © 군포시민신문

 

그러다가 1995년 군포시민신문 창간을 준비하면서 신영복 선생께 제호를 부탁드렸다. 취지를 설명하고 드린 요청에 기꺼이 응해 '군포시민신문'을 써 주셨고 창간호부터 간판으로 사용했었다. 당시 창간 준비에 쫒겨 늦게서야 제호를 부탁하고서 받으러 갈 틈이 없어 선생께서 제자들을 통해 배달하도록 한 결례를 했다. 창간일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받아 주셨다.

 

그리고 2006년 3월 군포문화센터 개관기념 강연을 부탁드렸었다. 전교조 선생과 군포시민단체들의 요청에 의해 안면이 만만한 내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외부강연을 사양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감옥동기'의 부탁이라며 기꺼이 와 주셨다. 강당을 가득 메운 자리에서 감동적인 강연으로 박수가 넘쳐났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던 기억이 새롭다. 3월 21일 군포문화센터에서 진행된 기념 강좌는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참가자 중에서 자원해 택시로 댁까지 모셔 드렸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 후에도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책을 통해서 다시 뵈야 할 것 같다. 큰 스승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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